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름, 누나

여행 셋째 날

by 문주성

이번 여행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가족을 동반할 수도 없었고, 회사에서도 긴 휴가를 낼 수 없었다.

오직 14일,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제약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반드시 한국에 가야만 했던 이유,

그건 단 하나—누나.


누나가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급히 응급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멍해졌다. 믿을 수 없었다.

왜 하필 우리 누나에게.

왜 이렇게 불행이 연이어 닥치는 걸까.


택시를 타고 시흥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20년 전에도 누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나는 누나의 곁에 있었다.

그것이 누나의 두 번째 수술이었기에

모든 일을 뒤로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그날, 나는 병원에서 누나의 머리를 직접 밀어주고 있었다.


“누나, 괜찮아?”


조심스럽게 묻는 내게

누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계가 움직일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마치 세상의 인연이 하나둘, 누나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한 올까지 떨어졌을 때,

누나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의사가 나를 불렀다.


“수술 부위가 너무 중요해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에 하나, 시력을 잃거나 말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심하면 평생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할지도 모르고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보호자로서 내 사인을 요구했다.


왜 내가 매형 대신 사인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손이 떨렸고, 머리는 하얘졌고,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이 수술이 끝나면, 어쩌면 누나와 다시는 대화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 누나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주성아… 혹시 내가 못 일어나면… 어린 조카들, 잘 부탁한다.”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누나, 무슨 소리야?

의사가 금방 끝날 거래.

어려운 수술도 아니래. 걱정하지 마.

누나는 꼭 이겨낼 거야.”


누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

오직 기도뿐이었다.


나는 그때 무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절대자를 향해 간절히 매달렸다.


“제발… 제발, 누나를 살려주세요.”



---


수술이 끝난 뒤, 누나는 한참을 깨어나지 못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싸우고 있었다.


나중에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희미하게 아주머니가 청소하는 게 보였어.

손도, 발도, 어디도 움직일 수 없었지.

근데 그 아주머니가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

‘살아나면 저 아주머니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그렇게 다짐했어.”


그리고 또 하나.

누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콜라.


중환자실에서 왜 콜라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삶을 향한 갈증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진을 온 의사가 물었다.


“필요한 것 있으세요?”


누나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콜라… 마시고 싶어요.”


의사는 기꺼이 허락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누나는 다시 살아날 거야. 다시 살아서, 훨훨 날아갈 거야.”


그렇게 누나는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고,

그 뒤로 20년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활기차게 살아갔다.


전화만 하면

늘 그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문주성~!”


그 한마디가

내게는 언제나 큰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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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20년 후,

누나는 또다시 쓰러졌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왜 또 우리 누나에게…

그 착한 사람에게.


그때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그 강한 의지로 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텅 빈 집에서 하염없이 누나를 기다렸다.

재활병원에서 외출을 허락받고 오는 중이라는 누나를.


문이 열리면 누나가 들어올 텐데…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얼마나 아프고 지친 모습일지,

그게 두려웠다.


창밖으로 따스한 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사 온 아파트의 전망은 탁 트여 있었고,

산책로에서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이곳이라면…

회복 중인 누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두 아들은 신혼가정과 직장으로 독립했고,

매형은 병원으로 누나를 데리러 갔다.

나는 처음 와본 이 낯선 집에서 혼자,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공간, 낯선 시간.

캐나다에서 급히 날아와

바쁘게 달려온 일정이

이 순간만큼은 멈춰 서 있었다.


마치,

긴 숨을 내쉬듯.


나는 어느새 현실과 꿈의 경계를 떠돌고 있었다.

울창한 숲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길을 찾아 나서면 막다른 길,

새로운 길을 선택해도 다시 막힌 길.


끊임없는 미로 속을 나는 헤매고 있었다.


그때—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나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문이 열렸다.

매형의 부축을 받으며 누나가 들어왔다.


재활 속도가 빠르다고 들어서

혼자 걸어올 줄 알았지만,

누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미소.


누나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우리 동생 와서 너무 좋다.”


목소리는 약간 어눌했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나는 그제야 속으로 삼켰던 말을

작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내뱉었다.


“누나… 늦게 와서 정말 미안해.”


누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과거의 기억,

지금의 안부,

그리고 미래의 희망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누나와 마주 앉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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