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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Nov 07. 2024

러시아에서 핀란드 친구에게 냉장고 사기

우리 친구인데 조금만 싸게 팔아줄수 없을까? 

냉장고가 없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알게 됐다. 음식을 미리 사둘 수도 없고, 보관이 불가능 하니 금방 상하게 된다. 러시아에 와서 냉장고가 없는 삶을 처음 겪고 있다. 냉장고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봤지만, 냉장고를 대체할수 있는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돈을 아낀다고 냉장고를 안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인 걸까?.. 그래도 냉장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봤다.


첫째로, 이중 창문 사이를 활용하기. 우리 기숙사 창문은 이중 창문으로 소련 시대 제작된 나무 창문이다. 창문과 창문 사이에 20cm 정도 되는 폭이 있다. 그사이 공간을 활용하여 야채, 과일을 보관했다. 수은 온도계가 있어 창문 틈 사이 온도를 확인해 보니 대략 7~8도 정도 나온다. 일단 급한 대로 다양한 야채, 과일 반찬들을 창문 틈 사이에 하나씩 쌓아 올려 보관해 놨다. 


정확하게 이런 모양의 창문이었다. 소련시대 가정집에 정형화된 창문이었다. 이중창형태로 되어있고 그 사이에 음식을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런데 우스꽝 스러운 문제가 있었다. 창문에 너무 많은 음식을 쌓아 두다 보니 밖에서 전부 보인다는 것이다. 내방 창문은 버스정류장과 작은 공원이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 창문이다 보니 맑고 투명하여 안이 다 비친다. 커텐을 쳐 놓지 않으면 밖에서도 내방이 훤히 다 보인다. 내 방의 층수는 2층으로 높이 위치해 있지도 않았다. 밖에서 회색 빛깔의 우리 기숙사를 볼때면 내방 창문밖에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알록달록 했다. 사과, 바나나, 양배추, 파프리카, 소세지, 콜라 등 다양한 색이 비치다 보니 눈에 잘 띄었다. 심지어 소시지 상표까지 잘 보인다. 학교 갈 때나 집에 올 때 창문을 볼때면 너무 민망했다. 


둘째로, 같은 기숙사 친구에게 냉장고 부탁하기. 몇번 중요한 식재료를 맡겨 봤지만 불편했다. 요리할때마다 찾으러 가야했고 이성 친구 였기에 늦은밤 혹은 아침일찍 찾아가 냉장고를 매번 부탁 하는것은 무리 였다. 한번은 생닭은 샀는데 친구 냉동실에 보관을 부탁했다. 친구에게 생닭 맡겼던걸 까먹는 바람에 먹지도 못하고 친구가 버린적도 있다.


내가 구매해서 썼던 소련시대 냉장고 모델과 비슷하다
내부는 이 사진과 동일했다. 추가로 온도 조절 기능은 고장나 있었다.


결국 난 냉장고를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미 난 냉장고를 한번 구매 했었다. 그런데 내가 방을 옮기게 되면서 친한 형에게 지금껏 사용하던 소련식 냉장고는 선물 하기로했다. 친한 형 가정형편이 어려웠던걸 알았기에 양보할수 밖에 없었다. 그 냉장고는 500루블(2만원)에 구입했던건데 기숙사 광고 게시판을 보고 러시아 친구에게 구매한것이다. 이렇게 싸게 나오는 40~50년된 소련 냉장고를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워낙 오래된 냉장고 였기에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았다. 온도 조절기도 고장나 있었으나 작동은 잘 됐다. 그렇지만 냄새도 심했고 내부를 닦아도 깨끗하게 청소가 불가능했다. 




먼저 가장 저렴한 러시아 전자 마트에 가봤다. 호텔 미니바에 들어가는 냉장고 사이즈로 기본 5천루블(20만원)부터 시작했다. 터키에서 제조된 제품으로 나름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배송비 였다. 기본 배송비는 천 루블 정도 들었고 제품 배송도 1달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제품들은 7~8천 루블 정도로 가격대가 높았기에 부담스러웠다. 한달 생활비 만 루블에서(40만원) 지출해야 했기에 한달만 바짝 아껴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7~8천 루블에 배송비 까지 하니 만 루블이 되어 구매가 불가능 했다.(한달 생활비가 만루블이다) 뻬쩨르부르크에 위치한 대형 마트, 전자 마트는 다가봤다. 냉장고가 5천 루블하는 제품은 어딜 가도 없었다. 


가장 친한 핀란드 친구 릴리야에게 프래드릭이라는 친구를 소개받았다. 20대 후반의 핀란드 친구였다. 유명 교수님의 배우과소속으로 키도 거의 190 가까이 됐고 얼굴도 모델처럼 잘생겼다.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가볍게 인사만 했는데 릴리야 덕분에 친해지게 됐다. 


