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Ep. 3]
당신의 눈물은 '분석'된 것입니다.
부제: 코인 노래방에서만 우는 AI 한의사에게
(딸랑-. 문이 열리자 쌉싸름한 당귀 향과 알싸한 파스 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말끔한 네이비 셔츠를 입은 40대 남성.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자기 손목 맥을 짚으며 분당 심박수를 체크한다. 그의 눈 밑에는 만성 피로라는 이름의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지적인, 하지만 묘하게 건조한 향기가 나는 손님이시군요.
침과 뜸으로 타인의 막힌 혈은 뻥뻥 뚫어주시면서, 정작 본인의 속은 꽉 막혀있는 듯한 표정입니다.
진료실이 아닌 이곳을 찾으신 걸 보니, 오늘은 어떤 의학 서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님, 제 MBTI 검사 기계가 고장 난 게 분명합니다. 저는 제가 완벽한 F(감성형)라고 생각하거든요.
퇴근길엔 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하고 부르는데,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가사의 운율과 비트가 제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심박수와 공명하는 그 느낌. 저는 뼛속까지 낭만객입니다.
그런데 왜 병원만 가면 'AI 왓슨', '한의학계의 키오스크' 소리를 들을까요?
어제도 시어머니와 남편 때문에 화병이 나서 죽겠다는 환자분이 오셔서 한탄하시길래, 제가 정말 최선을 다해 들어드리고 진단했습니다.
환자 (가슴을 치며 울먹이며) '원장님, 그 인간들 때문에 속이 터져서 잠도 안 오고 가슴이 쿵쾅거려요.'
나 (뇌 속에서 0.1초 만에 진단 완료) '음, 맥이 삭맥(數脈)이고 혀끝이 붉으시네요. 전형적인 간기울결(肝氣鬱結)에 심화(心火)가 겹쳤습니다. 자율신경계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셨네요. 교감신경을 낮춰주는 소요산 처방해 드릴 테니, 커피 끊으시고 푹 주무세요.‘
저는 의사로서 완벽한 해결책을 드렸거든요? 그런데 환자분이 아주 서운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니 한숨을 쉬며 '원장님은 참…. 기계 같으시네요. 말이라도 좀 따뜻하게 해 주시지….' 하고 나가시더군요.
아니, 약 지어주고 침놔줬으면 됐지, 제가 거기서 같이 울어드려야 합니까? 환자랑 같이 울면 침은 누가 놓습니까?
저는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데, 왜 세상은 저를 감정 없는 로봇 취급하는 걸까요? “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의 사연을 들으며 와인 잔을 천천히 닦는다. 마치 그의 눈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적인 눈빛이다.)
선생님, 노래방에서 흘리신다는 그 눈물. 혹시 그냥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지금 이 가사, 내 나이와 이번 달 병원 매출 하강 곡선이랑 그래프가 일치하네? 이 타이밍에 울어야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된다'라는 철저한 계산하에 흘린 눈물 아닙니까?
당신의 진단명은 [고기능성 T의 감성 코스프레 증후군]
(Emotional Cosplay Syndrome of High-Functioning T)입니다.
당신은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감정을 '학습'하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슬픔이란, '가슴이 아린 먹먹한 감각'이 아니라 '코르티솔 수치가 급증하고 눈물샘이 자극되어 안압이 떨어지는 생리 현상'일뿐입니다. 노래방에서의 눈물조차 당신에게는 '정기적인 스트레스 호르몬 배출 의식'인 셈이죠.
환자분이 원한 건 '소요산(해결책)'이 아니라, 따뜻한 눈 맞춤과 "아이고,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한마디(공감)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뇌는 환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력(Input: 불면, 가슴 통증) -> 데이터 검색 -> 병명 도출(Processing) -> 처방(Output)'이라는 초고속 진료 알고리즘을 돌려버렸죠.
당신은 아주 유능하고 냉철한 의사가 맞습니다. 단지,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자아상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낭만주의자로 오진하고 계신 겁니다.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오래 달인 쌍화탕처럼 씁쓸하지만, 끝 맛은 짠 내가 납니다.
사실 당신이 이렇게 감정 없는 'AI'가 된 건, 당신의 성격 탓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존 본능 탓입니다.
매일 "아파요, 쑤셔요, 죽겠어요, 살려주세요"라는 인간의 가장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직업.
그들의 고통에 일일이 '찐 F'처럼 감정 이입을 하고 같이 아파했다간, 당신의 멘털은 진작에 바스러져 가루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살기 위해 마음에 '두꺼운 방화벽'을 설치했습니다. 환자를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고장 난 대상'으로 보는 훈련을 수십 년간 해온 거죠.
그건 무정함이 아닙니다. 수많은 타인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심장에 생긴 단단한 '굳은살'입니다.
하지만 그 방화벽 안쪽 깊은 곳의 당신은 여전히 외로웠던 겁니다.
그래서 '코인 노래방'이라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안전한 통제 구역에서, 가사라는 '허구의 슬픔'을 빌려 꽉 막아두었던 감정을 억지로 배설하는 것이죠.
당신의 노래는 낭만이 아니라, 이성이 허락한 유일한 비명이자 생존 신고입니다.
#4. 오늘의 처방
당신을 기계가 아닌 진정한 '낭만 닥터'로 만들어 줄 처방입니다. 비싼 공진단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도취되는 '나르시시즘적 감성'을 잠시 끊으십시오. 계산된 눈물은 당신의 감정 근육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일 환자가 하소연하면, 뇌에서 '진단명'이 출력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혀를 꽉 깨무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딱 3초만 세며 환자의 눈을 바라보십시오.
하나, 둘, 셋….
그다음, 아무런 의학적 소견 없이 딱 이 한마디만 먼저 하십시오.
"저런. 아이고. 많이 힘드셨겠네요."
의학적 판단(T)은 그 3초 뒤에 해도 환자는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3초의 침묵과 끄덕임이 환자에게는 최고의 진통제가 됩니다.
해결책을 주기 전에, 그저 끄덕여 주는 것.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동경하는 'F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장권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가끔은 환자 앞에서도 한숨 쉬셔도 됩니다.
의사도 사람이니까요. 당신의 그 건조하고 완벽한 표정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피로함을 살짝 들키는 순간, 환자들은 당신의 차가운 '처방전'이 아닌 따뜻한 '당신'을 신뢰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