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부부가 되자
"우리나라 세법과 대입제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복잡할까요?"
"글쎄, 막상막하 일걸요. 세법도 입시도 너무 자주 변해서 글을 읽을 수 있다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지금 제도를 알기 위해서는 지나온 역사를 다 이해해야 하니까요."
우리날 대입제도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게임의 규칙이 복잡할수록 경쟁에서 정보를 가진 쪽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교육제도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매년 내용을 수정할 때마다 ‘제발 변경만 하지 않아도 감사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세법 중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한다는 주택 양도소득세 계산조차도 일반인에게는 어렵다. 세무사 자격증이 있다고 아무나 술술 할 수 것도 아니었다. 주택이나 부동산 분야에 집중적인 노력을 해온 세무사만이 고객의 질의에 술술 답변할 수 있다. 주택 구입 연도, 보유 년수, 거주 년수, 소재 지역, 주택 보유 수, 매매 차익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하여 이런 저런 입체적인 공제를 하고 나와봐야 세금이 얼마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AI가 계산을 실수 없이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수많은 개정과 변수 때문이다. 세무사의 고충을 들으면서 부모가 자녀의 입시제도를 대하며 드는 혼돈을 세무사도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시와 정시전형을 통해 수험생의 합격을 예측하려면 각 대학이 공개한 입시 요강을 이해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입시 용어에 익숙해져도 과거의 제도 변화에 대한 추적 연구를 하지 않으면 지금의 규칙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었다고 할 때, 절대 평가의 등급 기준은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 올해 지원 시에 지원할 대학의 합격 여부를 예측하기 위해서 절대평가가 되기 전에는 상대 평가를 어떤 식으로 했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교육 제도 변화를 민첩하게 연구하는 사교육계에서는 답답하고 고달픈 학부모의 이러한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입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해마다 점점 입시제도의 실타래를 풀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교육의 한 축을 컨설팅이 차지하면서 그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교육 제도의 개정은 언제나 사교육의 축소와 공교육의 정상화를 목표로 하지만 결국 더욱 복잡해진 입시가 되어버려서 항상 사교육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앞으로 누군가 교육의 개혁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교육 제도를 단순화하려는 노력을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한다. 백년지 대계가 어느 사이 1년짜리 졸속 계획으로 이어온 것이 결국 공교육이 정보를 쥐지 못하고 신뢰를 잃게 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사회에 알려진 '자녀 교육의 성공 3요소'가 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을 일컫는다. 엄마의 정보력은 앞에서 말한 입시의 복잡성 때문에 아이가 공부를 하더라도 아이에게 적합한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줄 사람이 없으면 아이는 자기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교육비의 지출은 언론에 보도되는 전국 평균값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사교육도 많고 정보를 얻기 위한 컨설팅 비용은 시간 대비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부모의 소득으로 버겁기만 하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재력을 가지고 있으시면 손쉽게 정보와 과외 교사, 좋은 학원 강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 해도 빠짐없이 수능이 끝난 연말이거나 정치적인 시즌이 되면 제대로 진단하지 않은채 그 당시 이슈가 된 하나의 사건을 끄집어내어 방향만 좌우로 흔들어 댄다. 현행 제도의 일부를 물어 뜯어서 다른 명칭의 변경을 실시한다. 교육의 참여자인 학생이나 부모나 학교 교사에게 시간을 두고 의견을 듣거나 토론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음 해 학사일정을 미리 다 잡아 둔 학교로서는 연말의 갑작스러운 변경을 다음 해에 반영하지 못한채 정책이 실시되는 일이 많았다. 학교는 개정 때마다 당황하고 우왕좌왕했다. 현재 제도와 학사일정은 일치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기 일수다. 이런 혼돈에 구세주는 정보력이 탄탄한 사교육의 설명회다.
대형 학원의 정보는 전과 후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그랬을 경우 앞으로 어찌해야 더 유리한지도 설명해준다. 변경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도 미리 예측해준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를 설계해준다. 99%의 유용한 정보에 1%의 조바심 마케팅을 섞기 때문에 설명회에 다녀온 부모는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잦은 교육정책 변경은 항상 학원 편이었다. 부모가 모두 직장에 다니면서 그 변화를 따라가려면 얼마만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늘 그 정보의 부족으로 고통을 더 많이 받았다. 잦은 제도 변화에 적응할 여유가 없는 학교 교사들은 변경의 횟수와 양이 누적되어 감에 따라 실제 교육 정보에서 점점 멀어지고 그 결과 아이들의 존중을 얻지 못하며 교사의 권위는 실추되고 있다. 매년 제도에 손을 대는 것은 실상 교육 개혁과는 관련은 없어 보였다.
