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공원의 써브웨이와 찰나의 불안
볕이 유독 투명한 날이었다. 바람은 적당히 서늘했고, 공원의 잔디는 이제 막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싱그러웠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나는 매콤한 할라피뇨를 듬뿍 넣은 이탈리안 비엠티를, 그는 소스조차 거의 넣지 않은 담백한 로스트 치킨을 골랐다. 식성만큼이나 선명한 온도 차이였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신선한 채소의 식감만큼은 동일하게 경쾌했다.
“맛있네요.”
그가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으며 무심하게 뱉은 그 한마디가, 갱년기 특유의 울렁거리는 기분을 잠시 가라앉혀 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오후.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노화도, 호르몬의 장난도 다 남의 일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산책로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던 할머니 한 분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신 것이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 안의 뜨거운 기운이 발끝까지 뻗친 듯, 나는 샌드위치를 내팽개치고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뒤이어 그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내가 할머니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일으키는 동안, 그는 곁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할머니의 안색과 거동을 살폈다.
“할머니, 어디 부딪히셨어요? 여기 움직여 보세요. 아프세요?”
한의학 서적을 뒤적이며 다진 그 특유의 침착한 관찰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보다 훨씬 더 차분하게, 그는 할머니의 손목과 무릎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떨리는 손을 잡아드리는 그의 손길은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고도 단단했다.
할머니를 무사히 가족에게 인계하고 다시 벤치로 돌아왔을 때, 우리 사이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 일어난 소동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흐트러진 내 옷매무새를 다듬다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터질 듯한 기대를, 숨길 수 없이 도사리고 있는 불안을 보았다.
그는 나라는 여자가 가진 뜨겁고 즉흥적인 생명력에 대한 기대를, 나는 그가 가진 서늘하고 견고한 다정함이 끝내 나를 지탱해 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찬란한 봄날의 호시절 뒤에 숨어있는 노쇠의 징후들을. 내가 겪고 있는 갱년기가 단순한 열감을 넘어 '상실'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 아름다운 청년이 감당하기엔 내 감정의 진폭이 너무 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다시 남은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소스는 이미 빵에 스며들어 눅눅해졌지만, 공원의 바람은 아까보다 조금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기대가 커질수록 불안의 그림자도 길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그 짧은 찰나에 서로의 눈빛을 통해 확인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