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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헷지니 Oct 27. 2024

[그의 미소]

아무런 말 못 하고

진영은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점검했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화장한 얼굴인데도 버석해 보였다. J의 강연회 소식 듣고 거의 날마다 들떠 지냈는데 어제저녁은 몇 달 만에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도저히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택시는 행사장 입구 조금 못 미쳐서 멈췄다. 택시에서 내린 진영은 심호흡을 한 뒤 서두르지 않고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 시작 1시간 전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눈인사를 나눈 뒤 영미를 찾아 둘러보았다. 무대 앞 왼쪽 세 번째 줄에 영미가 앉아 있었고 옆 좌석은 비어있었다. 도착하기 15분 전쯤 연락해서 영미가 잡아 놓은 것이다. J사 강연하는 곳은 2층까지 합해서 100개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아담한 문화센터 강당이었다. 

영미는 연갈색 바바리코트 차림이었다. 가을 냄새가 났다.

“어디 아프니?”

“어제 잠을 거의 못 잤어. 얼굴 많이 이상하니?”

잠을 못 잘 정도로 흥분했냐고 영미는 낄낄대며 웃었다.

‘자리는 잡아놨으니 입구 쪽에 서 있다가 인사라도 건네자’

영미는 내 손을 잡아끌고 공연장 밖으로 갔다. 그가 차에서 내릴만한 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팬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서있었다. 개중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며칠 전에 구입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아쉬운 대로 폰으로 찍으려고 진영이 폰을 꺼내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차가 강연장 입구에 나타났다. 팬들은 차 쪽으로 몰렸다. 진영은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를 지켜보았다. 검은색 바지와 티셔츠에 진남색 카디건을 걸친 그는 몇 달 전보다 훨씬 말랐다. 팬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으며 그가 진영이 서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폰을 들고 있는 손이 굳어버려 움직여지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자 진영은 영미 손을 꽉 잡았다. 마음과 달리 긴장한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왔어?’ 그가 진영에게 말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말 못 하고 바라만 보는 진영에게 윙크와 함께 미소를 보낸 뒤 강연장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분명 자신을 보며 말한 것인데도 멀뚱 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 뭐 해? 너한테 말하잖아’ 진영을 툭 치면서 영미가 말했다. 진영은 온몸의 힘이 풀리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않을 거 같았다. ‘나한테 말한 거였니?’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침착하게 진영이 말했다. ‘그래’ 몇 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진영은 손에 쥔 휴대폰을 보았다. ‘사진은 찍지 못했어도 괜찮아 내 눈 속에 담은 그의 미소는 영원히 간직될 거니까’ ‘내가 인사했는데 받아 주지도 않고 너한테 왔냐고 말하더라’ 뾰로통한 표정으로 영미가 흘겨보았다. 진영은 영미의 어깨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 ‘들어가자’ 영미가 진영에게 말했다. ‘너 오늘 저녁에는 잘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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