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계속 떠들고 있을 때면 저는 "얘들아! 선생님이 현대음악을 하나를 연주해 줄게"라고 말하고 약 3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서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눈알 굴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딱 그때 "이게 바로 현대음악이야"라고 합니다.
존 케이즈의 <4분 33초>라는 곡은 4분 33초 동안 연주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피아노 의자에 앉아만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을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면 "이런 게 음악이고 작곡이면 저도 작곡가가 될 수 있겠네요"라는 말을 합니다.
존 케이즈의 <4분 33초>와 같은 곡을 우연성 음악이라고 합니다. 우연성 음악이란 우연에 기반해 작곡을 한 것으로 연주자도 작곡가도 최종 결과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1만원을 주고 음악회 공연을 보러 갔는데 우연성 음악 특집이라고 해서 <4분 33초>를 오케스트라버전, 피아노버전, 바이올린 버전 등으로 연주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학생은 "이건 사기죠"라고 답하고 어떤 학생은 "참신하네요"라고 답합니다.
존 케이지 <4분 33초> 악보
넷플릭스의 <흑백 요리사>를 보면서 요리사 역시 예술가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맛도 중요하지만 요리에 담긴 스토리를 중요하게 심사하더군요. 아무리 맛이 있어도 요리사가 그 요리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먹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요리법과 재료를 사용해서 요리사 개인의 인생 스토리가 잘 담긴 요리를 얼마나 창의적이고 맛있게 만들었냐가 심사 기준같았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미술가를 한 명 꼽으라고 하면 뱅크시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의 현대미술 판매전에 뱅크시의 회화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이 출품됐습니다. 그림가격은 당초 20만∼30만 파운드(2억 7000만∼4억 4000만원)로 추정됐는데, 수수료를 포함해 104만 2000파운드(15억 4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행자가 낙찰을 알리는 의미의 봉을 몇 차례 내려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경고음 비슷한 것이 울리더니 뱅크시의 그림이 액자 밑을 통과하면서 가늘고 긴 조각들로 찢어졌습니다. 참석자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재빨리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고, 경매사 직원들은 반쯤 분쇄된 뱅크시의 작품을 벽에서 떼어내 어디론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뱅크시는 사건 하루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액자에 분쇄기를 설치하는 모습과 낙찰 직후 그림이 잘려나가는 영상을 올리며 사건이 본인의 소행임을 인정했습니다.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뱅크시를 유명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 사건 중 하나가 됩니다.
뱅크시 <풍선과 소녀> 그림이 잘리고 있는 모습
미술계도 마찬가지지만 현대 음악 역시 듣기 좋은 음악보다는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존 케이지에 <4분 33초>와 같이 감상을 하기에 좋은 음악은 아니나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음악들이 현대 음악에서는 각광을 받습니다.슈톡하우젠의 <소년의 노래>는 소년의 목소리와 전자적으로 생성된 소리가 결합되어 있는 곡인데 역시 듣기 좋은 곡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음악이 될 수 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구체음악이란 실제 환경에서 녹음된 소리나 자연음을 활용하여 만든 음악으로 쉽게 설명하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소리들을 사용해서 만든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음악 수업 시간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들을 자유롭게녹음한 후에, 여러 어플과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사용해서 음원을 자르고, 붙이고, 진동수를 변경하는 등의 조작을 한 후 완성된 음악으로 만들어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내줍니다. 그러면 평소 수업 시간에 까불까불하고 이상한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들이 확실히 참신하고 재미있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시대에 따라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목소리 스타일이 바뀌기 때문에 성우분들도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말하는 방식을 여러 버전으로 바꿔서 녹음을 한다고 합니다.
충주맨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도 저 같은 보통의 공무원은 상상할 수 없는, 상상은 했지만 말했다가는 상사에게 혼날 것 같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런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하고 그걸 영상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계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참신함이 중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유명한 웹툰 작가가 되는 게 꿈인 한 학생과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웹툰은 그림체 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특이하고 참신하면서 재미있으면 그림체가 이상해도 먹히는 시대가 요즘이라고 합니다.
참신한 만큼 평범한 것보다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겠지만 평범해서 묻히는 것보다는 참신함으로 승부수를 던져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던지다 보면 언젠가 하나쯤은 대박을 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