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토스카> 공연이 있었습니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공연 중 관객의 앵콜 요청에 항의를 했고 이 해프닝은 기사화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는데 한국어로 공연하는 뮤지컬이 아닌 외국어로 공연하는 오페라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적힌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뮤지컬은 외국 작품이어도 한국어도 바꿔서 공연을 하는데 왜 오페라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공연을 하는데도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걸까요?
뮤지컬도 내한 공연 때는 원어 그대로 공연하는 것처럼 오페라도 자국어로 번역해서 공연하기도 합니다.
런던 콜리시엄 극장에서 공연하는 영국 내셔널 오페라(English National Opera)의 경우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로 된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노래합니다.
오페라는 주로 이탈리아어로 작곡됩니다. 우리가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듯이 오페라가 처음 만들어지고 활발하게 공연되었던 바로크 시대의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크 시대(1600-1750년경)는 이탈리아가 문화적, 예술적 중심지로 주목받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는 문화적 활동이나 외교, 예술적 대화에서 중요한 언어 중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때문에 예술을 좋아하는 귀족이라면 이탈리아어를 제2외국어로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페라는 귀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공연입니다. 당시 귀족들은 이탈리아어를 기본적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국어로 번역을 해서 공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이탈리아 다음으로 음악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가 프랑스, 독일입니다. 그래서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제작된 게 제일 많았고 후에 프랑스, 독일어로 제작된 오페라도 등장합니다.
저희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유럽인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우는 게 우리가 일본어, 중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합니다.
뮤지컬은 20세기에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해서 만들어진 공연입니다. 귀족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자국어로 번역해서 공연합니다.
학창 시절 그렇게 영어를 오랫동안 배워왔음에도 영어 듣기·말하기가 힘든 것처럼 대중들은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합니다.
내가 제작하는 공연의 주 타깃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세부 공연 내용이 달라집니다.
요즘은 광고를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광고 내용을 달리하는 타깃광고를 많이 합니다. 20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팝, 힙합 같은 트렌디한 음악을 자주 사용합니다. 반면 40~50대를 타깃으로 한 광고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클래식과 재즈를 사용합니다.
오페라가 자국어로 번역을 하지 않고 외국어를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언어의 특성을 살린 멜로디 때문입니다. 푸치니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네순 도르마∼’가 아니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나 ‘자면 안 돼∼’라고 번역해서 부르면 '네슨 도르마~'가 주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 영어로 된 뮤지컬 노래를 한국어로 바꿔 부르려고 하는데 영어 가사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한국어 가사를 찾지 못해서 애를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김이나 작사가가 <손석희의 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가수 조용필 씨와 함께했던 음악작업 이야기를 하는데 작사를 할 때는 내용만큼 중요한 게 발음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어는 받침이 있기 때문에 예쁘게 노래 부르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일본어는 받침이 거의 없어서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기 편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디즈니 ost는 한국어로 번역된 것보다는 영어로 부르는 게 더 느낌 있어서 좋습니다. :)
요즘은 확실히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의 인기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성악가 분들이 뮤지컬로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은 오페라와 달리 성악가, 가수,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노래와 연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날 그 역할에 어떤 사람이 캐스팅 됐는지에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배우분들이 공연하는 뮤지컬 공연을 좋아합니다. 섬세한 감정 표현 같은 게 가수나 성악가 분들과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전통을 고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은 현대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더 화려하고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오페라도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슬슬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