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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써글 Sep 20. 2020

연봉계약서: 내 영혼에 매겨진 가격표

청춘의 끝과 하드보일드 회사랜드

사람 목숨의 가치는 얼마일까?


“여러분, 사람 목숨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대학교 경제학 수업 첫 시간, 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지금이야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할 수 있을 질문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모두 순진한 학생이었기에 교수의 말에 아무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돈으로 환산하고 있습니다.”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예를 들어 보죠. 만약 사람의 목숨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나라에서 법으로라도 세상의 모든 차를 운행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하루에도 교통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보다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고 물건을 원하는 곳으로 옮기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이 훨씬 크다고 우리는 이미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고, 교실 안 누구도 경제학자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Photo by Roman Synkevych on Unsplash
나의 영혼을 계약하다


   제시 제이(Jessie J)의 Price Tag이란 노래 도입부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Seems like everybody's got a price” 직역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가격표가 달린 것 같다’ 정도로 해석이 된다. 내가 나에게 달린 가격표를 처음 확인한 날은 바로 입사 후 첫날, 연봉계약서 쓸 때이다. 


   연봉계약서라는 종이에는 이미 떡하니 나의 가치가 숫자로 적혀 있었다. ‘연봉 OO,OOO,OOO원’ 이라고 1원 단위까지 친절하게 표시된 구체적인 숫자를 보니 그 경제학 교수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하루 중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회사가 정한 장소에 나와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너에게 이만큼의 돈을 주려고 하는데 계약하든지 말든지? 라는 뉘앙스가 적힌 종이를 인사담당자가 가지고 와서 마치 부동산 계약을 할 때처럼, 어디 어디에 사인과 간인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마저 판 파우스트의 심정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고는 속으로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라고 되뇌었다.


   그 후 나의 취업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려운 시기에 취직한 것을 축하한다며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너는 이제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 거야. 이제부터 월급을 받는 대가로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인생의 절반은 상사라는 사람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게 될 거고 그 나머지 절반도 출퇴근과 야근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쓸지도 몰라.’와 같은 실질적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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