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Ep. 19]
당신은 '살인마'가 아니라 '겁쟁이'입니다.
부제: 밥 먹을 때 '그것이 알고 싶다' 살인 사건 편을 틀어야 소화가 되는 당신에게
(딸랑-. 문이 열리고 뿔테안경을 쓴 평범한 인상의 30대 손님이 들어온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화면 속에서는 음산한 배경음악과 함께 폴리스 라인이 쳐진 사건 현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누가 따라오지 않나 확인한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머릿속은 피비린내 나는 사건 현장에 가 계신 손님이시군요. 방금 들어오실 때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시던데, 혹시 누군가에게 쫓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쫓고 계십니까?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님, 저 좀 무서워요. 제 안에 숨겨진 악마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뭔지 아세요? 바로 '살인 사건' 영상 보기예요. 유튜브 구독 목록을 보면 '미제 사건', '연쇄살인범 심리 분석', 'CCTV 속 소름 돋는 장면' 이런 것만 수두룩해요.
남들은 징그러워서 못 보겠다는데, 저는 밥 먹을 때 그걸 봐요. 비빔밥을 비벼 먹으면서 토막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는데, 밥이 술술 넘어가요. 오히려 사건이 잔혹하고 치밀할수록 묘한 쾌감, 아니, 흥미가 생겨요.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하면 밤새 추리하느라 잠도 안 자요.
친구들이 제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고 기겁하더라고요. '너 혹시 잠재적 사이코패스 아니냐?'라고요.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남의 불행과 죽음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끼다니…. 저 나중에 사회에 불만이 생기면 범죄라도 저지르게 되는 걸까요? 제 뇌가 피를 원하는 걸까요?“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의 스마트폰 화면 속, 범죄 심리학자가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장면을 보며 피식 웃는다.)
손님, 안심하십시오. 당신은 잠재적 살인마가 아닙니다. 당신은 오히려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미리 예방 주사를 맞고 싶어 하는 '겁쟁이'일 뿐입니다.
당신의 진단명은 [대리 공포를 통한 현실 안도 증후군] (Reality Relief Syndrome via Vicarious Horror)입니다.
진짜 사이코패스는 그런 영상을 보지 않습니다. 직접 하거나, 시시해 하죠. 당신이 살인 사건에 집착하는 건 '공격성' 때문이 아니라, '생존 본능' 때문입니다.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하면 죽는구나!", "저런 사람은 피해야 하는구나"라는 데이터를 수집해서, 무서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모의고사'를 치르는 중인 겁니다. 당신이 밥을 잘 먹는 건 잔인해서가 아니라, "나는 지금 안전한 방 안에 있다"라는 사실을 영상과 대조하며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아주 매운 마라탕 같습니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자극적인데, 먹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개운하죠.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직장 상사의 은근한 괴롭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가득하죠. 그런데 살인 사건 영상은 명쾌합니다. '나쁜 놈'이 확실하고, 대부분은 범인이 잡혀서 '정의 구현'이 됩니다. 미제 사건 빼고요.
당신은 현실의 답답한 고구마 같은 스트레스를, 강력 범죄라는 더 큰 공포로 덮어버리고 싶었던 겁니다. 일종의 '이열치열' 요법이죠.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너무 자극적인 것만 먹으면 위장에 구멍이 나듯, 너무 잔혹한 것만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4. 오늘의 처방
당신의 뇌를 핏빛에서 핑크빛으로 중화시키기 위한 처방입니다.
지금 당장 유튜브에 '새끼 강아지', '웃긴 고양이'를 검색해서 영상 5개를 연달아 보십시오. 당신의 알고리즘이 범죄 현장으로 도배되지 않도록, 강제로 귀여운 것들을 심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환멸을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중화시키는 '시각적 해독제'가 필요합니다.
해 지고 나면 범죄 콘텐츠 금지입니다. 밤에 보는 공포는 '학습'이 아니라 '불안'으로 저장됩니다. 밤길 걷다가 죄 없는 택배 기사님을 살인마로 오해해서 도망치고 싶지 않다면, 밤에는 평화로운 예능이나 보십시오.
추리 본능을 범죄 말고 다른 곳에 쓰십시오. "저 김 대리는 왜 오늘 기분이 안 좋을까?", "내 통장 잔고는 왜 살해당했을까?" 범인 잡는 것보다 내 인생의 구멍을 찾는 프로파일링이 훨씬 생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