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러시아에서 한국인과 거리 두기

나는 왜 거리두는게 맞다고 믿었던 것일까?

by 크바스
러시아에 처음 발을 디뎠던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바 공항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러시아어를 단 한 마디도 배우지 못한 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인사말조차 모르는 나라에서 앞으로 6년을 살아간다니, 숨이 턱 막혔다.


러시아 유학을 준비하면서 현지 정보를 알아보는 일은 꼭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져보는 것뿐이었다. 주변에서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사람을 찾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커뮤니티에서 찾아본 글들은 예상외로 비판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절망에 가까운 경험담들이 많았고, 긍정적인 글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도 턱없이 부족했다.



뉴스와 커뮤니티를 통해 접한 스킨헤드 소식...


여러 커뮤니티를 돌며 수집한 정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킨헤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대부분이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스킨헤드처럼 생긴 사람이 지나갔다.”

“눈이 마주쳤다.”


이런 단순한 목격담부터, 그들이 폭력적이며 동양인을 노린다는 구체적인 사례들까지 다양했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 글들만으로도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러시아와 관련된 정보는 대부분 공포에 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을 끌었던 건 언어 습득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러시아에서 살아가려면, 언어 능력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많은 이들이 어학당에 다니며 공부했는데, 기본적인 소통이 가능해지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이런 의견은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등 다양한 나라의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빠르게 언어를 익히기 위해선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조언이 많았다. 일부러 기숙사와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하거나, 현지 가정에서 하숙을 하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한국인끼리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술자리가 잦아지고, 함께 노는 데 집중하게 되면서 정작 언어 공부는 뒷전이 되기 쉽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이 건네는 조언은 대부분 비슷한 톤이었다.


“러시아에는 스킨헤드가 많으니 조심하세요!”
“무조건 현지 친구들과 친해지세요!”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듣고 있으면 점점 러시아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더 커져만 갔다. 이런 극단적인 글들을 접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공부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지에 도착하면 러시아어 공부를 위해 한국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2008년 9월, 드디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타지에 첫발을 내딛자, 예상보다 차가운 공기가 먼저 피부에 와닿았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조용히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내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기숙사에 도착하니 중국인 룸메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1년 먼저 도착해 이제 막 러시아 국립대학교 1학년으로 생활 중이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룸메이트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다. 언젠가 그와 러시아어로 대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지만 기숙사 3층에는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3층 흡연실에 가 보니, 그 공간은 온통 한국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가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형들이었고, 대부분 20대 중후반이었다. 그들은 의외로 친근하게 다가와 “어린 나이에 고생 많다”고 위로해 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 따뜻한 말들이 고맙기는 했지만, 나는 마음속 경계를 쉽게 풀지 않았다.


바실리섬 외곽에 위치한 학교 기숙사


한 달 동안은 한국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생활했다. 기숙사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만 나눴고, 깊은 교류는 피하려고 했다. 그 대신 어학당 친구들과 러시아 사람들을 사귀며, 언어를 배울 기회를 늘리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비자 발급과 관련된 문제가 생겼다. 혼자 해결해 보려 했지만, 부족한 러시아어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한 한국인 누나가 도움을 주겠다며 나섰다. 다음 날 학교 담당자에게 직접 찾아가 필요한 것들을 물어봐 주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누나뿐 아니라, 막내 친구도 기꺼이 나를 도와줬다. 함께 외국인 학부 사무실에 가서 내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필요한 조언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어렵고 복잡했던 문제를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고, 나는 진심 어린 고마움을 느꼈다.


타지에서 한국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 했던 내 계획은,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때로는 서로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 공부와 현지 적응에 몰두하며 홀로서기를 꿈꿨지만, 결국 누군가와 함께하고 서로 돕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 자리는 버스 차장 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