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시가 더 쉬운 길인가요?” -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요즘 학교 현장에서 ‘자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꺼내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생들의 고민은 한결같이 깊고 진지합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단체생활을 경험한 시간이 짧아진 세대일수록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은 출석을 채우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들은 내신 등급의 벽에 막혀 검정고시를 선택하려 합니다.
“선생님, 검정고시 문제를 풀어봤는데 성적이 잘 나오더라고요. 지금 내신보다 훨씬 높은 점수로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받으며 꼭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네, 학교는 다닐 필요가 있습니다.”
검정고시에는 보이지 않는 제약이 있습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 주어지지만, 수시 전형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에게만 지원 자격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그 대학의 수시 전형에는 아예 지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저는 정시로 대학 갈 거예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다음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주요 대학들은 정시 전형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를 요구합니다.(검정고시 출신자들이 이 학교에 지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선발하는 퍼센트가 낮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몇몇 상위권 대학의 정책이 아니라,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대학이 입시에서 생활기록부와 학교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검정고시는 대입의 지름길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길 끝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학교는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곳입니다
공부만이 학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학교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간입니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때로는 갈등하며, 그 속에서 자기를 다듬어가게 됩니다.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우리는 사회라는 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원하지 않는 충돌을 겪는 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공부하고, 혼자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외부와의 마찰에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학교는 그런 마찰을 미리 경험해 보고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자신을 지켜내며 성장할 수 있을지를 연습하는 장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잘 사는 사람을 원합니다
주요 대학들이 수시든 정시든 학교생활기록부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성적만으로 학생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우수한 성적도 중요하지만,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살아가는 능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단지 입시 전략이 아니라, 사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철학적 판단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학교는 필요합니다. 쉬운 길 같아 보이는 검정고시를 택했지만, 그 길 끝에는 다른 중요한 경험들이 사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천천히, 단단하게 나아가는 길을 택하세요
삶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너무 급하게 내린 선택은 오히려 더 많은 갈등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자퇴나 검정고시가 여러분을 위한 길일 수도 있지만, 그 선택의 무게를 충분히 고민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부딪히고 깨지며, 조금씩 자신을 세공해 나가는 시간은 결국 자신만의 길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밑거름이 됩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먼저 연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