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인간은 일부러 힘든 선택을 하는가?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된 친구에게 근황을 업데이트받다가 '최근에 있었던 개인적 일'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바로 '이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이혼은 정말 실존적 결단이구나.
2. 우리의 기대 수명이 정말 길어졌구나.
결혼은 실존적 결단이 보통은 아니다. 아직도 결혼은 사회적인 통과의례기도 하고 그냥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남들이 하는 선택이라 그 선택의 가치가 낮다는 게 아니다. 결국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내 것 인양 착각하거나 새뇌를 하거나 신봉한다. 전 세계적으로 혼인율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건 사회 구조, 경제적 환경 변화가 더 큰 이유 같다.
하지만 이혼은 결혼보다 실존적 결단이다. 이혼은 사회적 통과의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 결국 모든 인간은 선택과 행동을 통해서 진짜 자신을 알게 되는데 이혼은 가치 판단에서 배제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결혼을 보통은 '축하'하지만 이혼은 그게 당사자들에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다. '결혼식'은 있지만 '이혼식'은 없는 이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에서 '이혼을 했다'라는 사람 앞에서는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고생 많았으니 이제 축하한다'라고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출산은? 출산은 대충 70년대생까지는 결혼을 하면 남들이 하니까 하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결혼해서 애를 낳는 것이 '실존적 고민'이 되어가고 있다. 출산율이 오를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창업이나 사업은? 내 기준에서 많은 경우 '사업을 하게 되는 선택'은 실존적 결단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해보면 될 거 같은데' 거나 '안돼도 되니까 한번 시도해 보자'의 경우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진짜 실존적 결단이라면 예를 들어 사업이 충분히 커지고 엑싯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엣싯을 하거나' 아니면 '더 사업을 키우는' 정도가 돼야 한다. 비슷한 예로 누군가 갑자기 돈이 많아지면 하게 되는 선택이 '실존적 결단'에 가깝다. 그리고 하는 선택은 보통 경제적 계급 상승과 안정성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
인간은 실존적 결단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예수는 말할 것도 없고, 로미오는 줄리엣이 원수 가문의 딸인걸 알고도 사랑을 선택한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닌 걸 알았지만 요원과 맞서 싸우는 걸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