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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핀테크, 혹은 테크핀

핀테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핀테크는 금융을 뜻하는 Finance와 기술을 뜻하는 Technology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로, 데이터 기반 기술을 통해 금융 산업에 진출한 기업을 의미한다. 금융을 한다는 것보다 기술에 기반한다는 점에 무게를 싣는 경우에는 테크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게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내가 가입하고 있는 보험 상품의 보장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개인 금융 비서를 표방하는 가계부, 혹은 자산 관리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확장성에 기반해 가입자를 끌어모으고 간편 송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등이 모두 핀테크 기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핀테크라고 하면 알고리즘이나 어플리케이션에 기반한 플랫폼을 통해 금융 산업에 발을 들인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핀테크 기업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이제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꽤 인정받는, 높은 기업 가치를 지닌 핀테크 기업도 다수 만들어지게 되었다. 알고리즘이나 플랫폼에 기반한 기술을 금융에 접목한다고 하니 일단 좋아 보이긴 하는데 정확히 핀테크 기업의 어떤 면이 금융 산업의 핵심을 관통했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는가? 혹은 왜 이미 금융 시장을 꽉 잡고 있는 거대 기업들이 새롭게 생겨난 핀테크 회사의 확장에 시장 지배력을 빼앗기기도 하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가?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설명하려 하면 무엇인가 모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연 핀테크 기업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사실 모든 금융 회사가 핀테크 기업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성장에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회사는 은행, 증권, 그리고 보험사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금융은 지금껏 우리가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들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금융 시장과 우리 같은 보통의 금융 소비자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은행은 대개 채권을 다루고 증권은 투자안을 다루고 보험사는 보험상품을 다루지만 상품이라는 구체성을 떼어 놓고 바라본다면 이러한 상품을 필요로 하는 개인과 금융 시장 사이에서 '매개체'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세 가지 소매 금융의 핵심 사업 모델이라는 점이 핀테크 기업과 그들 소매 금융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물론 매개체로서의 역할만 가지고 이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도 금융시장을 통해 2차적인 투자 수익을 확보하고, 증권은 기본적으로 투자 활동이 일어남에 따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보험도 예상보다 보험금이 적게 나가거나, 혹은 미리 거수한 보험료를 통해 높은 투자수익을 얻는다면 여타의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다수의 개인 금융 소비자와 만나는 이들 기업의 성장동력은 '더 많은 고객의 확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예금을 거치하고, 또 대출도 해야 은행이 창출하는 가장 큰 수익 원천 중 하나인 예대마진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자산이 커야 2차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자도 더 활발해진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금융은 성장에 기반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갖는다. 그러니 더 많은 소비자가 필요한 이유는 당연하다. 증권사도 유망한 기업의 IPO를 주관하거나 규모가 큰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참여해서 큰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지만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서 예치금을 넣어 놓지 않는다면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 어플을 통해 거래를 하면서 내는 수수료 수익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증권사의 주요 수익 원천이다. 보험사라고 다르지 않다. 보험료와 보험금의 차이에서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보험금이 더 많이 지출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것보다는 기본적으로 보험료에 포함되어 있는 수수료는 남는 만큼 이익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보험료를 거수하면 거수할수록 자연스럽게 수수료에 해당하는 이익이 남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이들 세 가지 소매금융은 소비자와 금융 시장을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얻는 수수료, 혹은 수수료와 유사한 형태의 이익이 기초체력이다. 기초체력이라는 말은 수익 자체가 중요할 뿐 아니라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자산의 크기를 키울 수도 없기 때문에 투자를 통한 2차 수익 확보도 자연스럽게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가입자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특징이 기업금융과 소매금융의 본질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주로 파생상품을 많이 다루는 투자은행이나 재보험사, 각종 자산운용사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투자자 혹은 기업투자자의 자본에 기반하고 투자를 통한 이익의 확보가 목표다. 이들에게는 투자 수익이 본질이지 매개체 역할을 통한 수익의 확보가 본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핀테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왜 핀테크 업체가 금융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세 가지 소매금융 회사에게 특히 더 위협적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매 금융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입자의 확보'가 핀테크 기업에게는 가장 자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위협을 느끼고, 부딪치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대부분의 핀테크 기업이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편의성이다. 그 편의성을 통해 수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는 것이 장점이자, 목표이자, 핀테크 기업의 자산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금융 상품이 필요할 때 기존 금융 회사에 가면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데 핀테크 기업의 어플에 접속하면 그런 절차가 없이 간단하고, 빠르게 원하는 상품을 찾아 가입할 수 있다.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융회사에 가서 애쓸 필요가 없다.


