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나이 들어도 똑똑하셔요

#29. 엄마는 왜 나이 들어도 똑똑하셔요

by 수현

(오늘은 맥주를 했더니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싶어진다)


가끔 엄마가 너무 똑똑하고 승부욕 넘쳐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으신데 같이 게임하다 보면 전략 짜는 게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옛날에 상황이 좋았더라면 대학을 가서 날리셨을 것 같은데 좀 아깝다. (옛날에 변호사가 꿈이셨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온누리상품권이라고 있다.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인데 설날에 구매하면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때 한번 나에게 50만 원어치를 사놓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0,000원짜리 상품권을 내고 6,000원짜리 물건을 구매하면 4,000원은 현금으로 돌려줘. 그럼 9,000원 현금 주고 4,000원 받았으니까 17% 할인을 받는 셈이야. 가끔 5,000원짜리 구매해도 그냥 5,000원을 현금으로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무려 20% 할인을 받는 거야."

물건 살 때 이렇게까지 계산해서 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실생활에서 산수를 잘 활용하고 계셨다. 나는 감탄의 박수를 쳤다. "와 엄마 대단하다."


이런 단순한 산수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면 엄마의 두뇌 회전이 빛을 발한다. 엄마와 나는 29년 차이가 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두뇌 회전력이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나는 엄마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야 한다. 모든 게임이 다 그렇진 않지만 그때 '쿼리도'라는 멘사 선정 보드게임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이 게임을 못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 게임의 경우 '웬만한 사람'이랑 하면 70% 내가 이긴다.) 엄마에게 룰을 알려주고 처음 게임을 하는데 엄마가 이겼다. 순간 당황해서 그다음에는 집중해서 내가 이기긴 했지만 엄마를 쉽게 봐줘선 안된다는 것을 그때 제대로 깨달았다. 룰이 어려운 경우에는 익숙지 않아서 잘 못하시지만 이렇게 룰이 간단하여 전략이 90% 이상을 차지할 경우에는 30년 정도 어린 나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집중하시면서 전략을 구사하신다.


무엇보다 엄마의 승부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본인은 아마 모를 테다. 평소에 엄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식의 가치관을 갖고 계신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타입이다. 근데 같이 게임을 해보면 승부욕이 넘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손을 들고 공정성을 외치신다. 본인이 질 것 같을 때 가끔씩 우겨서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건 애교이다. 가끔씩 정색하고 달려들 땐 나보다 더하구나 싶다. (나도 한 승부욕 하지만 엄마와의 전투에서 그걸 드러내진 않는다.)


아빠를 논외로 하면 엄마의 이런 총명함(?)은 (굳이 유전이 된다면) 언니가 물려받은 것 같다. 어릴 때 언니가 하도 '천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는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았다. 아이큐 테스트에서 150 정도였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바보'라는 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엄마가 나를 고지식하다고 '미련곰탱이'라고 불렀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상처도 많이 받았었다.


'미련곰탱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된 후이다. 지금이야 사실 천재니 뭐니에 좌지우지될 나이가 아니긴 하지만, 그보다 나이 들어 사회생활을 해보니 일상의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옛날보다 덜 하긴 하지만) 나는 미련할 만큼 꾸준히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씌운 프레임이 나를 지배했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성인이 되어 부단히 노력한 끝에 나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부모님의 좋은 걸 다 물려받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보다 내가 가진 장점을 인정하고 개발하는 힘이 생겨서 좋다. (오늘은 결론을 어찌 맺어야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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