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 라코(Lako)의 이야기

by 문주성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와 그의 가족을 위로하는 눈물이다.

또 한 방울이 떨어졌다.

세상의 모든 내전이 끝나기를 기원하는 눈물이다.

그리고 다시, 한 방울.

세상의 평화를 갈망하는 소시민의 염원이다.


우리는 좁다란 첨탑의 꼭대기에 마주 서 있었다.

그곳에 오르기 위해선 계단 하나뿐이라 누가 올라오는지도 훤히 알 수 있었다.

사위는 고요했고, 별들은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라코는 애써 눈물을 감추려 했지만, 그의 뺨을 타고 흐른 자국은 달빛에 투명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나는 흐느꼈다.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가 쉴 새 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우리 둘만의 순간이라 생각했는데,

Syncrude의 안전담당자가 첨탑 아래 사다리 끝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우리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 한 듯, 그저 눈물만을 훔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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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코를 처음 만난 건 Syncrude 셧다운 프로젝트에서 보일러메이커 팀에 합류했을 때였다.

첫날은 캠프에서 안전교육을 받았고, 다음날 고용사에 개인정보를 등록해야 했다.


이민자로 살아오며 새로운 환경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첫 출근은 낯설고 긴장됐다.

런치룸에서 몇 시간을 혼자 기다리며 그 낯섦은 점점 커졌다.

하지만 구석 쪽, 햇볕이 드는 대각선 자리에서 몇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활기찬 사람은 Hamja라는 소말리아계 청년이었다.

그는 내게 손짓하며 대화에 끼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멀찍이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Hamja 옆에는 어프렌티스 여성 두 명이 있었고, 그의 뒤로는 너무 작고, 검고, 수줍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마치 다큐멘터리 속 장면을 찢고 나온 듯한 존재였다.

햇병아리 같았다.

햇살에 눈을 깜빡이며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딘 병아리처럼.


그가 라코였다.

수단에서 피난민으로 캐나다에 온 이민 1세대.

그와 함께 일하게 된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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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코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였고, 다섯 남매 중 막내가 라코였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식사 도중 가족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그 시절 수단에는 내전이 발발했다.

북부의 아랍 세력이 남부의 아프리카 세력을 몰아내려 내려오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인종 청소’가 벌어지고 있었다.


라코의 아버지는, 부족은 달라도 같은 수단 국민이라면 화합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말은, 수단에선 위험한 발언이었다.


우리는 보통 국경을 산이나 강으로 나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지도 위에 자로 그은 듯 반듯하다.

그건 140여 년 전, 베를린 회담에서 서구 열강이 멋대로 나눈 선이었다.

그 괴기한 선은 같은 부족을 서로 다른 나라로, 다른 부족을 억지로 하나의 나라로 묶었다.


그 결과, 분쟁과 내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수단 내전으로 200만 명이 사망했고, 4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피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라코의 누나는 병든 다리로 걷지 못해 아버지 등에 업혀야 했고,

그 탓에 가족은 피난 행렬에서 뒤처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 피난 중 가족은 흩어졌다.

누이를 업은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은 서로를 잃었다.

그날 이후, 라코는 누이를 다시 보지 못했다.


국경 근처에 마련된 난민촌은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식수는 부족했고, 식량은 몇 날 며칠씩 끊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라코의 부모는 감자 한 보따리를 구해왔다.

네 남매가 허겁지겁 먹고 난 뒤에야, 부모는 한 입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피난 중에 챙겨 온 모든 귀중품을 관리인에게 내주고,

겨우 감자를 구해 아이들을 살려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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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캐나다가 난민 신청을 받아주면서 라코의 가족은 에드먼턴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는 1년 사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기아와 스트레스, 그리고 지난한 피난의 여파였다.


4남매는 캐나다에서도 고립됐다.

어눌한 영어, 낯선 외모, 너무도 다른 삶의 배경이 그들을 외톨이로 만들었다.


라코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용접을 배웠다. 타업종에 비해 용접이

언어가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접회사에서도 차별은 존재했고, 그는 백인 동료들보다 낮은 임금으로 일해야 했다.


그는 그 불합리를 견디다 못해 세상 밖으로 나왔고,

그때 내가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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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라코는 남수단 출신 여성과 결혼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내와 아이는 비교적 안전한 우간다에서 지내고 있고,

그는 지금 그들을 캐나다로 데려오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그와 그의 가족이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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