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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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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03. 2021

믿어지지 않겠지만 1.

나는 그의 대각선 맨 끝 벤치 밑에 꼬랑지를 한 바퀴 돌려 다리 사이에 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 침을 발라 빳빳하게 세운 콧수염을 한껏 펼치고 그의 앞에 뽐내며 앉아있지만 그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어깨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추 세워 밑에서 올려다본 그는 선글라스와 광대뼈 사이에 다크서클이 꽤 어둡다. 선글라스 안쪽으로 그의 눈빛이 보이는데 어두워서 잘 알 수가 없다.

눈물 없이 울고 있는 것도 같다.


고속터미널 꽃시장 방면, 맨 끝 승강장 벤치에 그가 있다. 그는 까만색 레이벤 선글라스를  자세로 앉아있다. 사실 정면을 보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고개를 바로 눈앞 유리창에 붙은 터미널 1층 입점 상가 안내판에 두고 있다.

한 손에는 오래된 폴더폰이 쥐어져 있다. 한 서른 살쯤 됐으려나. 생기를 잃어서 누렇게 바랜 얼굴, 목덜미까지 자란 까만 머리카락. 가운데 가르마로 갈라진 머리는 귀 옆까지 앞머리가 자꾸만 내려온다.

가끔 그는 머리를 정수리 깨로 쓸어 넘긴다. 계속 표정은 없다. 입술을 움직이거나 코를 씰룩거리지도 않는다. 숨을 쉬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뭔가 긴장하고 있는 듯 그런 상태이다. 수염을 며칠 안 깎은 듯 턱이 거무스름하다. 길고 가느다란 손이 생기를 잃은 듯 누렇고, 그의 등은 휘어졌으며, 그의 목덜미의 잎사귀 문신은 낙엽이 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거칠다.  그는 그렇게 우두커니 한참 동안  앉아있다.







내가 그를 이곳 터미널 승강장에서 처음 본건 한 몇 년 전쯤. 여름이었는데 토실토실한 얼굴로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한 손에는 계속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옆에 화구 가방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온몸에 예술가의 혼이 느껴졌다. 액정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손가락 마디마다 진회색 가느다란 문신도 그렇고 귀 옆에 입사귀처럼 생긴 문신도 그렇고 여러모로 범상치가 않다. 하기야, 한창 멋 부릴 나이 같아 보인 긴 하다.

꽤 잘생겼다. 내가 이곳 터미널에 앉아서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저 나이 또래 중에는 제법 스타일이 훌륭한 청년이었다. 근육질 허벅지가 보이는 짧은 스포츠 쇼트 팬츠에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신사 양반이 수놓아져 있는 긴팔티셔츠를 입고 있다. 한 여름에 긴팔티셔츠에 짧은 쇼트 팬츠를 입은 그는 근간에 이곳을 다녀간 멋쟁이들 중에 최고인 거 같았다.

그는 얼마 후에 여자 친구가 찾아와 같이 벌떡 일어나 끌어안고 밖을 빠져나갔었다. 여자 친구도 쓸만했다. 오래되고 낡은 이곳 터미널에 모처럼 그들로 인해 풍기는 우윳빛 아지랑이가 가득 찼다.


그런 그가 몇 년 사이에 저렇게 처연하게 야위었다.






나는 이 터미널 터줏대감이다.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원래는 요 앞 길 건너 한신아파트 105동 102호 베란다 창문 밑에 살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거기는 다 좋은데 102호에 사는 꼬마가 자꾸 베란다 창문에 서서 바깥으로 오줌을 싸는 통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언젠가는 내 머리로 녀석의 뜨듯한 오줌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바닥이 질척거리고 지린내가 나서 그곳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비록 나는 길고양이긴 하지만 매일 밥을 챙겨주는 매표소 여직원이 있어서 배 따위는 곯지 않는다. 상가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퇴근해서 아무도 없을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주인 없는 김밥집에서 놔두고 간 오양맛살 같은걸 훔쳐먹기도 하고, 더운기가 식어가는 어묵 국물 솥 옆에서 쪽잠을 자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다 보니 터미널에 고양이 한 마리 산다고 해서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다. 다 제각각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나는 문을 닫는 새벽에 야간 경비가 되어 쥐새끼 같은 놈들을 감시하고 광장의 비둘기에게 사바나의 사자가 된 듯 호령을 한다.

이아야옹~

나는 이곳 터미널이 참 좋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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