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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 닻 내리기

바라나시의 강물로 살아보기 (2)

by 이준석


영성은 인식되지 못할 정도로 희미할 뿐 인간에게는 영성이 있다.

스스로 영적 가치에 닻을 내리기로 선택하면,

그 희미한 개념은 현실이 되어 지금 여기에 드러난다.

나의 영성은 바라나시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물은 그것의 형태와 움직임뿐만 아니라 인도인의 삶 어떤 모습도 포용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유연하다. 생활용수부터 영혼을 인도하기까지, 인도인의 생활의 최전선이자 죽음의 순간이며 나아가 사후 세계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으로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나는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갠지스 강변 따라 길게 뻗어진 가트를 걷는다. 오전부터 가트에 모인 인도인들이 무언가의 준비로 분주하다. 그들은 미소 짓고 웃는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그날 밤에 디왈리 축제가 있다고 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바라나시의 하늘이 붉게 물든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가트로 운집한다. 갠지스 강 위에는 수많은 작은 나룻배들이 떠있고, 그 안에 사람들은 작은 등불을 들고 서 있다. 이미 가트에도 수천 명의 인도인과 관광객이 모여있다. 실크 소재의 전통 복장을 두른 사제들은 현란하면서도 절제된 몸동작을 선보이며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들, 사제들의 말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들, 생경하고 성스러운 광경에 눈을 뗄 수 없는 관광객 등 모두가 저마다의 시선으로 제사에 참여한다. 가트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불꽃놀이를 준비하고 있고, 이미 몇몇 다른 가트에서 산발적으로 쏘아 올린 폭죽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서 터지고 쏟아진다. 화약 내와 뿌연 연기가 눈과 코를 자극한다.


사제와 악사의 기도와 연주는 그 공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내게서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지는 않지만 내가 그곳에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준다. 그 믿음은 현재에 닻을 내린 내 오감이 지지한다. 나아가 그들의 제사 행위는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소망과 바람을 비춘다. 무엇인가 잘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은 모두 같고 보편적이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러한 바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비언어적으로 공명하는 그 힘을 본다. 그리고 나 또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그리고 내 옆의 낯선 이국의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편안해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 하지 않아도 편안해질 수 있음을 느낀다. 인정받기 위한 작위적인 언행들, 불안함을 유발했던 그들에서 멀어지기 위한 애씀, 남들과 비교하며 자격지심 가득했던 과거를 가리기 위한 허장성세, 사실은 보잘것없다고 소곤대던 나의 마음, 얻지 못한 것들로 번민하고 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그리고 그 모든 괴로운 생각들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마술적 믿음…


고통은 이처럼 마음이 마음을 더하고 이유를 대며 분투하는 마찰로 심한 염증을 낳는다. 운집한 사람들은 여기에 모여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처럼 빛나는 눈, 번민하는 마음, 흐르는 눈물, 기쁨의 미소는 사실이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와 그대들에게 존재한다. 인간이기에 이 공간 흐르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감지한다. 공명하는 감정, 영성에 닻을 내리자 더 예민해진 감각은 마음이 마음을 더하는 행동을 잊게 하고 현재의 감각과 마음을 거둔 감정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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