입시의 특성상 전년도 입시 결과를 참조하여 올해의 합격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야 합격율이 높아진다. 하지만 매년 제도가 바뀌기 때문에, 용어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차이를 감안해서 지원하려면 컨설팅의 도움이 필요하다. 컨설팅을 받지 않으면 손해를 감수한다. 수능제도가 생겨난 1994학년도부터 지금까지의 입시 역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아이가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좋은지를 과감하게 선택하기 어렵다.
학교 교사들조차 입시 정책을 해석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평교사가 아이들의 입시상담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지 오래다. 비슷비슷한 입시 용어의 남발로 입시제도를 이해하는 데 진입장벽이 무척 높다. 전화번호부보다 더 두꺼운 입시제도를 부모가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는 사야 할 수밖에 없다. '정보력'은 '재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입시제도를 알지 못하면 효율성 면에서 뒤처지기 쉽다. 내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을 가게 하려면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를 미리 미리 찾을수록 유리하다. 아이의 성격과 적성에 대한 파악부터 쉽지 않은데다가 누구나 초보인 부모는 입시제도의 전체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이 아이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기가 쉽다.
아이들마저도 불안한 부모가 솔루션으로 선택한 학원 프로그램을 다량으로 소화하느라 바쁘다. 일찍부터 무한 경쟁에서 어린이다운 삶을 빼앗긴 아이들은 결국 이른 사춘기 혹은 격한 사춘기를 겪으며 가족 관계를 한껏 뒤집어 놓기 십상이다.
교육 정보는 최상위권 학생을 위한 것이다
시중에 거래되는 교육 정보는 주로 최상위권을 위한 내용이다. 내 아이의 현재 상황과 멘탈과 적성을 고려해서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정보는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면 비싸다.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부모 중 어느 한 명이 나서서 면밀하게 꾸준히 탐구하고 분석해야 한다. 엄마가 주 양육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원 설명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대부분 엄마였다. 아무리 엘리트에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해도 수많은 설명회에 참석하거나 꾸준히 입시제도를 추적하지 않고는 입시제도를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것을 기준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조바심을 가지고 뭔가를 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학력고사 시대를 겪은 아빠는 아내에게 현실을 모르는 딴지를 건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하라고 하느냐면서 기본만 충실하게 하라는 원론을 내세운다. 이렇게 남편들이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많다보니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리기 위해서는 아빠들이 아예 이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고 학원가에서 우스개소리로 하던 말이 바로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 교육 성공의 요소다”라는 것이다. 어떤 학원의 어느 수업을 들어야 아이가 잘할까 걱정인 아내에게 남편은 "나 때는 말야, 그렇게 유난 떨지 않고도 대학 잘갔다"고 말을 하곤 한다. 학원 수업을 결정하는데 남편의 간섭이 방해만 될 뿐이다. '아빠의 무관심'이 있어야 엄마들이 학원을 선택하게 되느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말은 학원의 마케팅 용어라 볼 수도 있다.
‘아빠의 무관심’은 진정 아이들 공부 성공의 요소일까? 지나고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더라. 부부간의 의견 차이로 부부 싸움을 막는 요소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원이 제안하는 수업을 신속하게 등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결국 아이 공부에 성공 요인으로 회자되는 ‘아빠의 무관심’은 학원가의 속성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지난 20여년간 두 아이를 교육했고, 주변의 많은 아이들의 교육을 관찰하고 보니 ‘아빠의 무관심’을 채택하기 보다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에 줄을 서는 것이 인생에는 훨씬 더 이익일 것이라 생각된다. 중요한 자녀 교육이라는 주제에서 사사 건건 부부가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20년이 흘렀을 때, 부부는 50이 넘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자녀 교육과 생업에 종사하느라 부부 사이에 정답게 대화하고 생각을 교류하지 않으면 50넘어서 인생의 큰 위기가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가야할 학원 등록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아빠와 엄마가 머리를 맞대고 교육의 원칙과 방향을 통합해야 한다. 입시 자체가 부추기는 경쟁과 사교육에서 부채질 하는 경쟁으로 지친 엄마를 위해 주말이나 저녁에 아이들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거나 같이 놀이를 하는 시간이 입시를 마치고 나면 더 중요하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먼저 다 키우신 부모님들이 한창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향해 “그거 다 소용없어. 그 나이엔 그냥 놀리면 돼!”라는 말을 그리 자주 해주셨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엄마의 고충을 이해해 주면서 자녀들과 교류를 해주고 여가를 가지면 주양육자인 엄마(혹은 아빠)도 조금이라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20여년간 아빠를 집안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할 최후는 부부간의 대화의 공통점이 없는 아빠를 만드는 결과를 만든다. 복잡한 교육 때문에 엄마는 교육을 아빠는 직장에 집중한 것인데 아빠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짐처럼 느끼게 만드는 오류를 낳게 된다. 아빠와 대화 없이 자란 아이들은 갈수록 아빠와 대화하는 것이 어색해진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갈등이 생기면서 때론 남보다도 못한 가족관계로 치닫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지붕아래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사는 것이다. 사교육은 시험 점수에 집중하지 아이들의 정서까지 관여하지 않는다. 공부 정서와 관계가 깨진 것에서 오는 아픔과 찌꺼기는 오로지 가족이 이후 인생에서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기 쉽다.
