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인간을 배우다.

토요명화1

by 문주성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의 밤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문화적 자극이라곤 메마른 땅처럼 드물던 그곳에서, 나에게 세상과 이어진 유일한 창문은 오직 **‘토요명화’**뿐이었다.


당시 우리 집의 유일한 텔레비전은 안방에 있었다.


엄격하셨던 아버지가 잠자리에 드신 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안방 문틈을 넘나들었다. 혹여 잠을 깨울까 봐 볼륨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췄고, 화면 바로 앞에 바짝 붙어 숨을 죽였다. 대사는 희미했지만,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수많은 영화가 그렇게 내 어린 밤을 지나갔지만, 4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 가장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 있다.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산(The Mountain)〉**이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등장인물이 단 세 명뿐이다. 산을 아는 형, 탐욕에 사로잡힌 동생, 그리고 조난당한 여인. 군중도, 복잡한 서사도 없지만, 그 단출함은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형은 한때 히말라야를 정복했던 전설적인 등반가였으나, 이제는 명예나 기록보다 산 그 자체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반면 동생은 형의 기술을 이용해 추락한 비행기의 귀중품을 챙기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인도 여인은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형제의 선택과 인간성을 비추는 등불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어린 나에게 그들의 등반은 숨이 막히도록 긴장됐다. 설산의 웅장함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동생의 눈빛이었다. 추락한 비행기 속에서 살아 있는 여인을 발견했을 때, 형은 그녀를 반드시 구해야 할 생명으로 보았지만, 동생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짐으로 여겼다. 그 차이가 바로 인간을 가르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결국 탐욕은 산 앞에서 무너진다. 동생이 깊은 크레바스로 사라지는 장면에서, 나는 기쁨도 안도도 느끼지 못했다.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과 슬픔이 마음을 눌렀다.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부르는지, 그 사실을 처음으로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형은 죽은 동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비난과 오해를 자신이 떠안은 채 홀로 산을 내려온다. 그 쓸쓸하고도 단단한 뒷모습을 보며, 안방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던 소년의 가슴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움이 차올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본 것은 단순한 산악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끝까지 지켜야 할 품격,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에 대한 첫 수업이었다.


단 세 명의 인물만으로도 이토록 거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깰까 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채 바라보던 히말라야의 푸른 설산은, 그렇게 내 삶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볼륨을 낮춰야만 했던 그 고요한 밤들이, 사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웅장한 소리를 들려주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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