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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금융위기

무엇이 금융위기를 불러오는가

금융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세계화가 쉽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세계화를 향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작은 부족 마을에서 시작했던 인류는 주변 부족끼리 통합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더 큰 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부족 사회는 더 큰 단위로 합쳐져 국가가 되었다. 인류가 만들어가는 세계화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들 간의 교류는 점점 더 활발해졌고, 때로는 국가를 넘어서는 크기의 제국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세계화의 역사는 전쟁이나 사람, 그리고 물질의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 면도 없지 않지만 세계화에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을 하나 뽑으라면 결국 돈이다. 부족이 국가가 되기 이전에도 부족 사이에는 거래가 일어났고, 국가가 제국이 되지 않더라도 국가들 간에는 활발히 교역이 일어났다. 언제나 돈은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교환되어 왔다.


돈이 세계화의 일등 공신이었던 만큼, 금융이 세계화에서 강점을 보이는 일은 자연스럽다. 오늘과 같은 금융이 태동하면서 성장의 기회가 보이는 곳에 자연스레 몰리기 시작하던 자본은 그 기회가 어디에 있는지에 주저하지 않았다. 국경을 넘어야 하더라도 거기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내 자본을 투자했을 때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금융은 멈추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금융의 세계화가 쉬운 이유는 가벼움 때문이다. 요즘처럼 운송수단이 발달된 시대에도 아직 실물의 세계화는 한계가 있다. 질량이 있고, 부피가 있는 물건을 운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크고, 빠른 배나 비행기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모든 물건을 눈 깜짝할 새 목적지에 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기상 여건이 좋지 않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운송이라는 목적 자체를 달성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돈은 가볍다. 금이나 은으로 만든 실물 화폐만을 사용하던 시절에도 다른 물건보다는 금이나 은이 차지하는 부피가 훨씬 더 작았다. 무거워서 충분히 많은 양을 옮기지 못할 수는 있어도 어떤 물건처럼 아예 옮길 수가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화폐가 발전하면서 돈을 운반하는 일은 더 쉬워졌다. 공신력 있는 지폐나 어음이 각국에서 발행되기 시작하면서 금이나 은보다 훨씬 가볍게 돈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화폐의 진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컴퓨터가 도입되고 전자결제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이제는 실물 화폐의 개념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본질적으로 화폐는 신용을 부여받는 교환 수단이기 때문에 전자 시스템 내에 있는 것에 신뢰할 수 있는 단서만 부여할 수 있다면 화폐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이제는 모든 금융 거래가 전자 시스템 위에서 일어나는 시대가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자산도 손가락만 까딱 해서 거래할 수 있다. 거래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좋아졌고,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거래할 수 있는 세상을 가져왔다.


세계화는 성장의 기회를 찾아내고 촉진시키는 금융의 순기능이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지만 그건 반대로 한 곳이 흔들린다면 세계 전체의 금융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금융위기는 세계화된 금융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이었다.


금융시장이 출렁였던 순간은 종종 있었지만 금융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 순간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였다. 그전까지 금융이 흔들리는 일은 금융 바깥에서 일어난 일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 간에 분쟁이 일어나서 원자재 공급망이 흔들리거나 불의의 사고, 혹은 자연재해가 일으킨 현실의 문제가 금융에 전이되는 일이 많았다. 물론 금융 자체적으로도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전 세계가 하나의 금융망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삐걱대는 일도 있고 아직 금융이 무르익지 않은 시장에 금융이 도입되면서 일시적으로 심한 버블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금융이 안정화되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졌다. 세계는 대체로 평화로운 시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금융시스템은 주요국 곳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잘 흘러갈 것만 같던 금융은 스스로 무너졌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의 부제로 따라오는 서프프라임 모기지 대출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말 그대로 프라임 모기지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모기지 대출이다. 미국도 주택을 매입할 때는 자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데 신용등급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은 주택이 필요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주택담보대출을 하는 은행 입장에서도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어야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신용등급이 좋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하는 것을 은행은 싫어하지 않는다. 물론 채무를 갚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만 채무를 갚을 수 있다는 점만 전제가 되면 오히려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에 높은 금리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은 더 좋다. ‘더 높은 리스크에 더 많은 이익이 따른다’, 금융의 기본 원리 중 하나였다.

은행이 봤을 때 당시 모기지 시장은 채무를 갚을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했다. 미국 주택시장은 호황이었고,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은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해도 은행이 손실을 보지 않는다. 주택 소유권을 넘겨받아 경매에 부쳤을 때 채무를 변제할 만큼의 수익이 남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주택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불티나게 팔렸다. 한 번 불이 붙은 주택시장은 꺾일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다 보니 신용도가 꽤 부족한 사람들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게 되었고,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집도 좋은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순환이 무한히 반복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어느 순간 꺾이는 지점에 도달했다. 문제는 이 꺾이는 지점을 금융시장도 몰랐다는 점에 있다.


