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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헤지(Hedge)

파생상품의 제1 역할, 리스크의 헤지

금융은 한다는 것은 항상 리스크를 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위험하지 않은 투자도 있지 않나?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완전한 ‘무위험’은 불가능하다. 변하는 것은 언제나 리스크를 가진다. 그러니 당신이 가진 것의 가치가 고정불변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리스크가 금융에서 기본적인 요소이면서도 치명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금융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리스크를 다루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방법이 리스크의 특징을 이용해 리스크를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며, 우리는 이것을 리스크의 헤지’라 부른다.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헤지펀드(Hedge Fund)’라는 말을 들어봤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의 ‘헤지’도 같은 의미다. 헤지펀드는 자신들만의 전략을 통해 마치 리스크를 없는 것처럼 만들려 한다. 이를 통해 시장 상황이 좋든 나쁘든 꾸준한 수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고 있다. 물론 목표는 목표일 뿐인 경우도 많다.


우리는 어떻게 리스크를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까? 리스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무엇인가가 변할 수 있다면 거기엔 항상 리스크가 있고, 그 리스크는 ‘변한다는 성질’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를 제거하려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헤지는 가진 자산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리스크가 가진 성질을 사용해서 리스크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 헤지의 핵심 작동 원리는 ‘하나는 흔들릴 수 있지만 전체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점이다.


분명히 당신이 주식 하나를 가지고 있다면 그 주식의 가격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가격이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내려갈 때를 리스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주식 하나를 더 가지고 있고, 그 주식의 가격은 처음 이야기한 주식의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기술주와 금융주를 하나씩 가지고 있을 때는 금리가 오를 때 기술주는 하락하지만 금융주는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금리가 내릴 때는 기술주가 상승하고 금융주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변화의 정도가 동일하지 않겠지만 일단은 동일하다고 가정하자. 이렇게 2가지 주식에 같은 금액을 투자했다고 하면 둘 중 하나의 주가가 떨어질 때 다른 것은 상승하기 때문에 전체 단위,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바라보면 가격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하나하나만 볼 때는 리스크가 있었는데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반드시 다른 하나가 리스크를 상쇄해주기 때문에 리스크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게 ‘헤지’의 핵심이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의 자산이 가진 리스크는 그 자산을 매각해버리지 않는 한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자산을 활용한다면 전체가 가진 리스크는 제거할 수도 있다.


물론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 언제나 능사는 아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 상승, 하락이 반대로 이루어지는 2개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경우 리스크는 없지만 ‘이익’도 없다. 한 자산에서 이익을 보려 하면 다른 자산에서 그만큼 손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제거하는 일이 변하는 것이 가진 ‘변동성’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아래로 향할 때만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아래가 제거되었다면 자연스럽게 위를 향한 변동성도 제거된다. 그러다 보니 리스크를 헤지하려 하면 포트폴리오에서 얻을 수 있는 기대 이익 자체가 줄어든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금융의 기본 원리 한 가지로 돌아오게 된다. ‘리스크 없이는 이익도 없다’ 그러니 사실 헤지의 의미는 ‘기존에 거두고 있던 이익을 유지하면서도 리스크를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이익의 일부를 희생하면서 리스크를 제거하는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헤지가 중요한 이유는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리스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를 비롯해 수많은 금융 단체가 항상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리스크 관리’란 리스크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고 싶다면 그냥 사업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들이 말하는 ‘리스크 관리’란 본인들이 원하는 리스크를, 원하는 만큼 유지하는 일이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리스크를 결정하고, 그 수준의 리스크를 유지하고, 그 리스크 하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꾸준히 확보하는 것, 이게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헤지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수준의 리스크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헤지를 하고 싶을 때 서로 반대되는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개별 자산이 가진 고유의 성질은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자산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하나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더 많은 종류의 자산을 가지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한다. 더 다양한 자산을 섞을수록 마치 돌의 모난 부분이 조금씩 깎이듯 헤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자산이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원하는 수준의 리스크가 되었는지를 측정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리스크는 언제나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면이 크기 때문에 미리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나서 모든 자산의 가격이 폭락해버리는 일은 아무리 헤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피하기 어렵다. 시장에 있는 기본적인 자산을 가지고 헤지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사람들은 헤지를 위한 도구를 하나 만들어냈다. 사실 그것이 파생상품이다.


