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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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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17. 2021

믿어지지 않겠지만 6.

미야오


그가 앉아있던 승강장 벤치 바로 옆에 나는 미야오, 하고 앉아 있었다. 뒷다리를 쭉 펴고 누워 눈과 코와 볼때기와 콧수염까지  살뜰히 침을 발라 맛나게 닦고 있었다.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나른해지려는데 그가 그의 코딱지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가 가끔 주는 간식이다. 그의 코딱지를 살살 녹여먹고 있는데 여자가 소리 없이 나타나 남자의 어깨를 두세 번 두드렸다. 남자가 서둘러 일어나 의자에 무릎을 ,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혔다. 내가 야옹야옹 그를 불렀으나 그는 나를 뒤로 하고 케인을 탁탁 두드리며 더듬더듬 여자의 손에 이끌려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여자는 오늘따라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약간 서두르는 것도 같다. 오늘은 내가 저들을 좀 따라가 봐야겠다. 총총총






둘은 터미널 지하상가로 내려가 반대편 뉴코아 방면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신아파트 옆에 허름한 경신 빌라로 들어갔다. 내 꼬리를 하늘에서 누군가 한껏 잡아당기듯 높이 높이 치켜세우고 나는 어슬렁거렸다. 마침 102호 집 베란다 창문 사이로 그들이 보였다. 여자 집이다. 나는 여자의 집, 살짝 열린 베란다 창문 사이로 사뿐히 올라가 베고니아 화분 사이에 몸을 숨긴다. 커튼 사이로 그들이 보인다.  


남자는 두 손을 휘이휘이 뻗으며 겨우 거실 소파에 엉덩이를 조심스레 갖다 대더니 그때서야 풀썩 주저앉아 등받이에 등을 댔다. 몇 시간을 경직된 채 긴장하며 앉아 있어서 그런지 그는 푹신한 패브릭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여자도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어머니한테 수염이라도 깎아달라고 좀 하지 그랬어."


말없이 지켜보던 여자는 턱에 자란 그의 수염을 한 올 한 올 세기라도 하듯이 엄지손가락으로 튕기다가 한참을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웬일인지 긁히고 까진 상처가 많다. 여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오래되고 낡은 빗자루처럼 구부러져 소파에 기대앉은 그는 이미 영혼의 반쯤은 오다가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다. 여자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그가 좋아하는 피자 한쪽을 접시에 담으며 말한다.


"나 결혼해."


갑자기 새로 분양받아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빈 아파트처럼 집안이 적막해졌다. 지잉~거리는 형광등 소리도,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도, 째깍째깍 벽시계 소리도, 타다닥 탁 이웃집 층간 소음도, 쫄쫄쫄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도, 희희낙락 놀이터 아이들 소리도 다 사라지고 백색 고요가 그들의 거리를 꽉 매웠다. 고작 두세 걸음의 거리였으나 거실과 주방은 정적으로 달과 우주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백색 고요를 깬 건 그였다.


"씨발, 그래. 잘됐다. 내가 그 남자 만나서 너 성질머리 하나하나 말해줘야 하는데. 씨발!"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여자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회한에 찬 표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냈던 그들의 깊은 밤. 불 꺼진 방은 앞이  안 보여도 그는 여자를  다 알아챘다. 만지는 손길 하나하나가 여자의 쇠골 어디쯤이고 어깨의 주사자국이고 몇 번째 가슴뼈인지 기억하는 듯했다.  옆으로 돌아누운 여자의 치골과 둔부를 더듬거린다. 보이지 않아도 다 볼 수 있다. 남자는 돌아누운 여자의 뒷목덜미에 코를 박고 낮고 뜨겁게 숨을 몰아 쉰다. 돌아누운 여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자의 뜨거운 눈물이 콧등을 타고 귓불로 흘러내린다. 그가 쥐고 있는 여자의 가슴은 아이의 엉덩이처럼 사랑스럽게 부풀었다.






몇 달 후 여자는 몹시도 추운 겨울에 결혼을 하고 소도시, 뜰이 있는 작은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뜰에는 메리골드와 자운영을 심고, 널찍하고 판판한 디딤돌을 구해와 여자의 남편은 대문과 집안을 이어놓았다.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신발에 흙탕물이 묻지 않고 따뜻한 집으로 들어올 있어졌다. 여자는 예쁜 여자 쌍둥이를 낳아 매일매일 촘촘히 아이들의 머리를 땋아주며 포근포근 늙어갔다.


결혼 후, '남자는 병세가 깊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었지만, 믿지 않았고, 못 들은 척했다. 더 열심히 꽃을 가꾸고 딸아이들을 가꾸고, 집안을 가꿨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시골장에서 따뜻한 두부를 사서 청국장을 끓여가며 깔깔거리고 살아갔다.


그런데 며칠 전,

뒤뜰에 심어놓은 방울토마토를 몇 개 따고 있는데 뒷산 오솔길 사이로 낯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올오오오오오올






나는 이제부터 고양이들만 아는 비밀 하나를 털어놓으려 한다.

인간들은 <고양이 괴담>이라며 우리 고양이를 영악하고 뒤끝 있는 동물로 여기는 어이없는 소문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우리는 사려 깊고 무엇보다 유난스럽지 않고 인간들 사이에서 조용히 사는 '고양이'일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나 역시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 있다.

내가 이 터미널에서 여러 오고 가는 고양이들에게 들은 얘기이다.

우리  평범한 '고양이' 사이에는 <기묘한 고양이>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냥 코딱지나 받아먹는 고양이가 아니라, 무늬만 고양이, 그러니까 모습은 고양이이지만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간 고양잇 인간이 고양이 시늉을 하며 우리들 사이에 섞여있다.

인간들은 죽으면 한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자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이때는 영혼도 죽었던 모습 그대로 고통스럽게 떠돌아다니게 된다. 늙어 죽은 사람은 늙은 채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피칠갑을 한 채로, 수술하다 죽은  사람은 배가 갈라진 채로. 그렇게 떠돌다가 점점 잊히면 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온전한 평온을 찾는다.

그런데 죽은 자중에는 몇 해가 지나고도 잊히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다. 너무나 사랑하거나, 너무나 억울해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 이렇게 자연스럽게 잊히지 못하는 영혼들은 더 이상 고통 속에 떠돌아다닐 수 없어서 허약한 고양이 몸으로 들어가 잊지 못하는 인간들 옆에 스며들어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고양이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고양이와 울음소리부터 다르다. 우리는 목젖을 때리며 '미 야모' 하는데, 그 <기묘한 고양이>는  폐에서부터 끓어오르며 '아올오오오오올' 하는 괴상한 낮고 깊고 서글픈 울음소리를 낸다. 그들은 잊지 못하는 인간들 사이에 끊임없이 끼어들어 구슬프게 소리를 내며 인간의 삶 속을 파고든다.

이 근처 중국집 길용각 사장님도 몇 해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사모님이 남편을 잊지 못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낯선 고양이가 길용각 앞에서 밤낮으로 아올오오오올 울어서 결국 <기묘한 고양이>를  품어주었다.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이다.


그 여자의 잘 가꿔진 뜰에는 어느 날부터 아올오오오올 울어대며 장님 고양이가 찾아왔고, 여자는 부드러운 쿠션을 현관 앞 널찍한 디딤돌 위에 놓아주었다고 그 근처 사는 어느 지인이 내게 전해주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들의 정은 알 수가 없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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