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풍차 돌리는 날 3
마누라를 안아봐야겠다
by injury time Aug 13. 2021
다음 날, 꿈에서 본 행운의 번호로 당장 읍내로 나가 로또를 이만 원어치 샀었다. 너무나 선명한 숫자 다섯 개를 믿고, 또 내 촉 '30'을 믿으며 나는 그렇게 이만 원어치, 복권을 샀다. 혹시 몰라 끌리는 번호도 써보고 자동으로도 만 원어치 달라고 했었다.
로또 방송이 나오는 시간, 읍내에서 깨복쟁이 불알친구와 호프를 한잔씩 들이키고 있었다. 추석 연휴, 한적한 시골 읍내 낡은 호프집은 나처럼 객지에서 온 패잔병들이 모여 서로를 위안 삼아 말라빠진 치킨과 함께 밍밍하게 식은 맥주를 마시기에 좋은 장소다. 갑자기 호프집 여사장이 닭똥집을 튀기다 말고 아차차, 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런닝맨>을 돌려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으로 채널을 맞췄다. 그때서야 나는 지갑 속에 넣어둔 로또 종이가 생각났다. 여사장은 뒷주머니에 있는 로또 종이를 꺼내 하나 둘 맞춰본다. 나도 얼른 로또 종이를 꺼내 굴러다니는 모나미 볼펜을 주워 앞니로 깨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면에 집중했다.
- 네, 빨강 공 24번입니다
- 이번에는 노란 공이 당첨됐습니다. 예, 9번입니다.
- 이번에도 노란 공, 6번입니다.
- 다음 공은, 검은 공 42번입니다.
- 예, 초록 공 18번입니다.
- 마지막 공은, 노란 공 7번입니다.
- 보너스 공입니다, 검정 공 40번입니다.
- 당첨되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어어어, 잠깐만, 이거 뭐야? 씨발.”
“이 새끼, 왜 그랴?”
“앗싸! 나 다섯 개 맞은 것 같아! 다섯 개 맞으면 몇 등이지? 씨발.”
“이 새끼, 너 진짜야? 어디 좀 봐봐.”
“아, 진짜라니까. 야, 이거 봐. 씨발. 숫자 다섯 개 맞았다니까.”
나는 모나미 볼펜으로 우악스럽게 동그라미를 친 로또 종이를 술친구에게 들이밀며 연신 침을 튀겼다.
“왐마, 이 아자씨, 진짜 3등 됐나 보네? 난 꽝인데!”
여사장이 실쭉대며 로또 종이를 구겨 멀리 주방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똥 꿈꾸고 드디어 로또 맞았네!! 으하하하”
“야, 이 새끼! 한턱 단단히 쏴야겠네.”
우리는 술기운인지 뭔지 모를 흥분으로 벌게진 얼굴로 온 입주댕이에 번들번들 닭튀김 기름을 묻히며 깔깔거렸다.
나는 진짜로 숫자 다섯 개가 맞았고, 3등에 당첨됐다. 게다가 똑같은 번호를 세 번이나 써서 운 좋게 3개나 3등으로 당첨되었다. 푸르뎅뎅한 똥 꿈이 신통방통하게 행운을 가져다줬다. 푸르뎅뎅한 게 만 원 짜리 배춧잎이었나 보다.
명절이 끝나고 우리 부부는 부리나케 서울로 돌아와서 집 근처 농협에 달려가 세금 떼고 315만 820원의 당첨금을 받았다. 그날은 마누라랑 최고로 비싼 한우 소갈비를 사 먹고 집에 와서 마누라 궁둥이 만지며 신나게 풍차도 돌리고 잠도 푹 잤었다. 그렇게 공돈은 나도 모르는 순식간에 공기 중에 사라져버렸다.
그 후 나는 다시 월요일 밤이면 로또를 산다. 처음 꿈에서 알려준 번호 6개를 잊지 않으려고 꼭 그 번호로 로또를 산다. 오늘은 월척을 누었으니 꼭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렇게 일주일을 즐거이 보내리라.
마누라가 오늘은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놨다. 나는 이렇게 말갛게 끓여 내놓는 된장국을 좋아했다. 몸이 좋지 않은 마누라는 세 번의 유산으로 더 이상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 나 역시 돈에 허덕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자식 같은 건 짐만 되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식 없이 살자고 합의를 봤다. 나는 얼른얼른 늙어서 빨리 죽고 싶었다. 그만큼 사는데 열정도, 의지도 없었다.
- 어이, 자?
벽에 바짝 다가가 코를 박고 자는 마누라의 허리춤을 더듬는다. 오래 살고 싶은 의지도, 자식을 낳고 싶은 의지도 없지만 여자에 대한 의지는 좀체 죽지 않나 보다. 마누라의 얇은 어깨가 반지하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유난히 서글퍼 보였다. 마누라를 안아봐야겠다.
- 다음 편 계속
요즘 화자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 위에 줄 그은 부분, 화자가 50대 무능한 루저로 설정된 상태라 아내도 호칭을 '마누라'로 변경했는데, 부부관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었습니다.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처럼 리얼하게 쓰고 싶습니다. 상콤하게 쓸수도없고 고상하게 쓸수도 없고,,, 그래서 어설프게 저렇게 썼습니다. 50대 루저가 아내와 성교하다? 섹스하다? 관계하다? 빠구리 치다? 떡 치다?....
다 이상해서요. 적절한 단어가 있을지.... 꼭 그 장면을 표현하고, 넣고 싶어서,, 하루 종일 고민하다 풍차를 돌렸다고 했는데, 좀 웃긴것도 같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