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드 패밀리

혈압을 재면 혈압이 오른다

by 로로

둘째 임신중기부터 나의 고질병이 다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응급실에 실려가시는 일이 종종 발생했는데 그렇게 새벽이던 저녁이던 응급실로 가셔서 입원하시게 되는 과정 속에서 많이 놀랐었나 보다.

그때는 아빠생각만 하느라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뒤로 어느 순간부터 간단한 건강검진만 하러 병원에 가서 혈압을 재면 혈압이 높게 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겐 트라우마가 된 듯했다.

다른 검사들이야 내가 긴장한 게 잡히지 않으니 상관없었지만 혈압만 재면 티가 나게 되니 매번 걸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상황을 설명하면 의사 선생님들은 진맥을 해보거나 집에서 관리하시라고 하곤 넘어갔다.


하지만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더욱 혈압체크에 대한 압박이 왔고 그때마다 온갖 평안한 생각을 하며 지나가곤 했지만 둘째 임신 중기가 넘어가며 지켜보시던 선생님께선 이번엔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집에서도 매일 하루 세 번씩 혈압체크를 하며 잘 지내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한마디에 쓰나미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고 있었다. 곧바로 산부인과를 통해 내과로 연결해 주셨고 당일 예약된 거라 한 시간 정도 대기 후 내과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냥 병원을 다니는 거에 지쳐버린 상태라 더 이상 어떤 검사도 받고 싶지 않았었다. 젊은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24시간 혈압체크하는 걸 해보자고 했다.


혈압을 재는 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은 상황에서 24시간을 잰다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제가 검사를 하는 게 너무 압박이 돼서 그러는데 그냥 고혈압약을 처방해 주시면 예방차원에서 괜찮지 않을까요 란 질문을 했더니 유쾌하게 웃으시며 큰일 나요 산모님~~ 혈압이 만약에 없으신데 약을 먹으면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어요 라며 얘기해 주었다.


난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재기로 했다. 작은 혈압계를 팔에 달고 말 그대로 24시간을 지내는 건데 혈압은 30분마다 한 번씩 측정된다. 혈압을 측정하는 동안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최대한 편하게 있어야 한다.

그래도 병원에서 재는 게 아니라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재는 것이라 그나마 낫긴 했지만 잠자는 동안엔 확실히 불편하게 느껴져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반납을 하고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선생님께서 고혈압은 아니지만 병원에 올 때 혈압이 오르는 것과 긴장하면 오르는 것을 감안해서 아스피린을 드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뒤부터 줄곧 출산 전까지 아스피린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과정 속에서 두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장군의 명대사가 있다. 13척의 배로 330척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과의 대화 중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 배 천 배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물론 이순신장군의 두려움은 진짜두려움이지만 내 두려움은 가짜다. 과거에 기억이 만들어내는.. 하지만 가짜두려움을 상대하는 방법도 찐 두려움을 상대하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움이라는 에너지를 전환할 방법을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것처럼 두려움이란 감정도 어떤 에너지이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쓰이고 있으니 용기로 바꾸기 위해 마음속에 에너지 변환소를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순신장군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셨고 그렇게 하셨지만 나는 엄청난 쫄보이기에 두려움이란 에너지를 용기로 한 번에 바꾸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쓰기로 했다.

두려움이 생기면 에너지가 오르고 있으니 운동을 할 힘으로 쓰던 육아를 하는 힘으로 쓰던 신체를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아쉽게도 병원에서 혈압을 재는 동안에는 움직이면 안 되므로 혈압을 재면 혈압이 오르는 건 그냥 놔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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