물론 매개 역할을 넘어서 본질적인 금융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는 핀테크 기업은 처음에 순수한 매개체 역할만 대체한다. 어플을 통해 수많은 은행의 예금을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고, 내가 각 은행에 예금을 얼마큼씩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는 있지만 예금 계좌를 개설하거나 돈을 송금하려면 결국 어플에서 연결해주는 은행에 접속해야 한다. 보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내가 가입한 보험에 어떤 것이 있는지, 내 보험상품의 보장이 충분한지 혹은 아닌지는 핀테크 스타트업의 어플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막상 새로운 상품에 가입하려면 어플이 연결해주는 보험회사에서 가입해야 한다. 물론 여기까지만 해도 소매금융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의 한 축을 위협하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초기에 기존 금융사들이 핀테크 기업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금융의 본질적 영역을 침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핀테크 기업들은 이 벽마저 넘어서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 금융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효과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플랫폼에 많은 사용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투자금이 수수료 수익을 상회한다. 하지만 요즘 많은 플랫폼 기업이 보여주는 모습처럼 일단 사용자를 충분히 확보하고 나면 자본은 수익을 통해 채워 넣을 필요가 없었다. 플랫폼 지배력을 확보하기만 하면 자본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 사모펀드도 좋고, 자신 있다면 기업공개를 통해 자본금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도 있다.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자본까지 얻었다면 이제 핀테크 기업은 기존 소매금융사와 비교해서 전혀 꿀릴 것이 없다. 금융시장에서 소매금융이 했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소비자와 시장 간의 연결도 대체하고,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운영하는 본질의 영역에도 자본을 바탕으로 서서히 진입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둘 간의 관계를 한쪽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가장 핵심적인 영역을 빼앗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금융업을 해왔던 노하우도 가지고 있는 금융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금융업 자체에서 가지고 있는 강점을 유지하되 핀테크 기업의 장점인 편의성도 가져온다면 이미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금융사들이 더 유리한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핀테크 기업의 편의성을 아무리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주계좌를 핀테크 기업 쪽으로 옮기는 선택은 쉽지 않다. 금융이 아주 오래전부터 신뢰에 기반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대안이 있더라도 오랜 기간 금융사가 유지해 온 신뢰를 꺾기는 어렵다. 물론 반대로 이야기하면 기존 금융사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만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시스템에 결함을 보이는 경우에는 마지막 강점마저 잃어버리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아직 남아 있는 신뢰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금융사들은 핀테크 기업의 편의성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몸집이 크면 움직임이 굼뜬 게 당연하듯이 이런 노력이 쉽게 결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금융사 홈페이지나 어플에 접속해보면 예전보다 빠른 속도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며 편의성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핀테크 기업과 세 가지 소매금융사 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히 소매금융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핀테크 기업을 알게 모르게 잠식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이 더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는지 물었을 때 핀테크 기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많은 가입자를 유지해오며 영업했던 금융사들이 가지고 있는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 금융의 본질적인 영역에서 많은 위기를 겪어오며 구축한 백오피스의 노하우가 존재한다면 이들이 허무하게 핀테크 기업에 밀려날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누가 더 많은 돈을 유통하고, 금융의 본질에 더 충실한지가 이 관계의 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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