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종류 책만 고집하는 아이

반복 읽기의 장점

by 말과맘

"전 소설을 좋아해요. 다른 책은 재미가 없어요."

"소설은 지어낸 얘기잖아요. 소설을 읽으면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요. 저는 넌픽션이 좋아요."

"과학이 재밌어요. 제가 궁금한 걸 알려주니까요. 동화책은 읽다 보면 자꾸 딴 생각이 나요."

"저는 판타지 매니아예요. 현실에 없는 상상이라 재밌어요.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고요."

"추리가 제일 좋아요. 어 어렸을 때는 탐정 책 좋아했어요. 누가 범인인지 추측하는 게 즐거워요."


한 분야의 책에 꽂히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같은 책을 수십 번씩 읽는다. 골고루 읽지 않는 이 아이들의 독서 성향에 대해 대부분의 부모는 걱정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애는 공룡 책만 보고 또 봐요. 지겹지도 않은가 봐요. 다른 애들처럼 여러 장르를 골고루 읽으면 더 아는 게 많아 좋을텐데요......"


부모는 아이의 '편독'을 걱정하게 된다. '편식'이라는 말이 골고루 음식을 먹었으면 좋을텐데 가려서 붙여진 이름인 것처럼, 편독이라는 말도 아이의 독서가 특정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겼다. 나는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일이 드물다. 새로움을 추구한다. 다양한 책을 읽어서 상식이 는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책이든 한 번만 읽어서 내용을 제대로 소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책을 여러 번씩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을 보는 사람보다 책의 구석구석을 더 잘 기억하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시험 준비 기간에 교과서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나이에 한 가지 분야에 그렇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다독과는 다른 형태의 장점이다. 한 분야만 읽는 것은 지식을 덜 습득한다는 식의 해석은 섣부른 판단이다. 책을 깊이 있게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것이나, 같은 책만 반복으로 읽는다는 것은 차이거나 취향일 뿐 장점과 단점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씩 읽는 아이에게도 머지 않아 새로운 관심 영역은 생겨난다. 같은 책을 보고 또 보는 아이들은 나이에 비해 그 분야에 대한 소신과 확신을 가진다. 많은 내용보다는 하나에 대한 정확성과 체계 같은 것이 더 훌륭한 경우가 많다. 읽었던 내용을 더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양하게 읽으라고 떠밀거나 반대로 늘 새로운 책을 읽는 아이에게 억지로 같은 책을 여러 번을 읽으라고 하는 일은 불필요한 간섭이 될 수 있다. 아이는 같은 책을 반복하면서 그 책을 소화하고 즐기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부를 의식한 부모는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편독이 학교 공부에 불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분야를 반복하면서 정확히 알려하는 아이는 공부에서 꼭 필요한 분석력과 사고력이 더 좋을 것이다. 무언가에 심취한 아이들은 비록 다양한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특성을 막지 않고 잘 키워준다면 자신만의 공부법을 터득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편독은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는 아이의 독서 취향이다.


"ㅇㅇ이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편이냐, 아니면 매번 다른 책을 읽는 편이야?"

"저는 한 번 읽은 책은 재미가 없어요."


내가 학원에서 지도하던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는 먼저 아이의 독서 취향을 파악한다. 한글로 읽은 책 중에서 어떤 종류를 좋아하는 지 물어본다. 한글로 추리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영어로도 추리를 좋아한다. 아이 마음에 내장된 성향이기 때문이다. 이런 타고난 특성을 무시하고 부모가 원하는 책을 두 번 세 번 권하면 아이는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기도 전에 독서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갖게 된다. 독서를 싫어할 위험이 커진다.


"책을 읽기 전에 전체 스토리나 결말을 미고 싶어?"

"아뇨. 누가 먼저 이야기 결말을 알려주면 읽기가 싫어져요. 모르고 읽어야 재밌어요."


