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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증권

증권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증권으로 대표되는 투자업계는 투자은행의 역할을 겸하고 있기도 하고, 자산운용사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투자와 관련해서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하지만 복잡하게 세분화해서 본다고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투자업계를 통틀어 증권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우선은 충분하다. 은행의 역할이 유통이었다면 증권의 역할은 무엇일까?


은행이 금융 소비자와 만나는 역할을 하고 있듯 증권도 금융 소비자와 금융 자체를 연결해주는 1차적인 매개 기능을 한다. 대신 은행의 매개 역할은 채권에 집중되어 있고 채권의 역할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조달해주는 일이다. 그러니 은행은 금융의 유통기관, 특히 ‘조달’이라는 기능을 유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증권은 마찬가지로 매개체 역할을 하지만 유통의 대상이 채권이 아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은행에 가지 증권사에 가지 않는다. 증권이 소비자와 금융 사이에서 무엇을 매개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어떤 사람이 증권사에 가는지 생각해야 한다. 증권사에 가는 사람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다. 즉, 투자자다.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면 은행에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 가고, 은행은 그런 사람들과 은행 뒤의 거대 투자자들을 연결해주고 있는 반면 증권사에는 돈이 남는 사람이 가고 그런 사람들과 돈이 필요한 ‘무엇’을 연결해주고 있다.


이때 증권사가 개인이나 기업을 연결해주는 그 무엇은 아주 다양하다. 그 무엇들은 모두 투자자들을 유치해야 하고, 그만큼 돈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투자안의 목적에 따라 너무도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어떤 때는 명확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투자안 자체가 돈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투자처 중 하나는 ‘자본금이 필요한 회사’ 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기업공개(IPO)’다.


어떤 회사가 사업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게 되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게 된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사업을 크게 키워서 시장 지배력도 강화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될 수도 있고, 곧 기술이나 제품의 개발이 완료되면 독점적인 지위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데 당장 연구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한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회사의 성장 단계에서 많은 자본이 필요하게 될 때 기업은 자본시장에 손을 내밀게 된다. 이때 자본시장에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발행해서 자본을 모으는 일을 기업공개(IPO)라 하는데 이때 발행된 주식을 매수하기 위한 주문이 공모주 청약이다. 증권사는 어떤 기업이 기업공개를 원하는 경우 주관사가 되어 공모 가격, 목표 주가 등을 설정하고 기업 공개를 진행한다. 그러니 자본을 가진 개인이나 기업과 자본이 필요한 기업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증권사의 투자 매개체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증권사의 매매 시스템을 통해 이미 발행된 주식을 사고, 파는 일도 투자자와 투자 대상인 기업 간의 매개 역할이라고 볼 수 있고 조금 더 자세히 보다 보면 더 많은 투자안을 접할 수도 있다. 주식에 투자하는 일이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에 투자하는 일이라면 그 외에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다른 것에도 투자할 수 있는 가능성도 당연히 있다. 월세를 꼬박꼬박 만들어내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REITs), 혹은 개인 투자자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렵지만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같이 건설 투자도 매개한다.


또 어떤 기업이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한데 주식을 발행하기에는 기존의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 가치가 희석될 우려도 있고, 주식이 너무 많이 흩어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경영권 분산의 문제도 우려된다면 주식이 아니라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이때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매매를 주관하기도 한다.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투자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있더라도 기업이나 전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범위를 확대하다 보면 가능한 모든 투자처에 대해 증권사가 투자자와 투자처의 매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증권사의 이익은 대개 이 투자금의 유통 마진에서 나온다. 우리가 주식을 매매할 때에도 하나하나는 작아 보이지만 증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는데 이 수수료가 뭉쳐지게 되면 거대한 이익이 된다. 뿐만 아니라 기업공개를 하고 싶은 기업도 증권사에 당연히 비용을 지불하게 되고, 그 외에 모든 투자처, 투자자들이 유통 과정에서 수수료를 낸다. 증시가 활황이거나 경제가 호황이라 투자 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면 증권사가 유통 과정에서 얻는 이익도 크게 상승하게 된다. 보통 금리가 낮은 시기에는 금융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금리가 낮은 시기에 투자자들이 낮은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위험하지만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안을 찾아 나서기 때문에 주식 시장이 더 활발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증권사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이유로 금리가 아주 낮을 때 오히려 이익이 높아지기도 한다.


증권사를 투자 회사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증권사의 수익은 투자 자체보다는 투자 행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유통 마진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투자 자체의 성과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건 투자자다. 그리고 투자자 역할을 하는 회사는 금융 내에서 증권사가 아니라 투자은행(IB)이나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등이다. 증권사는 그저 많은 투자 행위가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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