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
금융자산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언젠가는 파생상품을 만나게 된다. 대개 파생상품은 무언가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상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융에 깊은 관심이 있지 않는 한 ‘나와는 큰 상관이 없겠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융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조자산만으로는 다양한 금융 생태계를 구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파생상품도 성장했다. 기초자산이 조금 큰 바윗돌이라면 가끔은 집을 지을 때 작은 돌멩이도 필요하고, 원하는 부분에 알맞게 끼워 맞출 수 있는 돌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파생상품이 바로 그 ‘작은 돌’이다.
그렇게 점차 영역을 넓혀 오던 파생상품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우리 가까이 접근했고 파생상품과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파생상품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도 결국은 파생상품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며 멀리서 찾지 않아도 KIKO, DLF와 같이 커다란 문제를 야기한 상품은 모두 파생상품이었다. 굳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서 찾지 않더라도 요즘은 대개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ETF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과는 조금 결이 달라고 ETF도 어쨌든 파생상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조금 더 다양한 상품을 찾다 보면 원자재 선물거래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지금껏 이야기한 이 모든 일은 파생상품에 대한 것이다. 그만큼 파생상품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녹아 있고, 더 이상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마냥 회피할 수는 없다. 적어도 파생상품이 무엇이고, 보통의 상품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파생상품은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어떤 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만들어진 금융상품을 말한다. 이때 어떤 것을 좀 더 세련된 표현으로 ‘기초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파생상품을 ‘기초자산으로부터 파생된 금융상품’이라고만 간단히 정의하고 넘어가게 되면 추상적으로만 이해했을 뿐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것이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될 수 있고, ‘파생’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파생상품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아주 다양하다. 무수히 많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주식, 채권, 보험, 원자재, 금리, 심지어 파생상품이 또 다른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초자산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보다는 성질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단적으로 말하면, ‘변하는’ 모든 것은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될 수 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포괄적이니 기초자산의 성질을 조금 더 구분해보자면 가격을 가지고 있되,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들과 그렇지 않을 것들로 나눠볼 수 있다. 주식이나 채권 그리고 보험상품은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초자산이다.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경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초자산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전부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부동산이나 그 외의 실물자산도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될 수 있고 현금흐름을 만든다. 반대로 주가지수, 원자재 가격, 금리와 같은 기초자산은 기초자산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현금흐름을 만들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추상적인 숫자, 즉 지수일 뿐 자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이런 숫자도 변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기초자산에 포함시켜서 이야기하자.
현금흐름을 만들어내고, 그래서 실제 ‘자산’인 기초자산들을 굳이 구분하는 이유는 현금흐름이 있기 때문에 더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을 이해할 때 핵심적인 두 가지 요소 중 하나가 ‘기초자산이 무엇인지’라면 다른 하나는 ‘파생되는 방법이 무엇인지’이다. 이때 기초자산이 단순히 ‘지수’가 아니라 ‘자산’이라면 파생되는 방법이 다양하다. 지수를 가지고 파생상품을 만드는 경우에는 지수의 가격 변화에 따라 파생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그 방법만 결정해주면 된다. 지수의 변화를 그대로 추종하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추종하는 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대로 추종하는 경우는 코스피 200 지수를 추종하는 ETF 상품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지수가 오르면 내가 가진 파생상품의 가격도 오르고, 지수가 내리면 파생상품의 가격도 내려간다. 역으로 추종하는 경우는 반대로 생각하면 되고, 인버스 상품이 대표적이다. 지수를 추종하는 형태에서 조금 더 변형을 준다면 지수에 대한 변화를 N배로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가거나, 혹은 반대로 따라가는 것은 맞지만 기초지수의 변화를 2배, 혹은 3배로 따라가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품은 ‘레버리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혹은 더 복잡한 형태가 된다면 기초지수를 가지고 옵션 형태의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기초지수가 특정 구간 이내에 있을 때는 꽤 괜찮은 이익을 주는데 특정 구간을 벗어날 때 빠른 속도로 손실을 입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단순히 추종하거나, 거꾸로 추종하는 형태는 함수로 이야기한다면 기초지수에 대한 선형 함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옵션의 형태로 만들어진 상품은 선형이 아니라 꺾인 형태, 조건에 따라 쪼개진 함수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니 지수를 기초로 하는 파생상품은 기초지수와 파생상품 사이를 이어 주는 함수가 어떤 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충분하다. 선형인가? 선형인데 기울기가 2나 3인 경우는 아닌가? 선형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 꺾여 있는가? 기초지수가 어느 구간 내에서 움직여야 지금과 같은 식이 유지되는가? 와 같은 질문을 통해 파생상품을 이해할 수 있다.