영화나 드라마, 책의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것을 ‘스포(spoiling)’라 부른다. 스포를 원하는 아이도 있고,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나는 책이나 영화를 볼 때 적당한 스포를 원한다. 미리 대강의 이야기를 알면, 그 책을 읽을지 말지가 정해진다. 원하지도 않는 스타일의 책이나 영화를 지루하게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고난 독서 성향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재미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어야 독서가 지속되고 취미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이 성향에 맞지 않는 책을 자꾸 권장하면 아이는 갈수록 독서가 싫어진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책을 대하는 성향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 타고난 성향을 파악해서 살려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익하다. 재미가 있다고 하는 분야를 지속적으로 찾아내기만 한다면 어느 분야를 읽든지 억지로 변경하려 하지 말자. 아이가 여러 번읽었던 책을 또 읽어 달라는 것은 읽을 때마다 지난번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같은 책을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몰입을 경험하는 것이다. 재밌지 않다면 어떻게 꾸준히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을까? 독서를 취미가 되게 하는데 아이만의 좋아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장점에 속하지 절대로 걱정할 일은 아니다. 아이를 다독가가 되게 하려면 처음부터 많은 책을 술술 읽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아이가 책은 재밌다는 인상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아이의 표정과 말과 태도를 잘 관찰하면서 원하지 않는 취향을 권유하지 않는 배려가 필요하다.


독서도 공부와 마찬가지로 열정이 일어나려면 매번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독서 습관을 잘 들이면 독서는 확장된다. 긍정 심리학자들은 내 "아이가 부족한 영역을 평균 이상으로 역량을 키워주려 하기보다, 아이가 이미 잘하는 강점을 키워주는 것이 능력 발휘에 더 유익하다"고 말한다. 내 아이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집중적으로 키워주면 모든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아이는 그 부분을 자신이 못한다는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다. 차라리 잘하는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부분을 적절히 칭찬하면서 아이가 장점을 더 키우려는 내적 동기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 분야에 덕후 기질을 가진 아이들


아이들이 집중하는 특정 주제는 자동차, 기차, 비행기, 로봇, 야구, 축구, 공룡, 곤충, 수학이나 물리, 판타지, 추리, 한국사, 세계사 등 다양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빠져든다. 취향은 마음이 하는 일이고, 마음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다양한 자동차의 이름을 알거나, 야구 선수 이름을 줄줄 기억하는 일, 공룡의 종류를 열거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노력과 시간을 다른 영역으로 서둘러 나누어서 하라는 요구는 아이의 흥미만 떨어뜨리는 소탐대실이 된다. 오히려 아이의 첫 애정 대상을 깊게 생각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다른 분야로 서서히 관심을 넓혀갈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좋아했던 그 영역이 결국 다독가가 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다.


부모로서 이런 아이의 특성이 걱정이 된다면 같은 책을 볼 때마다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거나 대화를 해주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한 분야에 몰입한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 분야의 어휘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이렇게 키워진 집중력과 사고력이 아이가 앞으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자. 아이의 독서 편향은 아이가 타고난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장차 자신이 전공이나 직업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왜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을까?


어른들은 지식과 경험이 많아 한 번에 책 안에 정보를 스캔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덜 그렇다. 아이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양은 어른보다 적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해서 봐야 깊이 있게 자세히 다각도로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 때론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계속 읽어주었더니 한글을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깨우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가 반복해서 읽어주는 소리와 글자를 매칭시키는 분석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한글 글자와 소리간의 규칙을 스스로 파악할 정도로 관찰력을 지닌 것이다. .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만큼 읽도록 허용하자.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의 작가 죠앤 롤링은 어려서부터 판타지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님을 이를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의 그런 집요함 덕분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불후의 판타지 명작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지호는 공룡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한 분야를 끈기 있게 파고드는 사람이면 공부도 잘할 수 있어. 그런데 지호야, 매일 공룡 책만 계속 읽는 게 좋을까, 아니면 가끔씩이라도 다른 책도 함께 읽는 게 더 좋을까?"

"으음.....가끔 다른 책도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지호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지호는 그럼 공룡 말고 혹시 관심이 있는 게 있어?"

"네, 있어요. 저는 야구를 종하해요."

