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대각선 맨 끝 벤치 밑에 꼬랑지를 한 바퀴 돌려 다리 사이에 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 침을 발라 빳빳하게 세운 콧수염을 한껏 펼치고 그의 앞에 뽐내며 앉아있지만 그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어깨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곧추 세워 밑에서 올려다본 그는 선글라스와 광대뼈 사이에 다크서클이 꽤 어둡다. 선글라스 안쪽으로 그의 눈빛이 보이는데 어두워서 잘 알 수가 없다.
눈물 없이 울고 있는 것도 같다.
고속터미널 꽃시장 방면, 맨 끝 승강장 벤치에 그가 있다. 그는 까만색 레이벤 선글라스를 끼고 정자세로 앉아있다. 사실 정면을 보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고개를 바로 눈앞 유리창에 붙은 터미널 1층 입점 상가 안내판에 두고 있다.
한 손에는 오래된 폴더폰이 쥐어져 있다. 한 서른 살쯤 됐으려나. 생기를 잃어서 누렇게 바랜 얼굴,목덜미까지 자란 까만 머리카락. 가운데 가르마로 갈라진 머리는 귀 옆까지 앞머리가 자꾸만내려온다.
가끔 그는 머리를 정수리 깨로 쓸어 넘긴다. 계속 표정은 없다. 입술을 움직이거나 코를 씰룩거리지도 않는다. 숨을 쉬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뭔가 긴장하고 있는 듯 그런 상태이다. 수염을 며칠 안 깎은 듯 턱이 거무스름하다.길고 가느다란 손이 생기를 잃은 듯 누렇고, 그의 등은 휘어졌으며, 그의 목덜미의 잎사귀 문신은 낙엽이 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거칠다. 그는 그렇게 우두커니 한참 동안 앉아있다.
내가 그를 이곳 터미널 승강장에서 처음 본건 한 몇 년 전쯤. 여름이었는데 토실토실한 얼굴로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한 손에는 계속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옆에 화구 가방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온몸에 예술가의 혼이 느껴졌다. 액정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손가락 마디마다 진회색 가느다란 문신도 그렇고 귀 옆에 입사귀처럼 생긴 문신도 그렇고 여러모로 범상치가 않다. 하기야, 한창 멋 부릴 나이 같아 보인 긴 하다.
꽤 잘생겼다. 내가 이곳 터미널에 앉아서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저 나이 또래 중에는 제법 스타일이 훌륭한 청년이었다. 근육질 허벅지가 보이는 짧은 스포츠 쇼트 팬츠에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신사 양반이 수놓아져 있는 긴팔티셔츠를 입고 있다. 한 여름에 긴팔티셔츠에 짧은 쇼트 팬츠를 입은 그는 근간에 이곳을 다녀간 멋쟁이들 중에 최고인 거 같았다.
그는 얼마 후에 여자 친구가 찾아와 같이 벌떡 일어나 끌어안고 밖을 빠져나갔었다. 여자 친구도 쓸만했다. 오래되고 낡은 이곳 터미널에 모처럼 그들로 인해 풍기는우윳빛 아지랑이가 가득 찼다.
그런 그가 몇 년 사이에 저렇게 처연하게 야위었다.
나는 이 터미널 터줏대감이다.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원래는 요 앞 길 건너 한신아파트 105동 102호 베란다 창문 밑에 살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거기는 다 좋은데 102호에 사는 꼬마가 자꾸 베란다 창문에 서서 바깥으로 오줌을 싸는 통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언젠가는 내 머리로 녀석의 뜨듯한 오줌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바닥이 질척거리고 지린내가 나서 그곳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비록 나는 길고양이긴 하지만 매일 밥을 챙겨주는 매표소 여직원이 있어서 배 따위는 곯지 않는다. 상가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퇴근해서 아무도 없을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주인 없는 김밥집에서 놔두고 간 오양맛살 같은걸 훔쳐먹기도 하고, 더운기가 식어가는 어묵 국물 솥 옆에서 쪽잠을 자기도 한다.사람들이 자주 오가다 보니 터미널에 고양이 한 마리 산다고 해서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다. 다 제각각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나는 문을 닫는 새벽에 야간 경비가 되어 쥐새끼 같은 놈들을 감시하고 광장의비둘기에게 사바나의 사자가 된 듯 호령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