기초자산이 지수가 아닌 진짜 ‘자산’인 경우에는 기초자산이 단순히 가격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가격을 결정짓는 원천인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함수 형태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 현금흐름 자체를 가지고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모두 모아서 만들어 낸 포트폴리오가 기초자산이라고 하면, 이 기초자산은 수많은 대출 상품에서 들어오는 원리금이라는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 현금흐름을 가지고 계단식으로 돈이 흘러내리는 형태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포트폴리오에서 매달 유입되어야 하는 원리금이 100이라고 할 때 여기에 포함된 어떤 대출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완전히 디폴트가 날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상환을 유예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니 매번 들어오는 현금은 100이 아니라 95가 될 수도 있고, 105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변동성을 활용해서 우선순위를 다르게 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90의 원리금이 상환될 때까지 우선적으로 돈을 받는 것과 90의 원리금이 상환된 이후에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나눠볼 수 있다. 100명이 있다고 할 때 평소 같으면 1원이 들어와도 각각 1/100원씩 나눠 가지게 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계단식 구조를 만들게 되면 1원이 들어왔을 때 1/90원씩 우선적으로 나눠가지는 사람들끼리 나누고 90원이 들어온 이후에 마지막 10명이 돈을 나눠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 두면 후순위 상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불리하다. 그러나 우리가 금융에서 배운 사실은 더 리스크가 크다면, 더 높은 이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통 후순위 상품에는 초과 이익이 할당된다. 사람들이 예상보다 더 원리금을 잘 갚아서 예상치를 초과하는 현금이 유입된다면 남은 것은 모두 후순위 상품에 할당된다. 예를 들어 원리금이 110만큼 상환된다고 하면 100원의 기초 수익을 나누고 난 뒤 남은 10원은 모두 후순위 10명에게 할당된다는 뜻이다. 포트폴리오가 우량할 때 그만큼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경기가 좋지 못해 포트폴리오에서 디폴트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 아예 돈을 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는 형태이다. 이런 식의 구조를 ‘Waterfall’ 구조라고 부르는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초자산인 경우에는 이런 식의 파생상품이 항상 만들어질 수 있다. 단순히 가격을 추종하는 형태가 아니라 더 복잡한 형태의 상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금흐름이 있는 것, ‘자산’에 기초한 파생상품은 특별히 ‘자산유동화증권’(Asset Backed Securities)이라고 부르며 자산에서 만들어지는 현금흐름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동화는 현대 금융에서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라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
자산에 기초한 파생상품이 유동화를 통한 다양한 파생 방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지수에 기초한 파생상품은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레버리지는 지렛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자본금이 많지 않더라도 마치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한 것처럼 내 자본금보다 더 큰 금액의 돈을 투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지수에 기초한 상품에서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한 이유는 이러한 파생상품이 지수에 기초할 뿐 지수를 직접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스피에 기초한 ETF를 산다고 할 때 우리는 코스피 자체를 사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원자재 선물을 매입하는 경우에도 원자재를 직접 사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 가격의 변화 방향에 투자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돈의 10배만큼의 원자재를 직접 살 수는 없지만, 10배에 해당하는 선물에는 투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원자재 가격이 예상한 대로 오르는 경우 자본금의 10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내 예상과 달리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손실도 10배가 된다. 대개 파생상품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특징 때문이다.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지수의 변화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가진 돈보다 더 큰 수준의 투자를 한다. 예상한 것이 언제나 옳다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지만 예상이 언제나 옳으리라는 법은 없다. 틀렸을 때는 막대한 손실을 입기 쉽다. 게다가 레버리지형 상품은 손실이 일어났을 때 회복의 기회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주식과 같은 일반적인 금융자산에 투자한 경우 주가가 하락하게 되면 2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손실을 보고 매도하거나, 혹은 다시 올라온다는 확신이 있다면 보유한 상태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선물과 같은 파생상품에 레버리지를 활용해 투자한 경우에는 손실이 일정 구간을 넘어서게 되면 내가 가진 자본금으로 갚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10배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를 했을 때 주가가 처음 가격의 절반으로 떨어졌다면 500%에 해당하는 손실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내가 가진 자본금은 100%이기 때문에 500%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는 손실을 메울 수 없다. 내가 손실을 메우지 못한다는 말은 나와 거래한 상대방이 얻은 이익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금융에서 이렇게 신뢰를 훼손하는 일은 치명적이다.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되면 레버리지를 활용한 파생상품 시장 자체가 건전하게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레버리지 투자가 이뤄지는 거래소는 항상 증거금 제도를 운영한다. 최초에 어느 정도의 증거금을 예치해두고 레버리지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이 증거금을 통해 손실을 정산하게 되며, 손실이 커져서 증거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증거금을 추가 납입해야 한다. 증거금이 부족한데 추가 납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거래소가 현재 상태로 증거금과 지금까지의 손실을 상계 처리해서 청산해버리고 계약이 자동으로 소멸된다.
예를 들어 방금처럼 10배 레버리지 투자를 한 경우 내가 증거금을 100% 수준으로 냈다고 하면 기초자산에서 10% 가격 하락만 발생해도 내 증거금은 0원이 된다. 물론 그전에 거래소에서 어느 정도 선 이하로 가격이 하락했을 때 추가 납입을 요청하겠지만 지금은 0원까지 괜찮다고 생각해보자. 아무튼 기초자산이 10% 하락해서 내 자본금 100%는 모두 소진된 상태이다. 거래소는 우리에게 계약을 더 유지하고 싶은 경우 증거금을 추가로 납입하라고 말한다. 이때 증거금을 추가로 납입할 돈이 없어서 시간을 지체한다면 거래소가 내 돈을 거래 상대방에게 넘기고 계약을 종결짓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파생상품 시장은 거래상대방의 파산으로 인한 리스크를 관리한다. 내 입장에서는 11% 하락 이후에 기초자산의 가격이 폭등하는 경우 이미 계약은 청산되어버렸기 때문에 이익의 기회가 사라진다. 그러니 레버리지 거래는 ‘버티기’를 통한 이익이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파생상품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기초자산, 혹은 기초지수가 무엇인지? 그 기초자산이나 지수로부터 파생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마치 수학에서 X값이 무엇이고 Y값과 X값의 관계가 무엇인지만 알면 함수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파생상품 또한 이 두 가지 요소만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구조적으로 보면 잘 알 수 있다는 말이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레버리지는 언제나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