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풍차 돌리는 날 2

마치 굵은 똥을 그려 놓은 듯 그렇게.

by injury time

뭘 해도 먹고살기에 간당간당하다. 돈벌이 때문에 이 복잡하고도 물가 비싼 서울 한복판을 떠날 수가 없다. 나는 작년 여름에 폭우로 물바다가 됐다가 겨우 정비를 하고 다시 세를 놓은, 바로 그 송강호 형님이 살던 반지하 전셋집으로 이사를 왔다. 강호 형님네가 인생역전으로 가족 모두 취업이 되어 부업을 접고 먹고살만해졌다는 소문이 이 동네에 파다하게 돌 때, 우리 부부는 옆 건물 옥탑에서 살았었다.

그렇다! 내가 바로 강호 형님네 창문 담벼락에 매일 술을 마시고 번번이 시원하게 오줌을 갈겼던 장본인이다. 몇 발자국만 가면 우리 집인데도 난 매번 강호 형님네 담벼락만 보면 영역 표시하듯 담벼락에 오줌을 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 후 이곳에 들어와 살 거라는 걸 예감하는 부분이다. 푸하하.

퇴사한 지 5년, 나 같은 50대, 기술 없는 놈이 다닐 곳은 없다. 그나마 올 초에 구청에서 뽑은 1년 계약직 환경감시단 활동으로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 낮에는 환경감시단, 밤에는 간간이 대리운전을 하며 벌어오는 수입은 겨우 300이 왔다 갔다 한다. 대출금에, 카드 값에, 시골에 계신 엄니 약값까지 보태주다 보면 번번이 수중에 남는 돈은 없다. 마누라도 근처 마트에서 물건 진열을 하며 틈틈이 생활비를 보태지만 별 도움은 안 된다. 차라리 강호 형님네처럼 집에서 인형 눈깔이나 붙이고, 피자박스 만들기 부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마누라는 루푸스 증후군으로 자주 피곤해했고, 끄떡하면 쓰러지곤 했기 때문이다. 씨발, 이름도 어려운 그 루프스 증후군을 설명하자면 복잡해진다. 피를 통째로 갈면 모를까 빌어먹을 마누라의 루프스 증후군은 우리 부부에게는 평생 구원받지 못하는 신의 저주 같은 것 같다.

내 꿈은 아주 심플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뭐, 열심히 벌거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잔잔바리로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통장에 어마무시한 잔고가 쌓이는 삶 말이다. 아무도 내 통장에 돈이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똥구멍이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현실은 팍팍할 따름이다. 뼈 빠지게 일하다가 월급날만 기다리고, 기다리기 무섭게 빠져나가는 돈 때문에 그놈의 돈 냄새를 맡을 새가 없다. 대신 매일매일 쓰레기 냄새나 맡고 사는 신세다. 내가 하는 환경감시단은 버려진 쓰레기를 뒤져 제대로 분리수거를 했는지 감시, 관리하고 불법투기 신고에 대응하는 일을 한다. 그래도 명색이 관공서 관리직이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관에서 나와하는 일이라 시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매번 싸우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들이 많다.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종량제 봉투를 뒤지기도 하고 인적사항을 찾는 일도 한다. 쓰레기를 모조리 펼쳐서 영수증이나 찢긴 우편물 같은 단서를 찾아낸다. 요즘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그대로 봉투에 담아서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 없는 사람들은 봉투에 자신의 주문 정보가 있는 영수증까지 매단 채 바깥에 당당히 내다 놓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사진 채증을 하고 연락처로 연락을 해서 사실 확인증을 끊어주는 절차를 밟는다.

○○○는 2021년 8월 12일 17시에 서대문로 21번 길 비룡 공원 앞에 첨부된 사진의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사실을 인정하고 확인합니다.

사실 확인서는 위법사항을 고지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데 동의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시비가 붙어 고함을 치거나 종이를 찢거나 자신의 잘못을 덮고, 외려 더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도대체가 썩을 인간들이 무조건 인정이란 걸 하지 않는다. 증거가 눈앞에 딱 있는데도 자기가 버린 게 아니라고 박박 우기거나, 괜한 공무원 탓을 하면서 억울해한다. 민원인을 만나는 건 역시 피곤한 일이다.


퇴근하고 오는 길에 로또 1등 명당 집에서 로또를 만 원어치 샀다. 나는 항상 찍는 행운의 번호가 하나 있다. 이 번호는 지난 추석 때부터 꽂혀서 매번 채킹 하는 번호이다.

6-7-9-18-24-30

사실, 이 번호가 얼마 전에 내게 한 번의 적잖은 행운을 가져다줬었다.

지난 추석 때 시골 엄니 집에서 명절 음식을 얼마나 먹어댔던지, 변기가 넘치기 직전까지 똥을 푸지게 한 대접 쌌었다. 고향만 가면 입맛이 왜 그렇게 돌고, 게다가 똥도 잘 나오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날 꿈속에서 바지에 푸르뎅뎅한 물똥을 질질 지리는 꿈을 꾸었더랬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복숭아 뼈 있는 데까지 똥물이 줄줄 흐르는 꿈을 꾸었던 날, 꿈속에서도

‘로또 꿈이다. 에이 씨발, 행운의 번호는 언제 나오는 거야!’

라고 중얼거렸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숫자가 바로 딱 이 여섯 개 숫자였다. 사실 마지막은 30이었는지, 33이었는지, 13이었는지, 그냥 3이었는지 도통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냥 3자가 크게 보였을 뿐이다. 마치 굵은 똥을 그려 놓은 듯 그렇게.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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