파생상품에 대해 이해하려면 무엇을 기초자산으로 하는지, 그 기초자산의 가치 변화를 어떤 방식으로 파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렇게 눈앞에 놓인 파생상품을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게 왜 만들어졌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파생상품도 자연이 만든 것은 아니고 인간이 만든 상품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상품에는 항상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된 이유가 있다. 파생상품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헤지’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대표적인 파생상품 중 하나인 ‘선물’은 정해진 가격에 물건을 미리 사거나, 파는 계약이다. ‘그냥 미리 찜 해놓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해진 가격’이다. 저 단어가 선물이 ‘헤지’ 기능을 갖게 한다. 선물을 살 때 제거하고 싶었던 리스크는 ‘가격’ 리스크다. 당신이 농작물이든, 그 외 물건이든 뭔가를 판매하는 공급자라고 하면 항상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을 수밖에 없다. 열심히 만들어서 판매하려 하는데, 판매하는 시점에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거나 정책적인 이유, 혹은 그 외 어떤 이유로든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이미 생산할 때 비용은 많이 지출했고, 그 비용을 대출을 통해 부담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비용이 다 나간 상태에서 예상한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 해서 막대한 손실을 볼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언제나 리스크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판매하는 시점에 가격이 상승해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당신은 더 큰 이익도 필요 없고 손실도 싫다. 그저 적당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물건을 팔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이때 선물이 ‘헤지’의 역할을 한다. 정해진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선물 매도 계약을 체결해두면 미래에 실물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없이 당신은 정해진 가격에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 더 큰 이익을 볼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선물 계약을 통해 조금은 적어도 안정적인 이익을 걱정 없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 파생상품으로는 옵션이 있다. 옵션은 선물과 비슷하지만 계약을 가진 사람에게 조금 더 유리한 상품이다. 선물은 그것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동등한 조건에 놓여 있다. 만기가 되면 어쨌든 정해진 가격에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에 둘 중 한 명은 이익을 볼 수 있고,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고 있다고 해서 ‘미래의 거래’ 자체를 중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니 선물은 선물이라는 계약 자체가 갖는 가치는 없다. 순전히 미래에 대한 약속일뿐이다.


반대로 옵션은 계약을 가진 사람이 거래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내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콜옵션이라고 하는데 내가 상대방에게 가격을 정하고 콜옵션을 판매했다면 만기가 도래했을 때 실제로 내 물건을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계약을 산 상대방에게만 있다. 그는 내 물건의 가격이 만기에 정해진 가격보다 높아졌다면 옵션을 행사해서 정해진 가격에 사려 할 것이고, 물건의 가격이 만기에 정해진 가격보다 낮아졌다면 그냥 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없었던 것처럼 하면 된다. 이미 싸졌는데 굳이 그보다 높은 가격에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옵션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만기에 절대 손실을 보지 않는 계약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격이 움직이지 않아서 손실을 볼 것 같으면 행사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금융에는 언제나 공짜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유리한 계약은 계약 자체가 가진 ‘가치’가 있다. 선물은 약속을 하면 되는 것뿐이었지만 옵션은 옵션을 갖는 쪽이 유리한 ‘권한’을 갖기 때문에 그 권한에 대한 가격이 있다. 쉽게 말해 선물은 0에서 시작하지만 옵션은 일단 사는 쪽에 비용을 내고 시작하는 계약이다. 그리고 비용을 내는 이유는 끝에 가서 산 사람이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들 파생상품이 대표적으로 헤지를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당신이 어떤 주식을 산 것에 대한 리스크를 제거하고 싶다면 그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옵션, ‘풋옵션’을 사두면 된다. 물론 풋옵션을 살 때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그만큼 깎아내는 일이 되겠지만 아무튼 비용을 지불해서 당신은 원하는 리스크를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또 물건을 사거나,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선물 계약을 통해서 그에 따른 리스크를 제거할 수도 있다.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환율 변동에 대한 선물, 옵션 계약을 사용해서 그 리스크를 제거할 수도 있다. 원하는 리스크를, 원하는 만큼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 바로 파생상품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파생상품에 대해서 헤지의 수단보다는 투자의 수단으로 보는 이유는 파생상품을 중간에 매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지 목적이라면 파생상품을 거래가 일어나는 만기 시점까지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상품을 언제든 매매할 수 있다. 내가 쌀을 오늘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선물 계약을 했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쌀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고 해보자. 물론 나의 거래 상대방은 오늘의 가격으로 쌀을 파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리스크를 제거하려 했던 목적은 달성했다. 가격이 상승해서 추가로 얻을 수 있던 이익은 자연스럽게 나의 선물 계약에 귀속되고 있다. 그러니 처음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이 그저 약속에 불과하던 선물 계약이 이제는 ‘가치’를 갖기 시작한다. 이 계약을 가지고 있으면 오늘의 가격으로 쌀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더 저렴한 값으로 쌀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되는 것이다. 내 목적은 쌀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면 나는 가치가 생긴 선물 계약을 내다 팔 수 있다. 상대는 그 선물을 만기에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쌀을 주면 될 뿐이기 때문에 복잡하지도 않다. 이렇게 파생상품은 만들어질 때는 헤지를 목적으로 했지만, 가격이 변함에 따라 파생상품 차제가 갖게 되는 가치가 있고 중간에 이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때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게 앞서 이야기했던 ‘이 파생상품은 무엇을 기초자산으로 하는가?’ 그리고 ‘기초자산의 가치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파생상품의 가치가 결정되는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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