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제주 여행 중. 그리고 성산 일출봉

제주 살기 16.

by 바다나무

하늘이 뜩 움츠리고 있다. 그래도 비는 오지 않고 애써 참고 있는 듯하다. 아침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다소 새초롬한 날씨에 바람막이를 챙다. 집에 있기는 시간이 아까워 어디로 떠나볼까 궁리하면서 일단 바람 부는 날 배를 타는 건 무리일 듯싶어 당초 획했던 우도는 포기했다. 선은 든든한 조식으로 배부름 을 감지했기에 얄팍한 커피로 내장의 비율을 맞추로 했다. 이곳으로 숙소를 옮긴 후부터 우리의 일과는 카페부터 시작한다.


차를 몰고 세화해변으로 갔다. 예쁘고 조용하고 검은빛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바닷가다. TV프레임에 관광객을 가두는 예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카페다. 옛날 골동품들을 싱그러운 화초와 조화롭게 꾸며 놓았다. 그 옛날 TV너머로 해변과 출렁이는 바다가 보였다. 카페도, 바다도, 서로 간에 잘 어울렸다. 실내의 손님은 어느 노부부와 홀로 온 관광객, 두 팀이다. 노부부의 속삭이는 모습이 정겨워 보 생을 즐기는 것 같아 닮고 싶었다. 홀로 온 관광객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 모습이 여유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모두 자기 인생을 간맞춤하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 오롯이 자신에게 충실하고 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름다워 해변을 걷고 싶었으나 바람이 거세 차로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날씨 탓인지 도로가 한산하고 배낭을 메고 트레킹 하는 사람들만 간간이 보인다. 때론 한산한 제주가 낯설 때도 있다. 매번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제주를 방문했던 터라 늘 시끌벅적거리고 북적였던 기억이다. 이 또한 퇴직자의 특권이라 여기며 최대한 수혜자가 되 본다.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일출을 맞이할 자신이 없기에 정상까지 등산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몇 번 왔지만 아래서 머물다 쳐다보고 간 것이 전부다. 늘 그림의 떡이었다. 엄두도 안 났을 뿐 아니라 시간에 쫓겨 다른 관광지를 하나라도 더 보아야겠기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오르리라 마음먹었다. 왠지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가팔랐다. 서너 번을 쉬면서 정상에 올라가니 제주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노란 유채꽃이 중간중간 자리를 차지하고 제주를 덧칠하고 있다. 풍광이 아름다워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증샷을 찍고 내려왔다. 여길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오는데 가파른 계단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오늘은 다리가 떨리는 날이다.


문득 언젠가 갔던 중국 장가계 여행이 떠올랐다. 곡예비행기가 멋지게 통과했다는 "천문산 천문동"이라는 터널을 가는데 99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까마득해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일행으로 오신 할머니와 둘이 아래에서 남아 있었다. 일행이 떠나고 한참이 지났는데 '이곳을 언제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갑자기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뒤늦게 헐레벌떡 올라갔다. 순간 막차라도 타야 한다는 절박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돌아와서 생각하니 안 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그 이후로 다시 그곳은 가지 않았다.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오니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고, 바람도 불고, 허기도 느껴졌다. 튀겨진 우럭에 양파양념이 수북이 올려진 생선요릿집에 갔다. 단품요리만 하는 식당이라 아이들이 오면 먹을만한 음식이 없어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맛집이다. 카페가 안전문제를 고려해 2층을 노키즈존으로 하거나, 반려동물을 제한하는 건 보았어도 아이들의 방문을 제한하는 식당은 처음이다. 당 벽면에 걸린 주인장의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보면서 어찌 되었든 이 또한 칠순이 넘으신 주인장의 사업철학이라 존중하고 싶어졌다. 분들의 멋진 사진만큼 음식도 맛다.


비가 오니 외부관광은 제약이 따라 숙소로 올까 하다 비 내리는 날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셔보는 것도 나름 운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1일 1 카페를 원칙으로 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어디 원칙대로만 살 수 있겠는가. 늘 예외는 존재한다.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숙한 도로를 돌고 돌아 들어오니 멋스러운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제주관광은 맛집투어가 아니라 카페투어라는 말이 여행자들 사이에 오고 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편백나무 숲이 장관이다. 한참을 기다리다 마른 억새와 어우러진 비 내리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소가 외진 것과는 상관없이 한잔의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줄을 선다. 오늘은 날씨 탓도 있으리라. 주변에는 자녀들이 모시고 온 연세든 어르신들이 서로 간의 세대를 뛰어넘어 가족애를 느끼며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잠시, 곧게 뻗은 편백의 푸르름과 드립커피의 은은한 향에 취해 다정한 부부를 연출해 본다. 찰칵! 지금은 제주여행 중니까.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한라산 카페. 세화해변. 성산일출봉. 으뜨미 식당. 블루보틀 카페. 덕천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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