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이 월급쟁이의 삶에서 벗어나게 된 때가 언제였을까요?
고전시대만 하더라고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지위는 궁정음악가였습니다. 궁정음악가란 왕이나 귀족의 후원을 받아 궁정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작곡한 음악가들을 말합니다.
하이든이 그랬듯이 모차르트도 궁정음악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높은 월급을 주는 후원자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를 꼽으라고 하면 베토벤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음악시간에 베토벤을 고전시대 음악가로 배우지만 베토벤의 작곡 스타일이나 그가 한 많은 마케팅 등을 보면 고전시대 음악가보다는 낭만시대 음악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베토벤을 고전시대 음악가가 아닌 19세기 음악가로 배운다고 합니다.
19세기 낭만시대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를 축적한 서민들이 돈 많은 귀족들이 하던 취미를 하나씩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연 관람이었는데 지금의 콘서트처럼 공연기획자들은 대중들에게 티켓을 팔고, 티켓을 팔아 얻은 수익금 중 일부로 출연료를 충당했습니다.
공연 기획자들이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후원을 해준 주인님 한 사람만 만족시키면 됐는데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음악회가 성행한 후로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몇 년 전에 친구가 아이유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예매를 도와한 적이 있었습니다. 티켓 오픈 30분 전부터 풀 세팅을 하고 대기했는데 클릭 버튼이 활성화된 지 1분도 안 됐는데 매진이더군요….
공연기획자 입장에서는 이런 공연을 만들어야 이익이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낭만시대는 스타 음악가들이 인기를 끌게 된 거죠 :)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한 음악회는 화려해야 합니다. 싸이 흠뻑쇼를 생각하시면 되는데 볼거리가 많은 공연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낭만시대 이전만 하더라고 작곡가들은 시간과 돈이 많은 귀족들을 위해 곡을 만들었기 때문에 현란란 기교를 자랑하는 곡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곡을 썼다가는 주인님께서 연주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무한 수정의 굴레에 빠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곡은 살롱이나 소극장 같이 규모가 작은 공연에는 어울리나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공연장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장소는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처럼 딱 듣자마자 '와 대박 어렵겠다'하는 곡들이 인기를 끕니다.
참고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오는 곡인데 천서진이 비 오는 날 친아버지의 죽음을 방임하고 광기에 사로잡혀 연주하던 피아노 곡입니다.
낭만시대는 그야말로 비루투오소의 전성기 시대입니다. 비루투오소란 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연주가들을 말하는데 비루투오소가 인기를 끌게 되자 작곡가들은 그들을 위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들이 마구 만들게 됩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겠어'라는 심정으로 연주하기에 너무 어려운 곡을 작곡해서 초연자를 찾는데 애를 먹은 작곡가도 있습니다.
TMI(Too Much Information)지만 작곡가들이 악기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고 곡을 작곡하면 연주 난이도가 너무 낮거나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는 '뭐가 어렵겠여…'라고 생각하지만 연주자들 입장에서는 손이 떨어질 것 같이 힘든 곡이 있습니다. 슈베르트 가곡 <마왕>은 피아노 반주자들이 매우 싫어하는 곡 중 하나인데 음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음 듣기 좋군…', '그래봤자 반주인데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피아노 연주자 입장에서는 셋잇단음표 화음을 계속 연주하고 있노라면 손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점점 손이 무거워져 자꾸만 틀린 연주를 하게 되는 리스크가 큰 곡입니다. 슈베르트가 유명해서 그렇지 저 같은 무명 작곡가가 이런 곡을 작곡해서 연주해 달라고 하면 바로 수정 요청이 들어옵니다. 효과는 없는데 연주는 힘든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
대표적인 비르투오소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극강의 연주 실력을 자랑하게 되었다는 소문의 주인공인 니콜로 파가니니,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고 싶었던 프란츠 리스트 등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챕터를 할애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많은 인기를 자랑한 두 사람인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클래식이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클래식은 옛날의 대중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너희가 즐겨 듣는 BTS, 에스파 노래도 나중에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배우게 될 수도 있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합니다.
비르투오소의 인기가 어느졍도였냐고 물으신다면 오늘날 유명 아이돌들의 인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비르투오소의 등장으로 아마추어와 전문가 간의 실력차이가 극명하게 갈리게 되었지만 덕분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좋은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연주자 입장에서는 높은 수준의 기교를 연주하기 위해 독방에 틀어박혀 열심히 연습해야 되는 시간이 늘어났지만요 :)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각자 잘하는 분야의 일을 해야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예전에 행사에 사용할 간식을 준비하는데 포장비를 아껴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간식을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몇 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단체 포장을 했습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이번에는 외주를 맡겼는데 "돈이 최고"라고 외주가 퀄리티는 좋더군요. "전문가는 달라"라고 생각한 하루였습니다.
비루투오소 덕분에 오늘날 귀가 호강하는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 주시는 전문가분들 덕분에 오늘도 윤택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