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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31. 2021

소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

- 스마트 소설 -

“예쁘다. 얼마나 예쁘냐고? 엄청나게 예쁘다.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예쁘다고 생각하는 그 기준에 그냥 딱 백을 곱해라. 사실 백도 그녀에겐 모독에 가까운 숫자다. 그녀는 그 정도로 예쁘니까.”


그가 허풍을 떨어도 너무 떤다고 말을 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절대 거짓말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예전부터 그가 얼마나 눈이  높았었는지 나를 포함해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여러 번 그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었으나 첫 만남 이후 여자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좋아했던 반면 오히려 그가 탐탁지 않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쁘지 않아서였다.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여자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뭐냐 했을 때 그가 말을 안 했다. 

너희들은 내 눈높이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핀잔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얼마 전부터 연애 중이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예쁜 여자와 함께 말이다. 


반년이 넘도록 사귀었다. 

언젠가 내가 그와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괜한 허풍을 떠는 게 아니었다고 내가 증언할 수 있다. 

피아노 전공 대학원에서 석사 코스에 있는 그녀는 박사학위까지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매우 지적이면서도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할 만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또한, 결혼 적령기인 그는 현재 중소기업 대리이지만 조만간 대기업 대리나 과장으로 이직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 그가 그녀를 신붓감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둘의 만남도 결혼을 전제로 하는 진지한 만남으로 보였다. 

하지만 최근 그가 나를 만났을 때 그녀와의 관계에서 있어서 한가지 고민을 토로했다. 


그녀가 자기와의 신체 접촉을 너무 싫어한다는 거였다. 

그는 그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밀당 하는 것도 아닌데 연애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잘해주려 노력하는데 그 잘해주는 것조차 그녀가 부담스럽다는 거다. 

자기가 싫으면 그녀가 아예 연락 끊고 만나주지를 않을 텐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거다. 

그래서 만나긴 만나는데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리니 뽀뽀는커녕 키스는 언감생심이라는 거였다. 


그녀가 먹다 남긴 콘 아이스크림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간접 키스한 것이 그가 유일하게 한 최근의 입맞춤이란 말을 듣고 나는 그런 처절한 친구의 모습에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 나는 뭔가 통쾌하기도 하면서 뭐라 막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완벽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것 같은 그에게 평소 은근히 질투심마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연애가 잘되지 않는 그를 보았을 때 나는 충고랍시고 “마, 걍 때려치뿌라!” 였다. 

그리고 얼마 전 늦은 밤에 그가 씩씩거리며 나에게 전화를 하고는 다짜고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느냐고 물어왔다. 


“이 미친놈아, 삼복더위에 뭔 얼어 죽을 크리스마스여”라고 농을 던졌는데 그가 그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부관계의 예를 오 헨리 단편을 들어 얘기했던 모양이다. 

처음엔 그녀가 무슨 얘긴지 못 알아먹다가 그가 얘기를 해주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는 거다. 


‘자기야, 옛날 옛적에 가난한 부부가 있었어.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려 했지만, 돈이 없어서 남편은 가보로 물려받은 고급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한 멋진 머리핀을 사고, 아내는 남편 몰래 자신이 오랫동안 길러왔던 애정 어린 긴 머리칼을 잘라 남편 선물로 시곗줄을 샀지. 근데 서로 선물을 주려고 만나보니 아내는 머리칼이 없어 남편 선물이 의미 없어졌고, 남편은 시계가 없어 아내 선물이 의미가 없어진 거야. 서로에게 필요 없는 선물이었지만 그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행복한 성탄을 보낸다는 이야기지’ 


이렇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앙칼진 표정으로 단 일 초도 지체함 없이 쏘아붙였다는 거다.



“환상이지!” 


그는 뭐가 환상인지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녀와 거리감이 느껴진다 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녀가 백번 천번 맞아. 적어도 그녀에게만은! 

넌 인마 소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그녀와 결혼 하려고 했냐!” 


그녀가 지금껏 그에게 약간의 거리를 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그가 소설 속 이야기로 그녀와 교제 정도가 아니라 부부의 연을 맺으려고 했기 때문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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