금융 산업이 성장하고, 대학에서 공부한 수재들이 금융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믿음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이견의 여지는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자만심을 주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안팎으로 자신감이 가득 차 있던 금융산업은 불티나게 팔리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가지고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자체는 리스크가 높아도 여러 개를 한데 모아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포트폴리오에서 나오는 이자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을 만들게 되면 이 상품의 신용등급은 높아졌다. 이 포트폴리오에서 후순위로 이자를 받는 파생상품은 어떨까? 당연히 그 자체로는 신용등급이 낮을 것이다. 하지만 이 파생상품을 다시 묶어서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들면 거기서는 또 신용등급이 좋은 투자상품이 만들어진다.


마치 폐품을 모아 신상품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되었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쓸 만한 폐품이 다 떨어졌는데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고도로 복잡한 상품은 제 아무리 똑똑한 금융 전문가라고 해도 그 상품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시장의 호황은 금융 전문가들조차 이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없게 만들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재지 못하게 버블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 버블이 주택 가격 하락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세계 최고라고 불리던 금융회사들이 차례로 무너졌고, 그 여파는 미국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금융시장, 미국의 자본이 유입된 다른 모든 나라의 금융시장도 영향을 받았다. 언제 어떻게 금융시장의 충격이 내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개인, 기업은 움츠러들었다. 분명히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돈이 필요한 입장에서는 오늘만 잠깐 돈을 빌려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내일도 갚을 수 있는 돈인데 그 돈을 구하지 못해 파산하는 일이 생겼다. 신용경색이 일어난 것이다. 신용경색은 금융시장 전체를 얼게 만들었고 악순환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순환하던 물이 멈춰버리자 곳곳에서 가뭄 아닌 가뭄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금융위기는 세계화된 금융 시스템을 타고 흩어져 전 세계 금융시장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각국은 국가 차원의 재정, 금융지원을 통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했지만 그 과정에서 들어간 국가 재정지출의 정당성, 취약 차주들의 파산,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 붕괴 등의 상흔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금융이 가진 태생적 위험에서 기인했다. 금융이란 성장을 추구하는 행위이고 성장을 추구하는 행위는 리스크를 부담하는 일이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는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 리스크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행위는 정당성을 얻지만, 단 한 번이라도 리스크가 실현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정당성은 한 번에 무너진다. 금융이 가진 이 한계가 치명적인 이유는 거기에 필연적인 악순환의 고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봤듯이 시장이 호황인 시기에는 금융이 가진 문제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호황은 장점을 부각할 뿐이다. 하지만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할 때 금융은 버티는 역할이 아니라 침체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과 같은 상황이더라도 시장이 침체하게 되면 리스크는 더 커진다. 같은 주식을 들고 있더라도 주식시장이 불황일 때 더 리스크가 큰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장의 하락세는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리스크의 증폭은 다시 시장의 하락을 불러일으킨다. 올라갈 땐 더 많이 올라가게 하고, 내려갈 때 더 급하게 내려가게 만드는 금융의 증폭 기능은 금융이 가진 본질적 문제점을 더 부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에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융이 가진 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이 하락 시그널을 보내는 순간 곧바로 양적완화 신호를 보내 준다. 금융이 애초에 트랜지스터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해야 할 역할은 그 증폭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는 완충기인 것이다. 그래서 팬대믹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일제히 폭락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의 중앙은행은 재빨리 금리를 인하했다. 폭락이 폭락을 불러일으키는 일, 그게 가장 무서운 결과다.


 오늘날 우리는 금융위기에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 금융이 가진 특성에 따라 성장동력이 풍부한 시기에는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어렵다. 항상 문제는 성장동력이 꺼지기 시작할 때 드러난다. 성장동력이 꺼진다는 말은 같은 리스크를 진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줄어든 이익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심리적인 이유뿐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줄어든 이익에 만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이 전년 대비 감소한 이익을 발표하면 주가는 하락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은 언제나 성장을 해야 하는 존재다. 그러니 사회의 성장동력이 꺼지기 시작했을 때 이익을 줄이기보다는 더 많은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예전의 이익을 유지하려고 한다. 꾸역꾸역 더 위험한 투자를 통해 이익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장 전체에 리스크가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그 리스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놓였을 때, 붕괴의 촉매 역할을 하는 사건만 발생하게 되면 그 결과는 우리가 목격했던 일과 같다. 우리가 놓인 상황이 그렇다. 저성장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완전히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예전과 같은 성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인구 증가도 한계에 이른 듯하다. 성장은 더디지만 과거의 관성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예전처럼 성장하지 못하면 경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지게 되기 좋은 환경은 오늘날 금융의 초점이 성장의 크기 이전에 성장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조금 적더라도, 끊기지 않게, 더 오래 성장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 금융이 가져야 하는 목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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