"아, 그랬구나. 공룡 책도 많잖아? 야구에 대한 책도 엄청 많으니까 앞으로는 야구에 대한 책도 읽어보자?"

"네."


부모가 정해준 책을 읽으라고 지정해 주면 흥미가 떨어진다. 남편이 번번이 읽을 책을 권해주면 즐겁게 읽겠느냐고 엄마들에게 질문하면 어려울 것 같다고 답변한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흥미 분야를 넓혀주고 싶다면 지시하는 대신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는 지금의 관심 이외에도 다른 관심이 분명 있다. 다만 물어보질 않아서 알지 못했던 것 뿐이다. 편독을 지지해주고 장려해주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영역으로 호기심이 옮겨 붙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공부를 잘하려면 분석과 집중력이 좋아야 하는데 이미 아이는 그런 능력을 가졌으니 오히려 기뻐하며 그 성향을 키워줘야 할 것이다.



편독이 슬로우 리딩이 되도록


<슬로리딩>은 일본의 한 교사가 착안하여 실시한 좋은 독서법이다. 교사는 한권의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읽게 했다. 박완서의 <완득이>를 읽고 할 수 있는 활동은 무수하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 정리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정리하거나 요약해서 발표할 수도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팀을 나눠서 토론을 할 수도 있다. 작가의 일생을 정리하기도 할 수 있다. 작가가 살아온 시대의 환경을 탐구할 수 있다. 또 박완서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 볼 수도 있다. 박완서의 생가를 찾아가는 현장학습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 작품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다양한 활동을 실시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글을 써서 글짓기 대회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느리고 느린 독서법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여 슬로우 리딩을 시작했던 그 학교의 졸업생들은 일본을 리드하는 유명인이 많이 되었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질이라는 것은 독서와 공부에 모두 적용되는 원칙이다.


야구만 집착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야구에 대한 책을 읽게 한다. 가족 모두가 응원하는 팀을 정해서 야구 경기를 찾아 가서 관람한다. 주말에는 아빠와 아이가 야구 연습을 한다. 유명 야구 선수에 대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즐겁게 돌다보면 가족의 화목도 좋고 즐거운 추억도 남게 된다. 이렇게 아이가 좋아하는 야구를 활용하여 충분히 집중하면서 즐길 수 있게 환경을 갖춰줄 수 있다. 학교에서 발표가 있을 때, 야구에 대한 주제로 자신의 아는 지식을 뽑낼 수도 있다. 독후감 대회가 있다면 전설적인 야구 선수 Sammy Sosa 전기문을 읽고 독후감을 쓸 수도 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영역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글쓰기 임에도 아이는 해보려는 의지가 다른 때보다 클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칭찬을 받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얻게 되면서 한 단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멈춰서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느리지만 확실한 이런 교육이 더 다양하게 진행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저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는 잘 읽거든요. 그런데 과학 책은 읽으면 졸려요. 과학 책을 좋아한다는 애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가요"


소설류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가 과학과 수학을 다룬 책을 어려워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설을 꾸준히 읽게 해서 그 안에 수학과 과학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소설을 줄이고 껄끄러운 수학 과학 책을 억지로 읽게 하다보면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장점마저 잃을 위험이 생긴다. 아이마다 읽기를 꺼리는 영역이 있다. 그 분야의 책을 혹시라도 읽도록 돕고 싶다면 수준을 낮춰주길 권장한다. 예를 들어, 만화책으로 해당 주제를 접근하도록 해보는 것이다. 아니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처음 접근하여 흥미를 유도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첫 문턱을 넘으며 아이가 재밌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 다음 진입은 조금 더 쉬워진다. "제가 왜 지금까지 이렇게 재밌는 과학을 싫어했던 걸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아이가 한 분야에 몰두하든 여러 가지 책을 두루두루 읽든 그 상태를 그대로 칭찬하자. 부족한 부분을 섣불리 채우려고 잔소리를 했다가는 소탐대실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지 않도록 무엇이든 읽고 있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편안하게 발판을 깔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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