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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현 May 24. 2023

나는 살아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 아들로

 학교에 돌아갔더니 며칠 동안 비웠던 교실의 냄새는 그대로였다. 나는 이제 다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정치 생활을 하셨는데 다시 일 자리로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시작했고, 형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로 돌아갔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의 삶만이 큰 변화를 겪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스스로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에서 밤까지 자습을 하고 잠이 들 때면 엄마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형과 약속했다. 남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 아들들이 되기로. 정말 그렇게 약속했다. 나 또한 어린 나이었기는 했지만 주변에 좋은 친구들도 함께 했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믿었다.


 하지만 내가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견디기에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나 보다. 평소에 공부를 잘 한건 아니지만 부족하지 않게는 했었다. 그런데 공부 또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단지 그 시간에 따라 흘러가듯이 학교생활을 했다. 나의 시간은 7월에 멈춰있는 듯싶었으나 실제 시간은 여러 계절이 지났다. 엄마의 기일 1주년도 보냈고, 수시와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도 찾아왔다. 그때까지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정말 잘 살아내고 싶었는데, 잘 산다는 게 뭔가. 엇나가지 않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주말에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밥 먹고,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학교생활을 별 탈 없이 잘 지냈으니 잘 산 것 아닐까. 그게 고등학생이던 내가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과를 정해야 하는데 막막했다. 성적에 맞춰가기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과에 가고 싶었다. 대학교에 진학 후에 가는 길이 바뀔 수 있지만 시작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는 중학교 때, 엄마의 추천으로 연극동아리를 들어가서 연극부를 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선생님이 발표만 시켜도 긴장해서 울먹거리던 내게 엄마가 추천했던 것이다. 3년 동안 도에서 개인연기상을 놓치지 않으면서 나름 잘했었다. 연극부 선생님이 예술고등학교를 추천해 주셨었지만, 부모님과의 의견차이로 결국엔 인문계에 진학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교를 연기 관련된 과로 가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고3 마지막 시기에 갑자기 연기과를 준비한다는 게 스스로에게 두려움으로 찾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연기전공은 접어두었다. 딱 그 정도의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열정은 컸지만 그 그릇을 담기에는 나 스스로가 부족했었을까.


 그럼 나는 어디를 가야 할까. 항상 마음속 한편에 나중에 커서 나처럼 청소년기에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지금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사회복지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버지도 청소년 관련 정책과 행사들을 중점적으로 정치생활을 하셨었다. 청소년 의원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형 또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엄마뿐 아니라, 아버지와 형이 내게 보여줬던 아름다운 세상은 내 마음의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과를 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엄마도 내가 선택한 이 길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순위 희망은 아니었지만 2순위 희망 학과로 모두 지원했다. 그렇게 나는 배우가 아닌 사회복지사의 길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어찌 보면 나는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사실은 내가 가장 원했던 곳에 도전도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게 중요하다면 중요한 선택의 시기에 나는 나의 진정한 마음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차차 이야기를 하겠지만, 후회를 안 한다고도 후회를 한다고도 말을 못 하겠다. 아직도 내가 그때의 선택들에 대해서 정확히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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