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의 수학여행

제주 살기 12.

by 바다나무

제주에 오는 기내에서 제주 투어패스권을 구입했다. 이 투어패스권은 제휴된 테마공원이나 카페, 쇼핑센터 등 관공지를 시간권으로 구매해서 무료 또는 할인해서 사용하는 패스권이다. 우리가 구입한 것은 처음 사용 후 1시간 간격으로 48시간 안에 사용가능하다. 시간을 잘 계획해서 이용하면 많은 장소를 저렴하게 관광할 수 있다. 한 달 살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비절약을 하기 위해 이용한다고 는데, 간혹 추가요금을 더 받는 곳도 있고 예약제로 운영하는 곳도 있어 나름 정보수집이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 내일 이틀 동안 이 투어패스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제휴관광지인 상효원으로 갔다. 계절꽃을 볼 수 있는 수목원으로 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튤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8만 평이 넘는 넓은 정원에 우아한 자태를 지닌 튤립이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제주는 지금 꽃의 천국이다. 중간중간 포토존이 있는 테마공원이라 아이들과 함께 가족여행으로 와도 좋을 것 같았다. 문득 넓고 튤립 핀 것이 아이들과 많이 가본 에버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곳은 놀이기구로 채워져 있고 이곳은 나무나 꽃으로 채워져 있다. 이건 그저 기억속에서 나만의 느낌이다.


나와서 쇠소깍주변에 있는 한라봉을 따볼 수 있는 산물 관광농원으로 갔다. 음료 한잔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귤을 딴 만큼만 값을 지불하는 체험농원이다. 이 농원은 개인이 수집한 고재. 대장간 모루. 각종 사라져 가는 농기구와 골동품이 농사짓는 귤나무 하우스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색 박물관이다. 계절 따라 익어가는 한라봉과 옛 물건들과의 조화는 우리 것을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은 체험장소가 될 것 같다.


점심으로는 전복죽을 먹었다. 이 식당에서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망같이 생긴 어로용구가 "테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테왁에 해녀들은 해삼, 멍게, 소라, 전복등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지는 생명줄 같은 건이다. 제주에는 참 낯선 용어들이 많지만 그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정겹다. 혹자는 제주언어의 맛과 멋에 의미를 두고 보존가치를 논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주에는 삼다(多)뿐만 아니라 삼보(寶)가 존재하나 보다.


투어패스와 제휴된 카페로 갔다. 서귀포의 신상카페로 통창으로 야자수가 보이고 멀리 범섬이 보이는 층고가 높고 심플한 카페이다. 무료커피와 겉바속촉의 휘낭시에 구움 과자가 눈길을 끌기에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맛을 보았다. 휘낭시에 빵이 커피와 함께 먹기엔 제격이다. 주말이 지난 후라 그런지 도시가 한가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투어패스권을 가지고 여행을 하다 보니 왠지 시간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알차게 활용하려고 시간을 쫓다 보니 어졔까지와는 달리 질보다는 양이 우선시하게 되어 마치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장소들도 힐링보다는 교육이나 체험에 부가적인 서비스를 얹는 기분이 더해진다. 학교 다닐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못 온 터라 이 참에 퇴직자 수학여행을 왔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번 여행의 인솔자는 많이 와본 남편이 되었다. 추후 준이를(손자) 데리고 에버랜드로 여행을 간다면 내가 인솔자가 되리라. 끔 이렇게 뭔가를 분담한다는 것은 효율성을 높는데 도움이 된다.


다음 수학여행지는 파더스 가든이다. 제주에 오니 엄마의 정원, 아빠의 정원이라는 수식어가 등장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처럼 역할분담인 것일까?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개인정원이었던 것을 관광지로 개방한 테마공원으로 동물들이 있고 먹이를 주는 가족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잘못된 정보로 제휴기간이 끝난 터라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온 곳이다. 어른들 취향은 아니지만 이왕 왔으니 천국의 계단에서 튼튼하고 질긴 동아줄을 보내달라고 기도나 고 가겠다.

관람하고 이동하는 시간을 따져보니 한 시간 후라 그리스신화박물관으로 이동해도 충분한 시간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 가물거리 떠오른다. 그리스신화박물관은 명화와 조각상을 전시하는 공간과 그리스 마을로 재현되어 관람객이 상호교감 할 수 있도록 체험형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 많이 와본 오늘의 인솔자는 흥미가 없는지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며 한 곳에서 쉬고 있다. 이곳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퇴직학생인 나는 설명된 해설들을 읽으며 그리스 신화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곳이야말로 전형적인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다.


그리스신화박물관을 나와 옆에 붙어있는 트릭아이 미술관으로 갔다. 트릭아이는 "눈속임 그림" 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2차원의 평면을 3차원으로 만드는 착시현상을 느끼게 하는 기법으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공간이다. 벽면에 그려진 배경에 몸을 싣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봄으로써 공간 이탈을 해 보기도 한다. 무더기 돈 앞에 앉아보니 내가 마치 정말로 돈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다. 어른인 나도 흥미롭다. 지금까지 못해본 거 작정하고 즐기기로 한 철없는 퇴직학생은 관광객이 없는 탓에 천방지축으로 오가며 사진을 찍는다. 학교 다닐 때 이런 학생들 때문에 가끔 교사들은 힘이 든다.


그리스신화박물관을 나와 제주시로 들어가 노형수퍼마켓에 갔다. 제주에 있을 때 갈까 하다가 투어패스권을 사둔 터라 미루어 두었던 관광지이다. 여긴 뭐지? 이름조차 호기심을 유발한다. 선물을 사는 수퍼마켓? 이곳은 예전에 서커스장이었던 것을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들어가 보면 흑(黑)과 백(白)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나타나 잃어버린 색을 찾아가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광섬유의 반짝이는 세상, 뿌연 안개세상, 화려한 미디어 아트세상이 나타나 압도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여행을 할 것이다. 언젠가 보았던 "나니아 연대기"처럼 마법의 세계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순간이동한 느낌이다.


한참 정신줄을 놓고 나니 거부할 수 없는 몸짓이 나를 불렀다. 채우리라.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르는 현지인 맛집이다. 전골로 속을 채우고 수학여행단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서귀포로 다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는 카페에서 지막 입가심을 하면서 산뜻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투어패스를 활용한 퇴직자 수학여행은 1일차 끝냈다. 역시 수학여행은 피곤하다.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상효원. 산물관광농원. 테왁 식당. Or 카페. 파더스가든. 그리스신화박물관. 트릭아이 미술관. 노형슈퍼마켓. 백번가든. 푸르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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