릴리야는 나를 저녁에 자주 초대해 줬다. 핀란드에서 보내온 빵과 치즈가 있을 때 혹은 핀란드식 음식을 했을 때 맛있는 무언가가 생기면 꼭 함께 먹자고 나를 초대 했다. 정말 고마웠다. 저녁을 먹을 때면 프래드릭도 자리에 거의 함께했다. 과묵한 편으로 말이 별로 없는 친구였다. 그래도 세 명이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으며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많이 친해졌다. 


프래드릭도 있고 나도있다. 사진은 민망하니 최대한 작게..


프래드릭은 오 남매의 셋째였다. 릴리야와는 다르게 씀씀이도 컸고 먹는 것, 입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자유롭게 썼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듯 보였다. 그래도 프래드릭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너무 힘든 학교생활에 많이 지쳐 있었다. 프레드릭은 학교생활에 절어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의 수업으로 머리조차 감을 힘이 없었는지 프래드릭의 머리는 매일 엉겨 붙어 있었다. 그래도 항상 여유로운 미소를 품고 다니는 멋진 친구였다. 


그런데 갑자기 프래드릭이 학교생활을 접고 핀란드로 돌아가게 됐다. 너무 갑작스럽게 프래드릭이 떠나게 됐다. 프래드릭은 러시아에 살면서 다양하고 좋은 전자기기들을 많이 구비해뒀었다. 프래드릭 방에도 몇 번 놀러 가봤기에 무엇이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핀란드 출신의 친구들이 수십명은 있었기에 그 친구들에게 먼저 좋은 물건은 정리할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후 기숙사 광고판에 프래드릭이 물건들을 판다는 광고를 붙여 놨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건 다 저렴하게 팔고 있었는데 냉장고만 유독 비싸게 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만 남고 다른 물건들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프래드릭이 제시하는 가격은 6천 루블(24만 원)이다. 프래드릭이 구매했던 가격에 비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6천 루블은 큰돈이다. 나는 천 루블만 네고하여 5천 루블(20만 원)에 구매하고 싶었다. 얼추 생각했던 예산과 맞는 금액이고 프래드릭의 냉장고는 2년밖에 사용하지 않은 거의 새 제품이다. 


우리 반 핀란드 친구들의 공연


프래드릭방에 찾아가 인사를 했다. 우리는 악수하고 하며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는 프래드릭에게 냉장고를 구매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프래드릭이 친절하게 냉장고를 직접 살펴보라며 안내해 줬다. 내부는 조금 더러웠지만 깨끗이 닦아 사용한다면 전혀 문제없을 것 같았다. 내가 구매해야 할 운명의 냉장고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식료품을 창문 틈 사이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프래드릭에게 감격에 찬 말투로 이야기했다.


"프래드릭 나 냉장고 사려고"

"그래"

"근데 천 루블만 빼줄 수 있어?"

"…. (문 쾅)"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프래드릭은 단호했다. 그래도 나는 웃으면서 문밖에 서서 프래드릭에게 생각해 보고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6천 루블이 비싼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뭐 때문에 그런 걸까? 프래드릭과 친구임에도 네고해 주지 않아서? 이런 저런 고민만 하다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2일 뒤면 프래드릭은 떠나야 하는데 다행히 아직 냉장고가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프래드릭에게 찾아갔다. 우리는 또다시 반갑게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냉장고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프래드릭이 "안돼!"라고 하며 방문을 정말 쎄게 "쾅" 하고 닫아 버렸다. 아직 깎아달라고 정확하게 말도 안 했지만 내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고작 천 루블 때문에 프래드릭과의 관계도 망가뜨리기 싫었다. 결국 프래드릭의 냉장고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프래드릭의 방으로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도 가볍게 악수와 인사를 나눈 뒤 바로 6천 루블에 냉장고를 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프래드릭, 냉장고 바로 살게 6천 루블 가져왔어."

"오, 친구!! 좋아 좋아, 그러면 바로 옮겨줄까?


프래드릭의 태도가 변했다. 네고 없이 산다고 하니 다시 웃으며 나를 맞이하고 친한 친구처럼 대해준다. 그렇게 프래드릭에게 돈을 건네고 냉장고를 함께 내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프래드릭은 다음날 핀란드로 떠났다. 우리는 뜨거운 악수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서로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해 줬다. 마음속 한편에는 좀생이처럼 냉장고를 깎아주지 않은 프래드릭이 얄밉기도 했지만, 프레더릭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냉장고를 구매했으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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