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다. 그리고 1.4 후퇴 이후의 배경 안에서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성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존재를 잃어가는 전쟁터 속에서 그래도 그것을 잃지 않고 지켜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성장에 포함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비롯해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읽을 때면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를, 정말 괴물 같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 한 인간이 잡아먹혀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느꼈던 점이 있다. 이 소설의 인물은 인간으로의 자신을 지키고,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더 고통을 겪는다. 소설에서도 표현되는 인물들이 있지만, 사실 인간적인 가치를 내려놓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그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보다 고통 없이 그 상황에 물들어서 살아갈 수 있다. 상황에 순응하는 거니까.
하지만 인간의 가치를 묵살해 버리려는 상황에서 그 가치를 지키는 행동은 그의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보다 더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 가장 숭고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단지 인간의 가치라는 의미보다 더 깊은 가치를 가지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 정말 깊게 다가 온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한 예술 공연을 보러 가는 장면이다. 가는 길에는 불도 들어오지 않아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고 간다. 그리고 예술 공연장에 도착해서 공연을 본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예술 공연에 대해서 구역질이 났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며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인데, 예술이라는 것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상황에 대한 꼬집음일수도 있지만, 예술을 하는 내가 느끼기에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다가왔다.
흔히 '배고픈 예술가'라는 말이 있다. 사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각자 받아들이는 바는 존중하지만 나는 안 그렇다는 거다. 예술하려고 배고프기도 싫고, 배고프려고 예술하기도 싫다.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모든 상황이 도움이 되겠지만, 작품이 나왔을 때 그것을 온전히 표현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들 충족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는 이도 보는 이도. 예술전에 분명히 더 중요한 것들이 존재한다. 그게 우리가 먼저 함께 이루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산'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인간의 가치를 잃은 상황 속에서도 그 가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산은 공간적이지만, 공간적인 곳을 표현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상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제목이 '있었을까'로 끝나는데, 깊게 고민해 보니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지내오면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그런 인물들이 몇몇 나온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인간임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존재들. 그리고 그 인간의 가치를 남에게도 나누어주는 사람들. 그렇게 진정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주인공도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헛구역질 나더라도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한다. 분명 주인공은 곳곳에 있는 산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문장이다. 글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읽어도 감탄사가 나오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정말로 몇 번씩 반복해서 읽은 문장들이 많다. 그리고 내가 평소 잘 접하지 못한 표현들도 있어서, 그런 것들은 의미를 찾아보면서 읽었다. 그냥 지나쳐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장 하나하나 너무 좋아서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작가가 고민하고 써 내려간 의도와 표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