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교향곡 8번을 아시나요? 이곡은 초연 당시 1000명이 넘는 연주자가 동원되었다고 해서 '천인교향곡'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곡입니다.
말러는 대규모 작품을 자주 작곡하는 작곡가로 유명한데 보통은 이렇게 대규모의 연주자들이 필요한 곡을 잘 작곡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래도 근·현대에 올수록 대중을 상대로 한 공공 음악회가 성행하면서 규모가 큰 곡들이 많이 작곡된 것 같습니다. 많은 관객들에게 표를 비싸게 팔면 연주비를 어찌저찌 충당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 명에게 후원을 받아도 되고요. :)
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는 오케스트라를 약 70명에서 100명 정도의 연주자로 구성되는 편입니다. 이것도 예전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커진 편에 속합니다.
옛날에는 돈 많은 귀족 가문들이 악단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파티를 개최한다고 하면 음향 설비를 빵빵하게 해서 음원 파일을 틀면 되지만 예전에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파티에서 음악을 연주해 줄 연주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돈 좀 있는 귀족들은 악단을 하나씩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가문으로는 에스테르 하치 가문(Hach, Hach Family)이 있습니다.
물, 식료품 같은 필수재는 남들도 가지고 있고 가격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런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품, 고급 승용차와 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치재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런 곳에 많은 돈을 쓸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가문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대외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에 관심이 많고, 돈 많은 가문일수록소속 악단의 연주자 수가 많았습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귀족들은 많은 부를 축적했고 이로 인해 가문 소속의 음악가들의 수가 점점 증가했습니다.
바로크 시대만 하더라도 보통 10~30명 정도의 연주자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비발디 '사계'와 같은 소규모 현악기 위주의 공연을 주로 했습니다.
고전시대로 가면 그 규모가 커져 약 30~60명 정도의 연주자들을 데리고 있었고 이때 비로소 우리가 생각하는 오케스트라 모습이 갖춰지게 됩니다.
바로크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음악회를 한다고 하면 자리에 앉아서 차분히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연회장에 나오는 BGM 정도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고전시대로 가면 이제 드디어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현대적인 콘서트 형태로 바뀌기는 했으나 음악회에 온 귀족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교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듣다가 졸기 일수였습니다. 그래서 하이든은 음악을 듣다가 잠을 자는 귀족들을 깨우기 위해 '놀람 교향곡((Symphony No. 94 in G major)'을 작곡합니다.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고 기계의 발달로 인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낭만시대를 맞이합니다.
낭만시대는 오케스트라 규모가 더 커져 60명~100명으로 오늘날과 같은 규모로 커지게 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금관악기가 발달하고 하프가 오케스트라 악기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나라별 악기의 발달사를 보면 그 나라의 경제 수준 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악기는 경제˙문화의 발달 수준에 따라 타악기→관악기→현악기 순으로 발전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과학기술이 발달한 국가는 금관악기가 발달하고 피아노의 페달과 같은 장치가 달린 악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전통악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나라의 국력이 어느정도였을지가 짐작이 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 고구려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음악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가 고루 발달해 있었고 중국에 음악 문화를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백제도 음악 문화를 일본에 전파했습니다. 반면 통일 전 신라는 가야금 반주에 춤과 노래를 했습니다.과장하자면 가야금 하나로 모든 음악을 연주했습니다.(타악기와 관악기가 발달하지 못했고 가야금도 가야의 악사 우륵이신라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후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고구려, 백제의 음악을 흡수하면서 음악 문화가 발달하게 됩니다.
역사와 연관시켜 음악사를 살펴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식이 늘어난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살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오케스트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아무리 돈 많은 가문의 귀족이어도 많은 수의 음악가들을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음악가를 데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사용될 음악을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처럼 내 소속의 음악가들을 데려다가 음악회 공연을 시키고 관객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낭만시대에 가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음악회가 성행을 하고 비르투오소 같은 스타 연주자들이 등장하면서 후원에 의존하던 오케스트라는 독립을 하게 됩니다. 다수의 관객들에게 조금씩 돈을 더 올려 받으면 되기 때문에 연주자와 작곡가 등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꿈꿔왔던 이상을 공연을 통해 마구 발산할 수 있게 된 거죠. 음향기술의 발달로 귀족들도 더 이상 큰돈을들여가며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경제·과학의 발달 덕분에 우리는 소수의 특권층만 누리던 고퀄리티의 음악을 비교적 적은 돈을 주고 즐기게 된 거네요….
어떤 분께서 "사람들은 부자들만 잘 사는 거지 같은 세상"이라고 욕하지만 옛날과 비교하면 여러 기업가들 덕분에 우리도 소수의 부자들만 누리던 것을 똑같이 누리게 됐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부자도 핸드폰을 쓰고, 우리도 핸드폰을 씁니다. 다만 부자는 좀 더 비싼 핸드폰을 쓸 뿐이죠…"라고 덧붙였습니다.
비싼 외제차를 타고 운전을 하면 사고 처리비용이 많이 나올까 봐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줍니다. 반면 값이 싼 국산차를 타고 다니면 이 차, 저 차 막 끼어듭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도심 주행 중에 저 비싼 차들 낼 수 있는 사향의 절반이라도 내는지는 의문입니다. 차는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다주면 되는데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에 따라 급을 나눕니다. 그래서 카푸어들이 나오는 거겠죠….
현대 작곡가들은 무작정 오케스트라 규모를 늘리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악기를 추가하는 쪽으로 작곡을 합니다.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소비를 늘림으로써 남에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키워나가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