저녁이 있는 삶은 왜 필요한가. 하루의 긴장을 내려놓고 힘든 일을 이해해 주고 응원하는 사람이 가족이 아닌가. 부모에겐 가장 중요한 일인 자녀 교육에서조차 아빠가 배제되면 다른 어떤 부분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엄마 위주로 돌아가던 가정에 갑자기 들어서려는 중년의 아빠들은 적응이 쉽지 않다. “아이들 대학 입시만 끝나면 이혼할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빠의 무관심’을 강요하는 교육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이 교육 성공의 3요소는 믿지 않기를 조언하고 싶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오히려 가족의 행복을 막는 요소라고 생각된다. 차라리 부모의 소신대로 교육을 시키면서 아이들과 한 편이 되어 대화를 하는 것이 사춘기 격한 분노도 예방하고 다양한 추억거리를 가진 가족이 되게 할 것이다. 그게 장기적으로 더 행복한 결정일 것이다.
가정에서 아빠가 중요한 시기는 많다. 맞벌이든 전업주부든 지친 하루의 심신을 달래는데 남편의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는 그 자체로 힘이 된다. 아이들은 함께 재미있게 놀아주는 아빠를 통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아빠랑 잘 노는 아이들의 자존감이 그렇게 못한 아이들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아빠의 무관심'이 성행하면서 부부가 불통한 탓인지 요즘 아이들은 "전 결혼은 절대 안 할 거예요."라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 낳고 싶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엄마 아빠가 우리를 키우시면서 행복해 보인 적이 없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한 행복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지가 않아요.", 또는 "부모님이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자기 삶이 너무 없는 거 같아요." 등의 답변을 했다. 60년대 한 해 1백만명 이상이 출생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2020년 이후 연간 출생아 수는 30만명을 밑돌며 세계 최하위의 자녀 출생률을 이어가고 있다.
두 딸도 성인이 되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간 뒤 우리 부부가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은 왠지 공허하기도 하다. 인생 50년이 이렇게 빠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니 1백년도 금세 지나겠다는 세월 인식력이 높아졌다. 갈수록 나이가 들어갈 몸과 마음을 서로 이해하며 의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를 교육하는 기간은 부부에게는 인생의 가운데 한 토막이다. 하나에 쏠리지 않게 가족이 같이 하는 취미 활동에도 인색하지 않기를 꼭 권하고 싶다. 많이 대화한 사람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많아지는 것처럼 젊어서 부부가 많은 대화를 나눠야 50넘어서도 잔잔한 대화가 자연스럽다.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느라 부부가 멀어지면 공통의 대화거리가 사라진다.
골프를 즐기는 지인은 인생이 골프 같다고 말했다. 드라이브 샷을 펑펑 잘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퍼팅을 잘하는 것이 골프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둘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몇 년간 인생의 제 2라운드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 교육과 입시를 챙겼지만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입시가 치열할수록 그 중앙에 부부의 시간을 더 많이 배정해서 여유를 만들어 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문구는 유머스럽고 재치있는 말 같아서 웃어넘기기 쉽지만, 실은 가족 문화측면에서는 근시안적이고 위험한 문구다.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이념에 부부의 인생에 혼돈을 안겨준다.
아빠가 육아나 독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면 부부가 따로 결혼전 연애하던 시절처럼 시간을 내어 소소한 대화를 해보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다. 아이 아빠는 참여하고 싶어도 어떻게 끼어들지 모르고 있을 수 있다. 혼자서 빨리 빨리 아이교육의 모든 것을 결정하다가 나중에서야 남편에게 서운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상의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 이것이 입시가 진행되는 내내 아이들에게 보내는 또 다른 교육임을 끝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