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이제 내 건데
남편의 직업은 넥타이가 필요 없다.
결혼 전에 필요에 의해, 혹은 형식적으로, 때론 선물로
구색을 갖춰놓은 싸구려 넥타이가 열개 남짓.
옷장 가장 구석에 쌓여있는 넥타이를 발견한 건 딸이 다섯 살 때였다.
집에 오면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한복 치마와 드레스를 번갈아 갈아입던 딸은 이 넥타이의 다양항 활용을 발견했다.
허리를 동여매고 리본 벨트를 만들거나, 목에 둘러 스카프를 만들거나, 머리에 꼭 맞게 묶어 머리띠를 연출했다.
큰 아들의 활용 방법은 더욱 색달랐다.
넥타이들의 매듭을 연결해, 드레스룸 헹거에 요리조리 묶어 스파이더맨이나 매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거미집도 만들고,
털 뭉치 인형들을 굴비 엮듯 하나로 만들기도 했다.
동생들 허리에 묶어서 기차를 태우기도 하고.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 저 넥타이는 딸의 독차지가 되었다.
딸의 친구가 올 때면, 우르르 장이 있는 안방으로 달려가 재빨리 드레스로 갈아입고, 모든 넥타이를 총동원해 모습을 꾸민다.
최근 딸아이가 넥타이의 신박한 기능을 발견했는데, 바로 구미호 변신에 사용하는 거다.
오래돼서 허리에 꽉 끼는 튜튜스커트와 넥타이 아홉 개가 있으면 되는데, 만들기는 아주 쉽다.
몸에 입은 건지 끼운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튜튜스커트를 걸친 뒤, 넥타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구겨 넣으면 된다.
넥타이는 몹시 미끄럽기 때문에 놀다 보면 튀어나오기 일쑤지만, 기적의 스토리텔링으로 넘길 수 있다.
“어머머, 내가 또 변신을 했네 호호호.”
아침, 바닥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넥타이를 한데 걸쳐놓은 뒤, 한소리 타임
"온후야. 아빠 넥타이를 이렇게 바닥에 마구 흩뜨려 놓으면 어떻게 해."
"내 건데???"
…
아. 네 거였지. … "네 거면, 이렇게 놓아도 되니?"
…
자연스럽게 남편의 넥타이는 딸 소유가 되었다.
이제 곧 딸이 학교에 가니, 막내의 소유가 되려나?
멋진 재사용이고 대물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