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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Oct 05. 2024

표절이 존경의 의미였다고?: 저작권의 역사

  작곡가들이 곡만 쓰면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저작권 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의 고통을 견디고 견뎌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을 낳았는데 그 작품이 인기를 끌자마자 유사한 작품이 여기저기서 공연되면 창작자들은 아마 대부분 절필을 할 것입니다.


  빙그레 '메로나'와 서주 '메론바' 간의 디자인 표절 소송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멜론 본연의 색인 연두색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빙그레가 패소를 했습니다. 음악 관련 표절 시비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 독창성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지는 사안입니다.


  역할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role'은 라틴어 'rotulus'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둥글게 말린 문서"를 뜻합니다.

 예전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창작자들의 권리가 보호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전 유출의 등의 위험으로 공연 직전에 배우에게 맡은 대사와 지시 사항이 적힌 두루마리 종이를 건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게 기원이 돼서 지금은 역할이라는 단어를 'role'이라고 쓰게 됐습니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이라는 곡은 베르디가 특히 아끼던 곡으로 혹시나 노래가 사전에 유출될까봐 공연 하루 전까지 오페라 가수에게 "아무 곳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 장면

  



  르네상스만 하더라도 표절은 존경의 의미였습니다. 누군가 내 곡을 표절했다는 것은 이런 좋은 곡을 만든 내 능력을 높이 산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작곡가들도 어디서 가져온 곡인지 출처만 남겨주면 딱히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히트곡은 샹송 <무장한 남자(L'homme armé)>입니다. 가사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무장한 병사를 두려워하라/ 어디든 그들이 나타날 때에는/ 각자 무장을 하고 있으며/ 체인 메일을 입고 있다/ 무장한 병사를 두려워하라"입니다. 매우 세속적인 가사 내용이죠. 르네상스 시대 이 곡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 음악 곳곳에서 이 곡의 선율이 사용됩니다. 기욤 뒤파이의 미사 <무장한 남자>,  팔레스트리나의 미사 <무장한 남자> 등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곡의 선율이 여러 음악 장르에서 등장합니다.

<무장한 남자> 악보




  1800년대 프랑스 카페 사장은 손님을 모으기 위해 가게에 음악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카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곡의 작곡가가 그 카페를 방문했는데 자신의 곡으로 인해 카페에 많은 손님이 오는데 카페 주인은 자신한테 이 곡을 틀어도 되냐고 물어본 적도 없고, 돈을 주지도 않은 게 괘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밥값을 내지 않고 카페에서 나가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카페 주인과 작곡가는 파리 법원에서 재판을 했고 법원은 작곡가의 손을 들어줍니다.


  낭만시대 전까지 작곡가들은 누군가에게 종속된 직장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자신이 만든 곡이라도 이 곡에 대한 권리가 작곡가 본인이 아닌 후원자의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직장인은 직장에 있는 동안 뭔가를 발명해도 그 특허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회사의 것으로 인정받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던 바로크 시대 음악가 장 바티스트 륄리는 17세기에 악보 출판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받습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음악가들이 악보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악보를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지 지금과 같이 음악을 만든 사람이 가지는 저작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법은 1710년 '앤 여왕법'에 의해서입니다. 창작자가 악보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낸 것 자체에 대한 권리를 보호받는 법이 이떄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1831년 역사상 최초로 음악을 저작권으로 보호하고, 1833년 공연권을 인정받습니다. 공연권이란 내 곡을 공연할 수 있는 권리로 앞에 등장한 '프랑스 카페 사건'이 공연권과 관련된 일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886년에는 드디어 오늘날 전 세계 저작권법의 토대가 되는 베른협약이 체결됩니다.




  현재 저작권은 창작자 사후 70년까지 보호를 받습니다. 장범준의 "벚꽃 연금"이라고 벚꽃이 휘날리는 계절만 되면 여기저기서 <벚꽃 엔딩>이 연주됩니다. 장범준이 죽고 70년까지 그 권리가 보호된다고 하니 꽤 쏠쏠한 저작권료를 챙길 수 있겠네요 :)


  갈수록 저작권법이 강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몇백원, 몇천원 아끼려다가 수십배의 손해배상금을 물 수 있습니다.  

 작곡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곡인줄 모르고 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참신한 멜로디를 찾아 어슬렁거리다 "유레카"하고 환호성을 질렀는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내장되어 있던…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라는 것을 깨달은 날은 '또 참신한 멜로디를 찾아 어슬렁거려야 된다'는 창작의 고통에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울부짖게 됩니다. 그래도 저작권법 덕분에 작곡해서 먹고살 수 있는 거겠지요 :)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길을 걸으면 뮤직비디오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오늘도 달달한 음악 들으시면서 달달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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