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러시 업 라이프>
: 우주를 구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방을 지키려는 거지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그냥 '저'이고 싶습니다. 내 친구들이 있는."
인생 N회차물은 흔하다. 로또 번호를 외워 재벌이 되거나, 첫사랑을 이루는 판타지. 하지만 일드 <브러시 업 라이프>는 다르다. 주인공 아사미(안도 사쿠라)는 그 지겨운 입시 지옥과, 야만의 20대와, 회사 생활의 고단함을 묵묵히 반복한다. 이유는 단 하나. 다음 생에 '개미핥기'가 되지 않기 위해 덕(德)을 쌓으려고.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사는 진짜 이유는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행기 사고로 죽을 운명인 내 친구들을 구해서 '함께 늙어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1. '야만의 시대'를 되돌이표로 사는 용기
나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누구를 위해 그 끔찍했던 수험 생활과, 취업 전쟁과, 불안했던 20대의 '야만의 시대'를 4번, 5번 다시 살 수 있을까? 아사미는 기꺼이 그 짓을 해낸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수다를 떨고, 스티커 사진을 찍고, 하찮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 평범한 기적을 지키기 위해. 이 드라마는 말한다. 사랑은 대단한 희생이 아니라, 너를 위해 내가 싫어하는 수학 공부를 다시 하고, 지루한 공무원 생활을 한 번 더 견디는 '지루한 인내'라고.
2. 저승 안내소의 질문: "다음 생은 고등어입니다"
하얀 공간(저승)의 안내 데스크 풍경은 충격적일 만큼 담백하다. "이번 생의 덕 포인트로는 다음 생에 과테말라의 큰 개미핥기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잘 살아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쓰레기를 줍고, 남을 돕는 '선행'이 사실은 나의 다음 생을 위한 '적금'이라는 설정은 블랙코미디 같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끝에서 아사미는 인간으로의 환생이라는 보상을 포기하고, 친구들을 구하는 마지막 생을 선택한다. 덕을 쌓는 목적이 '나'에서 '너'로 바뀌는 순간, 드라마는 완벽해진다.
3. 안도 사쿠라, 그리고 작가 바카리즈무의 천재성
안도 사쿠라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세계에 '존재'한다. 밥을 먹으며 웅얼거리는 말투, 친구들과 나누는 영양가 없는 대화의 리듬감은 경이롭다. 그리고 작가 바카리즈무. 나는 과연 이런 대본을 쓸 수 있을까? 1화에 나왔던 사소한 '수다'가 8화, 9화에서 거대한 복선으로 회수될 때의 전율.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어도 대사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 작가의 필력에 질투와 존경을 동시에 느낀다.
Editor's Note
정주행을 마친 후 멍하니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오늘 죽어 저승 안내소에 간다면, 나는 무엇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까? 아마도 나 역시 다시 '나'이길 빌 것 같다. 다시 가족과 투닥거리고, 남자 친구와 홍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글이 안 써져 머리를 쥐어뜯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시공간을 다시 한번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브러시 업(Brush Up)'이니까.
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