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는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성장이 금융 전체를 이끌어가는 거시적 원동력이라면 개별 금융을 이끌어가는 미시적 원동력은 리스크다. 위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넓게 보면 불확실성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금융 회사에서 리스크라고 부르는 만큼 이 장에서는 ‘리스크’라 부르겠다.
경제가 성장해서 내일의 자산이 오늘이 자산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어떤 자산은 내일의 가치가 오늘보다 더 떨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자산은 다른 자산의 성장률을 뛰어넘기도 한다. 그리고 시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산에 대해 어떤 것은 상승하고, 또 어떤 것은 하락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수준, 혹은 평균적인 수준을 경제 성장이 이끌어간다.
빗대어 표현하면 금융이라는 바다에서 성장은 바람의 역할을 하고, 리스크는 바다 위에 놓인 수많은 배 중 어떤 것을 탈 지 결정하는 일이다. 어떤 배는 작고 좁은 폭을 가져서 파도가 세게 칠 때 빠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빠르다. 반대로 어떤 배는 덩치가 커서 거센 파도가 치더라도 빠질 위험이 없지만 그만큼 둔하다.
이 비유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리스크를 가진 투자안은 일반적으로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리스크도 큰데 그에 따른 기대수익도 높지 않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리스크를 덜 지면서 유사한 기대수익을 가진 투자안을 택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리스크가 과도하게 높거나, 혹은 리스크를 지는 만큼의 수익을 낼 수 없는 투자안들은 도태 된다.
그렇다면 리스크가 개별 투자안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도 알겠고, 더 많은 리스크를 가지면 대개 더 높은 기대수익을 가진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렇다면 정확히 금융에서 리스크란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리스크의 정의는 앞서 나왔던 단어 중 ‘불확실성’이 가장 잘 표현해준다. 투자안은 투자가 성공했을 경우 돈을 묵혀 두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우리에게 안겨주지만 투자가 실패하는 경우 우리는 손실을 입게 된다. 그리고 투자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미리 알 수 없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 우리는 그것을 ‘리스크’라 부른다. 다시 말해, 금융이 가지고 있는 ‘확률적 특성’과 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결과가 ‘손실’ 일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사건의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다면 리스크가 아니고, 사건의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우리에게 좋은 방향, 즉 이익으로 이어진다면 리스크라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복권은 확률적으로 결정되지만 그 결과가 이익으로 이어졌다면 리스크라 부르지 않는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리스크는 ‘예상치 못한 손실’이다.
리스크가 ‘예상치 못한 손실’이라는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발생한 손실 중에서 ‘예상 가능한 부분’은 리스크가 아니다. 금융이 확률적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예상 불가능하다고 해 놓고 예상 가능한 부분을 이야기하다니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할 수도 있지만, 확률적 현상에도 예상 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조건이 만족된다면’ 예상 가능한 부분이 만들어진다.
앞에서 우리가 복권 한 장을 샀다면 그 결과에 예상 가능한 부분은 없다. 여기서 전제는 그 복권이 당첨될 확률은 알려져 있다는 가정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간다면, 금융에서 다루는 리스크는 ‘알려진 불확실성’이다. 복권으로 말하자면 당첨 확률이 10% 일 때 당첨 결과는 물론 알 수 없는 확률적 현상이지만 그 현상의 정체는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금융에서 다루는 리스크는 이러한 부분에서 나온다. 애초에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불확실성은 어찌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리스크로 다루지 않는다.
