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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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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07. 2021

믿어지지 않겠지만 2.

한.. 세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를 지켜보다 지루해져서 터미널을 한 바퀴를 돌았다. 빵빵하게 채운 배낭을 멘 노년의 아내와 중절모를 쓰고 느긋하게 뒤따라 가는 노년의 남편. 알록달록 별사탕이 가득한 우산 모양 과자통을 쥐고 엄마손에 끌려가는 꼬마 도련님. 바닥에 낚시의자 하나 깔고 앉아 커다란 양은 쟁반에 삶은 옥수수와 삶은 고구마를 파는 할머니, 그리고 팔뚝이 절단되어 빈 소매로, 도와달라는 인사말이 적힌 종이를 목에 매고 너풀너풀 다니며 구걸을 하는 장애인 아저씨. 아, 맨날 길을 몰라 헤매는 아저씨와 사납쟁이 아줌마들. 터미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고 나는 그게 재밌다. 가끔 청소 여사님들이 나를 보고 놀래서 퉁명스럽게 삿대질을 할 때면 그놈의 여편네들의 기미 낀 얼굴을 확, 긁어놓고 싶다. 뭐 화장실에서 물을 조금 핥고 조용히 지나갔을 뿐이데도 유난을 떤다. 나는 버스기사 휴게실에 들려 청소 여사님들 흉을 흠씬 야옹야옹거리다가 커피 마시는 기사 아저씨 발 밑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잔다. 믹스커피 향은 정말 나른하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그가 궁금해서 다시 얼른 잰걸음으로 돌아와 그를 봤을 때 그는 폴더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음.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낮은 목소리의 그는 폴더폰을 접어서 다시 손에 쥐고 아까처럼 기도하듯 앉아있다. 입을 꽉 다물고 계속 고개는 앞 유리에 붙은 안내판만 바라본다.

잠시 후 여자가 와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고 여자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팔꿈치를 그에게 내어준다. 남자는 여자의 가느라란 팔뚝을 잡고 더듬더듬 긴 벤치에서 나온다.  늘 남자를 데리러 오는 그 젊은 여자다. 그는  주머니에서 짧게 접힌 시각장애인용 흰색 지팡이 '케인'을 꺼내 쭉 다.








몇 달째 토요일 오전이면 어디선가 탁탁탁 바닥 두드리는 케인 소리와 함께 그가 와서 조용히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과 부딪힐 때마다 계속 낮은 목소리로 죄송하는 말을 하며 그는 더듬더듬 빈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그리고 그는 폴더폰을 꺼내 손가락 감각으로 1번을 꾸욱 누르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기다릴게"


그는 내가 바로 그의 발 밑에 앉아서 자기를 올려다보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 내가 조심성 있게 지나가기도 할 테지만 그는 아직 감각이 없나 보다. 자주 부딪힌다. 그리고 자주 사과를 한다.

처음에는 기다리던 여자가 10분 만에 달려왔다. 남자를 보자마자 그를 부축해 일으키는데 여자는 매번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었다. 내가 그 아가씨 다리 사이를 지나쳐 위로의 스킨십을 해도 여자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그의 어깨를 감싸며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처음 앞을 못 본 채 그가 나타났을 때 나는 너무 놀라 그의 무릎에 올라가 그의 눈을 핥을 뻔했다. 처음에는 선글라스도 없이 왔었다. 천안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를 타고 온 그는 케인을  짚고 더듬더듬 내려와 기사 아저씨의 안내를 받으며 그 빈 벤치에 앉아서 여자를 기다렸다.


"여기서 기다리면 보호자가 온다고 했으니 전 이제 모릅니다. 조심하십시오"


기사 아저씨는 그를 벤치에 앉히며 손을 털고 사라졌다.

내가 그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지켜봤던 터미널 고객이니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의 바로 옆자리로 가서 조용히 앉아서 그의 무릎에 꼬리를 슬쩍 올려놓았다. 그가 흠짓 놀라 몸을 피했으나 이내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더듬거렸다. 나는 야옹하며 작은 소리를 내주니 그가 내 등을 더듬거리며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와 가까워지고 나는 그가 오는 시간이 되면 그의 옆에 가까이 다가가 앉아 같이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는 처음에는 10분 만에. 그러다가 30분 후, 1시간, 이제는 3시간이 넘어서 그를 데리러 다. 올 때마다 그 빛났던 여자도 점점 빛을 잃고 눈물은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의 얘기를 해야겠다. 이 얘기는 그들을 한동안 따라다니던 우윳빛 아지랑이가 해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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