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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2. 2022

경기부양책의 함정

경기부양책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은 어디에 있는가

경기부양책은 주요 선진국이 저성장 시기에 들어선 이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은 오랜 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미국도 금융위기 이후 긴축보다는 완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이라고 다르지 않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금리가 높지 않다. 지금은 거의 모두가 경기부양책을 사용하는 시대이다. 과연, 경기부양책이 무엇이고, 금융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을까? 경제에 도움이 되니 경기부양책을 사용하고 있겠지만 반대로 부작용은 없을까? 금융의 관점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우선, 경기부양책의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경기부양책이 무엇이고 대표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경기부양책은 정부가 하는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이 하는 통화정책으로 나눠볼 수 있고, 각각도 세분화해서 들어가게 되면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모든 방법을 하나하나 이름까지 붙여 가며 알아 둘 필요는 없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누가 하든 경기부양책이라는 건 시중에 돈을 풀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정부는 조금 더 세분화해서 특정 계층이나 특정 산업에 직접적으로 정부 지출을 통해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중앙은행은 화폐의 발행과 기준금리 결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거시적이고, 광범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요즘 같은 저성장 환경에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보다 돋보이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준금리의 변경이다. 경기부양책이 쉽게 보면 돈을 시중에 푸는 일이라고 했으니 기준금리 변경도 시중에 돈을 푸는 일이 된다. 금리를 변경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시중에 풀리는 돈이 달라지게 될까? 우리와 은행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준금리는 은행 이자율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자율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돈을 빌리는 대가’다. 대출에도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대출에 붙는 비용이 이자다.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대출 비용이 비싸지는 것이고, 금리가 하락하게 되면 대출 비용이 싸지는 것이다.


그러니 좀 전까지는 경기부양책이 금리 변화로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이제는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경기부양책은 금리 인하로 이루어진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대출 비용이 싸지고 우리는 대출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값싼 대출 비용을 보고 대출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우리가 은행에 맡긴 돈은 누군가의 대출금이 되고 또 누군가는 거기서 번 돈을 다시 저축한다. 이런 식으로 은행에 들어간 돈은 실제 크기 이상으로 시중에 풀리게 되는데 사람들이 대출을 많이 하게 되면 이 기능이 더 크게 활성화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은행이 가진 기능 중의 하나가 돈을 부풀리는 것인데 돈이 얼마나 부풀게 될지는 우리가 대출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에 달린 것이다. 더 많이 대출하면 대출할수록 시중에 돈은 더 많아진다. 그리고 우리는 금리가 낮을수록 더 많은 대출을 하게 된다. 그러니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게 되면 시중에는 돈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금리를 활용한 경기부양책 외에도 중앙은행이 활용할 수 있는 보다 직접적인 경기부양책이 있다. 우리가 양적완화라고 부르는 방법인데 금리 인하가 은행의 기능을 활용해서 간접적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방법이라면 양적완화는 시중에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풀어버리는 방법이다. 다만, 직접적으로 돈을 푼다고 해도 냅다 돈을 찍어서 길바닥에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대신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서 무언가를 산다. 구매가 어떻게 돈을 푸는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잘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사는 일은 파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일이다.


경기가 나빠지게 되면 시장은 급속도로 경직된다. 거시경제는 심리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데 경기가 나빠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게 되면 물건을 사서 보유하려고 하기보다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괜히 경기가 나빠질 때 비싼 자산을 샀다가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고 혹시나 빚을 져서 샀다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사려고 하던 것도 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 하락기에는 실제로 나쁜 것 이상으로 매수세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시중에 돈은 있는데 유통이 안되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진다. 화폐는 결국 교환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교환되지 않는 화폐는 실질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경기 침체기에는 유동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이 유동성이 화폐의 교환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앙은행은 사람들이 얼어붙은 때에 직접 나서서 자산을 산다. 물론 실물 자산을 막 사버리게 되면 보유할 공간도 없고 자산 가격의 상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양적완화를 할 때 중앙은행이 사는 자산은 채권이다.


어떤 회사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빚을 냈다고 치자. 새로운 사업은 나름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채권의 만기가 다가와서 곧 돈을 갚아야 될 때가 왔다. 보통 이렇게 되면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 빚을 다시 내서 새로 받은 돈으로 만기가 돌아온 빚을 갚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돌려 막기라고 볼 수 있지만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면 돈을 빌려줄 곳은 많기 때문에 이 방법에 전혀 부담이 없다. 쉽게 생각해서 그냥 일이 잘 되고 있으니 만기를 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실제로 그냥 만기를 연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사업은 나름 순항하고 있는데 경기가 나빠져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되었을 때다. 분명히 이 시기만 넘기게 되면 사업을 성공시켜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갚기 위해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려고 보니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돈은 있는데 경기가 나빠진다는 인식이 커지다 보니 다들 불안해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 기업은 고비를 넘기지 못해 도산하게 되고, 그 기업의 규모가 컸다면 이 기업에서 돈을 받아야 하는 다른 기업이 또 도산할 수도 있다. 이렇게 연쇄 도산이 줄줄이 이어지게 되면 여러 기업에 돈을 빌려줬었던 은행도 위험하다. 이렇게 돈은 있지만 경기 하락세에 심리적인 위축으로 돈이 유통되지 않는 것을 신용 경색이라고 하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때도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연쇄효과는 예전 채권의 만기가 돌아왔을 때 다시 돈을 빌려주기만 하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기도 하다. 다들 빌려줄 만한 돈은 있었지만 불안해서 빌려주지 않다 보니 피가 잘 돌지 않듯이 돈이 잘 돌지 않아서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는 여기서 작동한다. 이 기업의 채권을 중앙은행이 대신 사 주는 것이다. 채권을 산다는 말이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이 기업에 돈을 빌려준 사람한테 중앙은행이 가서 그 돈 내가 갚아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공짜로 갚아주는 것은 아니고 이제는 실질적으로 돈을 빌려준 사람이 중앙은행이 되기 때문에 기업이 돈을 벌게 되면 중앙은행에 돈을 갚아야 한다. 그래도 당장 눈앞의 빚을 막지 않으면 도산할 수도 있는 위기에서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게 되면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얼마나 크게 하는지는 어떤 채권까지 사주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우리가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가면 은행 직원이 우리의 신용도를 평가하듯이 기업이 회사채를 발생할 때도 신용평가사, 증권사가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게 된다. 평가사마다 등급 명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AAA, A+, B 그리고 C처럼 영문으로 등급을 매긴다. A가 많아질수록 더 좋은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빚을 갚지 못할 확률도 낮다. 등급이 낮은 채권은 투기 등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할 때 어느 정도로 낮은 등급의 채권까지 사 주는지에 따라 양적완화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제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기부양책 두 가지에 대해서 대강 알아봤다. 금리를 낮춰서 간접적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방법과 숨 넘어가는 채권을 사서 직접적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역할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에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까?