갑자기 내일 우주 어딘가에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 세상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 ‘알려지지 않은 불확실성’이다. 이런 것까지 고민하면서 우리가 금융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금융에서 말하는 리스크는 움직일 거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일의 주가, 이미 시작되었고 성공이나 실패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만 성공일지 실패일지 알 수 없는 투자안의 결과와 같은 것들이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니 복권에서 리스크를 논하자면 복권이 당첨될 확률 정도는 알려져 있어야 한다. 복권은 매번 당첨자의 수를 발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당첨 확률이 밝혀져 있는 좋은 예시이다. 이때 복권 한 장에 대해서는 확률을 알아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복잡하게 고민할 일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 같은 복권을 100장을 사고, 또 1,000장, 10,000장을 산다고 가정하게 되면 이때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복권 10,000장을 샀을 때, 당첨될 확률이 10%인 복권이라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1,000장에 비교적 가까운, 즉 당첨된 복권의 비율이 10%에 꽤 가까울 거라 말할 수 있다. 이 복권이 등수가 없는 복권이고 당첨이면 1,000원, 꽝일 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10%에 가까운 복권이 당첨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1,000개, 1,000,000 원 정도를 ‘평균적으로’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 복권 한 장의 가격이 100원이었다면 ‘평균적으로’ 이 복권을 10,000장 사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0원이다. 100만 원을 지출해 10,000장을 사고 100만 원을 당첨금으로 얻을 거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확률이 관여하더라도 ‘리스크’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리스크는 당첨되는 복권의 비율이 ‘평균적인 수준’, 혹은 ‘예상’에서 벗어나 10%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10,000장을 사서 결과를 봤더니 9%에 해당하는 900개만 당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첨금은 90만 원이다. 이때는 복권 10,000장을 사는 일의 결과가 10만 원 손실로 귀결된다. 우리의 예상은 이익도, 손실도 아닌 0원이었다. 지금의 결과는 예상치 못한 손실 10만 원이며, 우리는 이 10만 원을 ‘리스크’라 부르는 것이다.
이 예시에서 중요한 점은 복권이 10,000장이었다는 사실이다. 복권 1장이라면 거기에는 예상 가능한 부분이 없다. 그저 확정적 지출 100원이 있을 뿐이고, 확률적 현상에 예상 가능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예상을 벗어난 손실’, 리스크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복권을 많이 사면 살수록 예상 가능한 부분이 생겨난다. 당첨 확률 10%는 한 장에 대해서는 예상 가능한 부분을 만들어 주지 않지만 많이 사면 살수록 평균적인 당첨 비율이 10%에 수렴해 갈 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수학에서 ‘큰 수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이 법칙이 우리에게 예상 가능한 부분을 만들어주고, 우리는 거기에서 출발해서 예상에서 벗어난 손실인 리스크를 정의한다. 물론, 예상에서 얼마나 벗어났을 때를 리스크라 정의할지 또한 중요하다. 아까는 9%가 당첨되었을 때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당첨 확률이 10% 일 때 9% 정도 당첨되는 일은 나름 흔할 수도 있다. 우리가 리스크에 대해 어떤 수준을 정의해야 한다면 더 극단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고, 평균적인 수준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런 경우가 발생할 확률은 줄어든다. 9%가 당첨될 확률보다는 7%만 당첨될 확률이 더 드물고 그보다는 또 5%만 당첨될 확률이 더 드물다. 물론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1%만 당첨되는 것처럼 아예 발생하기 어려운 수준을 리스크라고 생각한다면 리스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잉대응’이 벌어질 수 있다.
보통 금융회사는 리스크를 정의하고 나면 마치 불이 났을 때를 가정해서 화재대응훈련을 하는 것처럼 그 리스크가 현실화되더라도 회사가 휘청거리지 않을 만큼의 대비를 하는데 더 극단적인 경우는 대비에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할 것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회사가 리스크라고 부르는 수준에서 100만 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면 적어도 100만 원은 항상 회사의 주머니에 들고 있어야 한다.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에서 가진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주머니에 들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비용을 의미한다. 그러니 리스크를 다루는 금융 회사는 발생 가능한 사건들의 확률을 보다 더 정교하게 추정해서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으면서도 그중에서 최소의 비용이 발생하는 수준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화재에 대비하면서도 여기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가 된다. 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관리 목적으로만 생각했던 리스크 관리가 최근에는 적극적 수익 추구 행위의 일종으로 생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