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친정엄마할게.

나눔

by 바다나무

서울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 바다나무 세컨드하우스에서 촌캉스를 하고 간 친구 중 하나이다. 방울토마토가 너무 맛있어서 가족들이 더 먹을 수 없냐고 물어본다고. 이렇게 맛있는 방울토마토는 처음이라고. 혹시 여유가 되면 수취인 부담으로 보내 줄 수가 있냐고. 왠만해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내가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얼마나 맛있었기에. 마음이 짠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돈만 있으면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세상에.


친구는 나보다 1년 먼저 명퇴를 하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 때론 혼자 와서 나와 함께 2박 3일 머물러도 가고. 남편과 함께 오기도 했다. 가끔은 중간지역에서 만나 수다를 떨다 헤어지기도 하는 친한 친구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외모도 성격도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했다. 심지어 그녀와 근무하는 선생님이 자신의 상사인 줄 알고 인사했다가 저쪽에서 똑같은 사람이 오는 걸 보고 당황해한 적이 있었다. 같이 다니면 닮아지나 보다.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농원에서 수확한 옥수수, 방울토마토와 고추, 깻잎등 필요한 푸성귀들을 따서 주었다. 많이 주려고 해도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부담이 될까 싶어 알아서 먹을 만큼 가져가라고 했다. 우리가 먹는 양도 한정되어 있기에 서너 포기씩 심은 것들이 다. 다른 친구들은 차가 있어 나름 넉넉하게 가져갔는데 기실 이 친구는 조금 챙겨 주었다. KTX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을 하니 무거울까 봐 많이 줄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아주 귀한 것도, 비싼 것도 아니고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 괜한 고생만 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맛을 그리워한다.


며칠 지나고 방울토마토가 익었길래 아이스박스에 포장을 해서 보냈다. 호박잎, 꽈리고추. 아삭이고추, 호박, 가지. 깻잎, 파프리카등 농원에 있는 채소들을 골고루 넣을 수 있는 만큼 채워서. 혹여 야채가 상할까 봐 키친타월로 하나하나 싸서 비닐봉지에 넣었다. 아이스팩은 채소에 닿으면 얼을까 봐 신문지로 싸고. 손질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손질하여 음식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서 먹는데 불편함이 없이 보냈다. 보내놓고 나니 박스가 작아 옥수수를 몇 통 못 보낸 것이 또 맘에 걸렸다.


택배가 도착할 즈음 친구는 강원도 여행 중이라며 전화가 왔다. 배송알림문자가 와서 관리실에 전화해서 공동 냉장고에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노라고. 맙다고. 상했으면 나는 아까워하지 말고 미련 없이 버리라고 했다. 담에 다시 보낼 테니까. 요즘 같은 여름날 근 일주일을 스티로폼박스에 있는 건 백발백중 무리라는 생각에서 였다. 미리 연락 안하고 보낸 내 잘못이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것 같아 오늘쯤 다시 보내려고 야채와 푸성귀들을 수확해 왔다. 손질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행에서 돌아와 지금 풀어봤는데 너무 싱싱하다고. 하나도 상한 게 없다고. 들뜬 목소리였다. 신기한 일이다.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정말 무른 것 하나 없이 그대로라고 하였다. 잘 먹겠다고. 너무너무 고맙다고.


친구는 꼼꼼한 포장덕이라고 했다. 치킨타월로 싼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남편과 박스를 열어보고 감동했다고. 남편 앞에서 으스댈 수 있었다고. 나도 친정이 있다고. 전화기 너머 친구의 좋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한것도 아닌것에 행복해 하는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자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친구는 여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언젠가 동료들이 친정엄마가 무언가를 챙겨주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부러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나름 정성껏 싸서 보냈다. 무엇보다 다행이다. 친구의 기를 살려 줄 수 있어서.


가진게 많아도 친구는 가끔 외로워 했다. 말수가 없고 단아한 사람이었다. 살면서 딸이 잘 려진 사람이 가끔 유명세를 치르며 맘고생을 한 탓이리라.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물고 더욱더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자신을 단도리했다. 속으로는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까. 옆에서 보는 나도 안타까웠다. 남의 흉을 보거나 근거 없는 험담은 사회악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가끔 직장생활을 하면서 쉽게 남의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개인마다 다 사정이나 상황이 다를 수 있는데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자기 기준에서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나이 먹으면 말은 적게 하고 주머니는 열어 놓으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제 오후 내내 수확해 놓은 많은 야채는 다시 분배해야겠다. 친구에게는 다 먹을 때쯤 다시 한번 보내야 할것 같다. 많아도 부담이 될테니까. 오늘은 언니들에게나 넉넉하게 보내야 할 것 같다. 늘 받기만 한 언니들에게 막냇동생이 어설프게 지은 채소들로 친정엄마 흉내 한번 내봐야겠다. 쉬운 마음에 딸것은 방울토마토와 샐러드 거리만 챙겼다. 별것 아닌 것들에 정성을 쏟았다.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친정엄마는 안되려고 했었는데. 세월이라는 이름이 나도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눌 수 있는 게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