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Ep. 8]
그건 '자기 관리'가 아니라 '상품 포장'입니다.
부제: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운동하는 여자'가 되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는 당신에게
(딸랑-. 문이 열리자 땀 냄새와 인공적인 단백질 파우더 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은 30대 여성 손님. 자리에 앉으려는데 허벅지가 후들거려 털썩 주저앉는다. 손에는 맛없어 보이는 셰이크 통이 들려있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건강하고 탄탄한 외면을 가진 분이 오셨군요.
하지만 근육은 잔뜩 펌핑되어 있는데, 정작 그 근육을 움직이는 영혼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 보입니다.
오늘도 헬스장에서 자신과의 싸움. 아니, 하기 싫은 마음과의 전쟁을 치르고 오셨군요?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님, 저 솔직히 말해서 지금 토할 것 같아요. 아니, 토하고 싶어도 닭 가슴살 셰이크가 아까워서 못 토하겠어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제 유일한 운동은 숨쉬기랑 침대에서 뒤척이기였거든요? 그때가 천국이었죠. 퇴근하고 맥주 한 캔 따서 넷플릭스 보는 게 제 인생의 낙이었는데.
그런데 서른이 넘고 소개팅 시장에 나가보니 다들 그러더라고요. 요즘 남자들은 그냥 마른 여자 안 좋아한다고.
'자기 관리하는 여자', 즉 힙업 되고 등 근육 쫙 갈라지는 '건강 미녀'가 이상형이래요.
그 말을 듣는데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아, 내 지금 몸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겠구나.'
그날로 바로 거금 들여 PT 끊고 주 5일 쇠질을 시작했죠.
스쾃 할 때마다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데, 거울 보면서 주문을 외워요.
'이걸 해야 남자가 꼬인다. 이걸 해야 내가 급이 높은 여자가 된다.'
친구들은 제 인스타 운동 인증숏을 보면서 '갓생 산다.', '자존감 높아 보인다'라고 칭찬해 줘요.
그런데 정작 저는요? 집에만 오면 녹초가 돼서 씻을 힘도 없어요. 라면 국물이 너무 먹고 싶어서 유튜브로 먹방만 보다가 울면서 잠들어요.
저는 죽도록 운동이 싫은데, 사랑받으려면 평생 이 짓을 해야 하나요? 대체 저는 누굴 위해 땀을 흘리는 걸까요? “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이 생명줄처럼 꽉 쥐고 있는 맛없는 단백질 셰이크 통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손님, 당신은 지금 건강해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을 '매물'로 내놓기 위해 뼈를 깎는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겁니다.
당신의 진단명은 [타인 시선 의존형 육체 조각 강박증]
(Other-Gaze Dependent Body Sculpting Obsession)입니다.
당신은 이걸 '자기 관리'라고 부르더군요. 틀렸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자기 관리가 아니라 '타인 맞춤형 상품 포장'입니다.
당신은 연애 시장이라는 거대한 진열대에서 더 비싸게 팔리기 위해, 당신의 본능과 욕구를 억누르고 포장지를 화려하게 닦고 있습니다.
남들이 좋아한다는 그 '애플힙'이 되는 순간, 당신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시장가치'가 올라갈 뿐이죠.
당신은 지금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품성이 높아진 나'를 전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무맛 닭 가슴살 같습니다. 씹을수록 퍽퍽하고, 아무런 감동도 없고, 목이 메죠.
가장 큰 문제는 주객전도입니다.
내 몸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여야 합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곳을 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기 위한 도구죠.
그런데 지금 당신은 '남에게 보이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있는 나'의 즐거움을 모두 거세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운동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건, 단순히 그 근육질 몸매 때문이 아닙니다. 그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한 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 눈을 보세요. 활기는커녕 독기만 가득합니다. 배고픔과 피로에 전 예민함뿐이죠.
억지로 만든 몸매로 남자를 꾄들, 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평생 닭 가슴살만 씹으며 데이트해야 한다면. 그 연애가 과연 행복할까요? 당신의 불행한 표정을 보고도 사랑해 줄 남자가 있을까요?
#4. 오늘의 처방
당신의 몸과 마음의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처방입니다.
헬스장 가기 싫어 죽을 것 같을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만약 지구에 나 혼자 남는다면, 그래도 나는 힙업 운동을 할 것인가?"
대답이 'NO'라면, 당장 그 레깅스를 벗고 헐렁한 잠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당신의 몸은 남의 눈요깃감이 아닙니다. 당신의 것입니다.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한 미용 운동은 그만두십시오. 대신 '살기 위한' 운동하십시오.
무거운 택배 상자를 혼자 번쩍 들기 위해, 여행 가서 만 보를 걸어도 지치지 않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관상용 근육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잘 써먹기 위한 '생존 근육'만 남기십시오.
오늘 저녁엔 그 맛없는 셰이크를 하수구에 부어버리고, 가장 먹고 싶었던 '탄수화물 폭탄'을 드십시오. 국물까지 싹싹 긁어서요.
배가 좀 나오면 어떻습니까? 뱃살이 좀 있어야 인간적이고, 푹신해서 안기도 좋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완벽한 복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라면 먹고 뱃살 나온 나도 귀여워해 주는 것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