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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보험

보험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가장 친숙한 3가지 금융 중 마지막은 보험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우선 은행이나 증권과 달리 보험은 금융 소비자를 금융 시스템에 연결해주는 매개체 혹은 유통 역할보다 보험 상품 자체가 가진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보험은 금융 산업에 속해 있는 만큼 보편적인 금융의 원리를 따른다. 성장에 의존하고 리스크를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금융 산업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보험 상품 자체가 만들어진 목적이 여타의 금융 상품과 달라서 가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은행이나 증권은 산업 자체가 성장에 기댈 뿐 아니라 성장을 그들 상품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보험은 성장에 의존해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보험이 만들어진 목적은 ‘리스크 관리’다. 다시 말해 다른 상품이 성장을 목표로 해서 리스크 관리를 보조적인 역할로 생각하고 있다면 보험은 리스크 관리 자체가 목적이고 성장이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들 개인이나 작은 기업은 일상,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리스크를 마주하게 된다. 일상생활 중에 다칠 수도 있고, 언제 어떤 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내가 한 행동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경우 그가 입은 피해를 배상해줘야 할 책임이 주어질 수도 있다. 물론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기업도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배상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고, 사업장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재해로 인해 영업을 중단해야 할 수 있다. 하나 둘 상상하다 보면 끝도 없이 다양한 리스크가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리스크는 얼마나 자주 발생할 수 있을지, 또 실현된다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도 다양한데 가장 최악의 상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일이다. 조금 다치거나 감기에 걸려서 병원 진료를 받는 일 정도는 병원비도 크지 않고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난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심각한 상해를 입거나 병에 걸렸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지불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병원비는 충분하다고 치더라도 오랫동안 일을 못한 채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생활비가 부족하게 될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공장에 큰 화재가 나는 경우 영업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렇게 몇몇 리스크는 우리 일상생활의 지속성 자체를 위협하게 되는데 개인이나 작은 기업이 이러한 리스크에 대처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보험이다.


물론 내가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이거나 거대한 기업이라면 보험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하게 다치거나 병에 걸린다고 해도 가진 돈이 많다면 리스크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가 열심히 돈을 모아서 이런 리스크가 실현됐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수 천만 원, 수 억 원의 돈을 사용하지 않고 묵혀 두는 일이 않다는 점은 금융이 우리에게 이미 알려주고 있다. 묵혀 두는 일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거기서 발생하는 시간가치를 기회비용으로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에 가입한다. 사실 우리를 위협하는 리스크는 인생 전체에 골고루 펼쳐 놓고 보면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펼쳐 놓고 보면 크지 않은 일이 한순간 터져버릴 때 발생한다. 보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골고루 펴 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에 그 리스크를 펼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보험이 택한 방법은 여러 사람의 인생에 그 리스크를 골고루 펼치는 것이다. 시간은 펼칠 수 없어도 사람은 펼칠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가진 리스크를 적당한 비용을 내고 제거하는 것이 보험이 가진 가치이고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보험을 보다 보면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보험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애초에 리스크가 없다면 보험 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잃을 게 없다면 보험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보험이 자연스럽게 성장한 나라를 보면 산업화에 따라 잃을 게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보험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하지만 한국은 산업을 자연스럽게 성장시키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것이 파괴된 상태에서 잃을 것은 없지만 근대화를 빠르게 이룩하기 위해 다른 근대화된 나라가 가지고 있던 산업을 인위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잃을 게 없지만 보험 산업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보험산업의 성장이 더디게 되었다. 굼뜬 보험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몇 가지 촉진제가 필요했는데 이때 한국의 보험 산업은 조금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보험이 마치 은행인 것처럼 저축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높은 보장 이율을 제시하면서 투자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저축성보험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유행하고 은행에서도 쉽게 제시하지 못하는 높은 이율을 보험상품이 가진 긴 보장기간 동안 유지해주는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금융이 융합된 형태의 보험이 만들어진 이후 보험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이야기한 금융에는 공짜가 없었다. 빠른 성장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독특한 시스템은 오늘날 저금리, 국제적으로 도입되는 회계 기준 하에서 역풍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순수한 보험은 저축이나 투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금융이 아니다. 내 일상을 위협할 정도의 커다란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보험료는 냈지만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낸 보험료는 나의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경감하기 위한 비용으로 지출한 것이고, 전체적으로 본다면 누군가의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변동성을 줄이는 것에는 그에 합당한 비용이 지출되어야 마땅하고, 그게 금융이다.


기본적으로 보험료는 우리가 평균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보험금에 기반해서 산출되어 있다. 나갈 돈만큼 들어올 돈을 책정해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험회사는 무엇을 통해 돈을 벌까? 물론 나갈 돈에 딱 맞춰서 들어올 돈을 책정하지는 않는다. 은행이 역할을 채권의 유통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보험의 역할은 리스크의 유통이다. 그리고 모든 유통업은 유통 마진을 주요 수익 원천으로 가져간다. 당연하게도 보험료도 이러한 유통 마진을 고려해서 지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보험금보다 조금 더 많은 보험료를 거수한다. 은행이 예대마진을 얻는 것처럼 보험사도 보험료에서 수수료 차익을 얻게 된다. 물론 유통 마진 외에도 보험 회사에는 다른 이익도 발생하게 된다. 나갈 보험금만큼 보험료를 책정한다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더 적은 보험금이 지출될 수도 있으니 여기서 차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차익은 반대로 손실이 될 수도 있긴 하다. 마지막으로 보험사도 보험료를 받아서 그대로 두진 않기 때문에 투자 이익을 얻는다. 다만 보험료는 투자 목적으로 받은 돈이 아니라 가입자의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잠시 맡아 둔 돈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위험한 투자는 할 수 없다. 그래도 미리 받아 둔 보험료의 규모가 크다면 안정적인 투자를 통해서 얻는 수익도 꽤 쏠쏠하다.


보험이라는 상품 자체가 리스크의 전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실현되는 정도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기도 하고 금융 회사인 만큼 투자 수익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은 은행이나 증권도 마찬가지다. 은행도 맡아 둔 돈을 대형 투자은행과 같은 투자자에게 연결할 때 더 성과에 따라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기도 하고 증권도 투자자를 돈이 필요한 회사와 연결하는 과정에서 투자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더 많은 차익을 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을 묶는 공통점은 세 가지 금융이 모두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 채권을 가지고 소비자와 금융을 연결하고 있고 증권은 투자안을 통해 소비자와 금융을 매개하고 있다. 그리고 보험은 리스크를 가지고 소비자와 금융을 연결하고 있는 산업이다. 셋 모두 금융소비자와 거대 금융 시스템 자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유통회사처럼 그 안에서 유통 마진을 기본적인 비즈니스 구조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통 마진 형태의 비즈니스 구조는 이들 세 가지 금융이 아니라면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들 금융이 가진 비즈니스 구조의 핵심이 매개 역할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위협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 핀테크 산업과의 경쟁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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