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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은행

은행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가장 친숙하고, 대중적이고, 또 오랫동안 존재했던 금융은 은행이다. 우리는 은행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여전히 예금과 대출이 은행의 뼈대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은행은 보다 복잡하게 변해 왔다. 물론 보통 사람들과 은행이 접하는 지점은 여전히 예금, 적금, 대출과 같은 가계 금융 상품이다. 그러니 은행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금융이 발달하면서 달라진 은행의 모습은 소비자와 만나는 곳 너머에서 볼 수 있다. 더 이상 은행의 역할은 소비자와 은행 사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이 은행에 가서 예금이나 적금 계좌를 개설하고 돈을 입금했다면 당신은 은행에 돈을 빌려준 것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일만 하는 것 같지만 예금이나 적금은 반대로 개인이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일이다. 물론 반대로 우리가 돈이 필요할 때 은행에 가서 대출을 한다면 그건 은행이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이다. 생긴 건 똑같은데 방향이 다른 2가지 일이 우리와 은행 사이에서 일어나게 된다. 회계의 용어를 빌려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은행에 빌려준 돈, 예금이나 적금은 은행의 대차대조표라는 장부의 대변, 즉 ‘부채’로 기록된다. 반대로 은행에서 우리가 빌린 돈, 대출은 은행의 대차대조표의 차변에 ‘자산’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은행은 자신의 뼈대를 예, 적금 그리고 대출을 통해 차곡차곡 쌓는다. 왼쪽인 자산에는 수많은 대출 계약이 쌓이고, 오른쪽인 부채에는 수많은 예금과 적금이 쌓이게 된다. 물론 오른쪽에 부채와 함께 은행의 돈인 자본도 쌓여 있을 것이다. 회계적으로 봤을 때 은행의 구조는 이것뿐이다. 대변의 예, 적금과 차변의 대출. 그리고 은행의 이익은 이 구조 하에서 창출된다.


방향은 다르지만 대변과 차변을 이루는 요소는 모두 빚, 즉 채권이다. 그리고 채권은 항상 이자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은행에 맡겨 놓은 예금에서는 주기적으로 이자가 발생하고, 적금은 예금보다 더 높은 이자를 주는 게 장점이다. 물론 반대로 은행에서 대출을 하게 되면 매월 이자가 빠져나간다. 같은 이자라고 생각하면 별다를 게 없겠지만 언제나 중요한 사실은 디테일에 숨어 있듯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양쪽 모두에 발생하는 이자는 그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예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보통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을 만큼 작다. 확인해 본 기억이 있다면 알겠지만 큰돈을 넣어두지 않는 한 천 원 단위의 이자를 받는 경우도 많고 정말 소액이라면 원 단위 이자가 붙기도 한다. 적금이라면 사정이 조금 낫겠지만 반대편에 있는 채권, 대출과 비교하면 높지 않다. 항상 대출에 붙는 이자가 더 높은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속상한 일이지만 금융을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은행이 채무를 갚지 못할 확률보다 개인이 채무를 갚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대출 이자가 더 높은 것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물론 중요한 것은 언제나 디테일, ‘정도’에 있기 하다. 아무튼, 은행의 기본적인 수익 창출 구조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예금과 대출 사이에 존재하는 이자율의 갭, ‘예대마진’이 은행의 핵심 비즈니스 구조다.


이렇게만 남아 있다면 은행의 역할은 특별하지 않겠지만, 은행은 여기서 본인의 대차대조표 상 자산에 있는 것을 한 번 더 활용한다. 이때부터 보통의 소비자는 보기 어려운 은행의 두 번째 역할이 시작된다. 은행은 수많은 대출이 모여서 만들어진 포트폴리오 자산을 다른 투자자에게 건넨다. 수많은 대출이 똘똘 뭉쳐 있는 이 포트폴리오를 매수하려면 수많은 대출 금액을 합친 거대한 돈을 은행에 넘겨줘야 하겠지만 그 대신 대출 자산을 자신의 장부에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후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 혹은 구조에 따라 원금까지도 투자자 자신이 확보할 수 있다. 내가 당장 돈이 많은 투자자인데 마땅히 이 돈을 쓸 곳이 없다면 은행이 가진 대출 자산을 사서 천천히 연금을 받듯이 이자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자자라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많은 기업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데, 대개 이렇게 은행의 자산에 대해 투자자 역할을 하는 제2의 은행을 ‘투자은행(Investment Bank; IB)라고 부른다. 골드만삭스, JP모건과 같은 월가에 대표적인 금융회사는 모두 투자은행이다. 투자은행에 자산을 털어내서 대출로 빠져나갔던 목돈을 다시 회복한 은행은 이 돈을 바탕으로 다시 더 많은 개인, 기업 대출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 의해 은행은 자신이 가진 자본금으로 만들 수 있는 대출보다 더 많은 수의 대출 계약 그리고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구조라면 결국 대출을 한 개인이나 기업이 낸 이자는 은행의 수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은행의 수익이 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언제나 금융에서 중요한 사실은 ‘디테일’에 있다. 예금과 대출도 같은 구조였는데 디테일한 크기의 차이에서 은행의 수익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은행과 투자은행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은행은 투자은행에 포트폴리오를 매도할 때 모든 이자를 완전히 넘기지 않는다. 은행이 열심히 영업해서 얻은 계약을 남 좋은 일 하는데 쓸 수는 없다. 그러니 투자은행에 넘길 때에도 일정 비율은 수수료 명목으로 은행이 챙긴다. 예대마진을 챙기는 구조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개인이나 기업, 은행, 그리고 그 뒤의 투자은행 혹은 다양한 투자자들로 이 구조를 3단계로 바라본다면 은행의 역할은 유통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는 투자자 혹은 투자은행, 그리고 당장 돈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 사이에서 수많은 계약을 하나하나 직접 처리해주는 번거로운 일을 대신하고 금융 계약을 유통하는 일이 오늘날 금융에서 은행이 하는 핵심 역할이다. 그리고 은행의 수익은 유통회사답게 유통 마진에 대부분 기인한다. 우리는 그 마진의 이름을 예대마진이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은행의 역할이 이렇기 때문에 핀테크의 발달에 따라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유통업을 하고 있었는데 플랫폼과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접근성을 장점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 회사가 등장한 것이다. 소셜커머스가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기존 상권을 위협하는 일이 금융이라는 운동장 내에서 은행과 핀테크 사이에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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