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오니, 마음 한편이 울적해진다.
한국에 계신 가족과의 거리는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유리보다 투명한 광섬유 하나에 달려 있다.
오늘 카카오톡으로 보이스톡을 했다. 우리가 나누는 이 목소리는, 머리카락의 고작 십 분의 일 두께의 유리막대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다.
우리의 말은 빛으로 변해 바다를 건너고, 다시 음성신호로 환원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이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기에, 우리는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한다.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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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전, 나는 광통신 네트워크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영업 책임자로 일했다.
마침내 전선에서 광섬유로 통신망이 대체되던, 격동의 시기였다.
전선은 저항이 커서 대용량 정보 전송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광섬유는 저항이 거의 없어 데이터의 바다를 순식간에 넘을 수 있게 했다.
그것은 기존의 문제를 한순간에 해결한, 혁신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누구도 지금과 같은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다.
업계의 전문가들조차도.
우리가 지금 인공지능과 우주여행, 자율주행을 말하지만, 20년 뒤의 세상은 다시 지금을 뛰어넘을 것이다.
기술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 너머에 존재한다.
하지만 한 가지를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는가?”
기술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편리함이 곧 삶의 질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조금씩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술은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더 따뜻한 존재가 되도록 돕는 하나의 다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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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청소를 담당하던 필리핀 동료 리닝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가족사진 하나 건지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는 이혼 후 홀로 지내던 사람이었고, 현재는 다른 동료의 집에 임시로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오버타임을 하고 있었지만, 도와주고 싶었다.
회사 단체 채팅방(한국인 커뮤니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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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담당 리낭의 집(렌트/지하)이 화재로 전소되어 현재 잭슨의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몸만 빠져나와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고,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고자 도네이션을 제안합니다.
뜻있는 분들께선 20불씩 참여해 주시면 제가 먼저 전달하고, 추후 정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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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후 근무에 들어갔다.
휴식 시간에 휴대폰을 켰는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전율에 가까운 떨림을 느꼈다.
근무 중이던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만이 깨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휴무이거나 야간 근무를 준비하며 잠자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단 세 시간 만에, 한국인 직원 전원이 도네이션에 참여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사전 공지도 없었고, 미리 논의된 일도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 모두가 휴대폰을 확인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따뜻한 감정이, 광섬유를 타고 모인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단순히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이 더 빠르게,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쌓여,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더 행복한 세상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