금리 인하가 대출을 늘려서 시중에 돈이 늘어나게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반작용도 발생한다. 금리 인하는 모든 주체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이다. 그러다 보니 생계를 위해 대출이 필요한 사람 외에도 값싼 비용을 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대출을 낮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출은 투기적 목적을 띄고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사람들이 자산을 사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산을 살 때 들어가는 비용이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산을 살 때 들어가는 비용이 이자비용이다. 대출을 하지 않고 가진 돈으로 자산을 매수했다고 하더라도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이자비용만큼이 기본적인 자산 매수의 비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자비용이 낮아지게 되면 자산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이지기 때문에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또 자산 매수 비용이 줄어들면 그만큼 늘어난 수요에 따라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결국 금리 인하는 자산 매수에 따른 비용의 감소와 함께 수익 증가에 대한 기대를 키워서 자산 시장을 과열시키게 된다. 이 현상은 어떻게 보면 금리 인하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경기 침체라는 산을 넘기 위해 자산 가격의 거품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산 가격의 거품은 양극화 현상을 가속시키는데 대체로 경기가 나빠질 때 대출금을 자산 매입에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경기 하락에 따른 생계유지에 대출금을 활용하기도 빠듯한데 생계를 유지하고 나서 보니 자산 가격에 거품이 껴서 실질적으로 자산을 사야 할 때 사지 못하는 현상이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금리 인하는 사회적인 비용을 동반한다고 봐야 한다.


양적 완화라고 해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방법은 아니다. 장점을 가진 것에는 단점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양적 완화도 중앙은행이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만큼 ‘진짜’ 부실한 채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늘어나게 된다. 어떤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데 자금이 부족해서 빚을 진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투자안과 마찬가지로 사업안도 리스크와 그에 따른 보상을 가진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부실채권도 다 사준다는 말을 들으면 리스크를 저평가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금리 인하에 따른 자산 매입의 비용, 수익의 관계와 유사한데, 사업을 성공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달라지지 않는 반면 사업을 실패했을 때 부도가 날 확률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부도가 날 것 같은 채권을 사서 빚을 갚을 기한을 연장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빚을 내고 투자도 하고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찬가지로 사업 영역에도 거품이 낀다.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법한 사업을 진행하고, 투입된 비용만큼의 수익도 건지지 못하는 회사들이 늘어난다. 양적 완화 시기 중에는 이러한 기업들이 발행한 부실채권을 중앙은행이 매입하고 있으니 문제가 드러나지 않겠지만 언제까지나 양적 완화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문제, 그렇게 흘러 들어간 자금이 다시 자산 시장으로 들어가서 자산 가격에 거품을 만드는 문제 등이 점점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양적 완화는 언젠가는 멈춰야 하는 정책이다. 그리고 양적 완화를 멈춰야 할 때에 아직도 기업이 사업을 정상화하지 못했다면 그때는 그 부실채권들이 모두 터져버리게 된다. 갚지 못하는 빚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버리게 되면 돈을 빌려준 주체, 대개 은행을 통해 그 효과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은 취약한 기업, 한계기업에 더 집중되어서 나타난다. 부실 채권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갈 때 여유가 있는 회사는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는 그 파도에 휩쓸려서 한꺼번에 쓸려 나갈 수 있는데, 결국 양적 완화에 따른 비용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르게 분배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금리 인하든 양적 완화든 경기 부양책에 공짜는 없다.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 가격의 거품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기 때문에 경기부양책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점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급격한 침체 위기를 겪고 있을 때 경기부양책 덕분에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지탱했을 수도 있고, 사실은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어도 버텨냈을 수도 있다. 불필요한 경기부양책으로 인해서 거품만 커지고 결국 더 큰 자산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자산 시장에 활력을 불러일으켜 소비, 투자 등에 그 힘이 전달될 수도 있다. 많은 것들은 결과적으로 해석될 뿐이고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의견이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사용할 지에 대한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렇게 얽혀 있는 문제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가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여기저기에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개선할 수 있는 틈이 많았던 과거에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루어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특히 더 그렇다. 자연스러운 성장이라기보다는 자극을 줘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실현되거나 혁신이 일어나야 성장할 수 있다. 빈틈을 메우는 식의 성장은 더 이상 어려워졌다. 하지만 성장이 어렵다고 해서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금융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성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저금리, 양적 완화는 이제 일시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다. 저성장 시대가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이제는 위기일 때만 접하는 용어가 아니라 심심찮게 들려오는 용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경기부양책이 무엇이고, 어떤 효과가 있고 부작용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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