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조 Jan 12. 2021

걸어서 샛강 생태공원까지

어, 엄마 강으로 검색한 것 같은데.


준후는 방학이다.

일 학년 첫 번째 방학은 순순히 방과후를 가주더니, 겨울방학에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얼르고 꼬시고 협박하고 기타 등등 방법을 써보았지만 준후는 여전히 확고했다.

그래서 한 달은 방과후에 가고 한 달은 집에서 놀기로 협상했다.

1월은 준후가 투쟁 끝에 얻은 한 달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이 벌써 10일이 지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 한번 번번이 못해본 열흘이었다.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온후와 나후도 어린이집에 못 가고 있었으니

몸이 무거워 어딜 나갈 생각도 못했다.

속도가 정말 다른 5살 7살 9살 아이들을 동시에 산책시킨다는 건 어익후;;

심지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장갑 모자 장화까지 챙기면 나가는데 삼십 분이다.

문 앞에서 “이제 들어가자” 소리가 저절로...

나가봤자 집 앞 편의점이나 공원 정도?

얼레벌레 할머니 집에 맡겨져 하루 이틀 지냈던 게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래도 집이 그리 좋은지, 꿀발라 놨나 보다.

소파에 반대로 드러누워 얼굴에 벌겋게 피 쏠리는 게 그렇게 즐거운 일인가.

히죽거리며 시간을 쪼갠다.


학교에서 아이가 ‘멍’해질 때가 종종 있다고 해서,

위로하는 마음을 더해

“멍한 건 정말 좋은 일 이래. 멍해질 때마다 머리가 휴식을 취하는 거야. 그래서 머리가 맑아진대.”

라고 말한 때부터 아이는 자신 있게 멍의 세계로 간다.

소파에 드러누워 즐거운 멍의 세계로의 여행을 떠난다.

혹은 텔레비전의 세계로....


쉬는 날엔 이런 식.


더 이상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색깔 없는 방학을 보내겠다 싶어서 일단 2,3번 꼬맹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리고 바로 준후와의 시간


“준후야 이 시를 노트에 베껴 쓰자,”

열 글자나 썼을까,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 너무 힘들어..”

“뭐 얼마나 썼어야 힘들다고 하지.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시작했어. 그래도 너무 많이 남았다고 힘들어.”

눈물바람 하는 아홉 살짜리랑 거센 실랑이를 나눴다.

언제나 내가 진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도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싶다.

준후는 글씨를 읽는 건 좀 재미있어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쓰는 건 싫어하고 손가락 힘이 부족하다.

연습을 해야지...


그래도 내가 진 건 진 거다.

“그래. 준후야. 그럼 일기를 쓰자.”

또 내가 졌다.


“그래. 준후야. 그럼 수학 문제집을 풀자.”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

셈을 좋아하고, 셈을 잘한다는 게 즐거운 아이니까, 약간의 꼼수를 발휘하여, 다음 주에 수학으로 된 시를 직접 써서 너에게 베끼라고 하겠다!!!

어쨌든 어렵다고 소문난 주관식 서술형까지 잘 해석해서 잘 풀어낸다.

식을 만들라고 하니까, 식이 뭐냐고 물어봐서 설명해주니

그다음 “까닭”을 말하라는 주관식에 “식이니까”라고 쿨하게 “까닭”을 써낸다. 짜식.

그래도 이해를 하며 읽고 있구먼.


그래도 했어! 물음표에 들어있는 숨은 양심(잘 모르게떠요....)


자 이제 수학 문제집을 풀었으니, 한번 본격적으로 놀러 가볼까?


준후는 할아버지랑 한번 등산을 갔던 경험으로 산을 좋아하게 됐다.

“엄마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 어디야? 산에 가자.”

그런데 엄마는 산이 어딘지 모르겠구나. 집에서 관악산이 보이지만 너무 멀고, 서울에서 산 찾기란...

일단 샛강 생태공원을 검색해놓고, 그냥 걸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동네 공원의 돌담에서 준후가 외친다

“와 암벽이다!!” 산에 도착했어!!


와 산에 도착했다. 이제 집에 가자.


자꾸 이상한 너스레를 늘어놓는 아이와 함께 샛강공원으로 갔다.

적어도 삼십 분은 걸어야 해서 지칠까 봐 모험을 떠나는 걸로 했다.

준후가 찾은 길로 함께 걸어가는 척, 함께 사십 분을 걸으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연애 시절 한번 가봤지만 신길역 쪽으로 진입하는 길은 처음이었다. 노들길을 달리다 보면 보이는 인상적인 인도교가 샛강 다리고, 다리를 건너면 중간에 샛강 생태 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샛강 생태공원으로 진입하는 길은 이 곳 말고도 여러 곳이 있는 것 같다.

준후랑 다니면서 진입로와 주차장을 샅샅이 알아 놓(으려고 했는데, 어제 넘 힘드뤄쒀...)고 싶다.

그래야 꼬맹이랑도 가지.


오늘은 얼음깨기 놀이!


두 시간을 신나게 놀고, 사정사정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고 싶다고 해서 귀여운 내 새끼 소원 들어주려고 지하철 탔다가 진이 다 빠졌다.

우리 집은 7호선 신풍역인데, 역에서도 꽤 걷는데.... ㅠㅠ

1호선 신길역에서 고작 네정거장인데 환승을 두번 해야 했다!! 그마저도 엄청 돌아가는 길이고!!

또 7호선은 얼마나 깊은지,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가는데 그 회의감이란....

안준후야!! 버스 타면 한방에 간다규!!! 15분 걸린다구!!!


다음에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집에 가기로 꼭꼭 약속하고 오늘 나들이를 마쳤다.


-끝-


우리 너무 힘들었다 그치?


매거진의 이전글 화안내기 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