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밝은 날이다. 6개월마다 정기적인 검사가 있어 병원에 갔다. 특별히 아프다기보다는 미리 예방차원이다.
연휴가 끝난 월요일의 병원은 전쟁터다. 왜 하필 생각 없이 오늘 예약했는지 모르겠다. 점심시간쯤 되자 병원이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간단한 채혈만 하는 것이라 금방 끝났다.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직원들도 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점심이나 먹고 들어오자며 기사를 자처한 남편에게 무얼 사줄 까 하다 병원 근처의 보리밥집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덤으로 나오는 보리강정과 보리빵을 좋아한다. 아뿔싸! 생각을 잘못했다. 오늘이 어버이날인걸 깜빡했다. 어제 큰딸이 두툼한 봉투를 하나 주고 갔음에도 잠을 자고 난 뒤에는 까맣게 잊은 것이다. 퇴직을 하고 나니 날짜 감각이 둔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보니 대기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들이다. 연세 드신 분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라는 걸 미처 예측하지 못한 탓이다. 다른 곳으로 갈까 하다 몇 명이나 대기하고 있는지 물어볼 겸 카운터로 갔다. 이제 곧 한 타임이 끝나서 식사를 다하신 분들이 많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시계가 한시를 가리키니 12시에 오신 분들이 많이 빠져나갈 듯싶어 기다리기로 했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오신 어르신, 한쪽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쪽은 자녀가 부축한 어르신, 어린 손주와 함께 온 가족들, 몸은 불편해도 모두들 정겨워 보인다. 밥 한 끼에 일 년의 효심을 담아내고 있다. 식당에 들어갔다. 오늘따라 둘이 앉아 있는 게 멋쩍다. 왠지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데 둘만 있는 것 같다. 양가 부모님이 다 돌아기시고 나니 어버이날 되어 부모님과 식사하는 모습만 보아도 부럽다. 내가 어버이로 자식에게 받는 것 말고 내가 자식으로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는 아니다. 그래도 새마을 운동으로 조금씩 경제적 도약을 하려고 발버둥 치던 시기라 굶주림에 허덕이지는 않은 세대다. 돌아가시기 전 친정엄마도 바가지에 비벼 먹던 꽁당보리밥을 추억하며 참 좋아하셔서 영월의 장능보리밥집을 자주 모시고 가곤 했다. 오늘 생각 없이 마주한 음식이 그리운 엄마에게로 달려가게 한다.
없던 시절에 먹던 음식이 요즘은 추억의 맛집이 되었다. 구수한 청국장 한 스푼에 갖가지 나물로 어우러진 꽁당보리밥, 껍질이 미끄러워 몇 번 씹지 않아도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뱃속을 채워주던 보리밥. 어린 시절 점심시간에 혼분식 도시락 검사를 할 때 옆친구 보리쌀알을 몇 개 쌀밥에 심어 무사히 선생님의 눈길을 피해 갔던 꽁당보리밥,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늘은 음식을 헤적거리게 만든다.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할머니가 음식을 날라다 주는 로봇을 신기한 듯 쳐다보신다. 참 좋은 세상이라고 하시면서. 그래 좋은 세상 맞다. 돈으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돈만 있으면 되는 세상은 아니다. 돈이 있어도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으면 오늘 같은 날은 무용지물이다. 순간 꽁당보리밥은 그리움이 되어 내 목젖을 울린다. 가냘픈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고 식당에서 나오는 장성한 자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부러워진다.
나이가 드는 건지 눈물이 많아졌다. 특히 엄마라는 말만 나와도 울컥한다. 내 배부름을 엄마의 허기로 메꾸어 준 것 같아 죄송했다. 혹여 딸이 세월 지나 나 같은 마음이 들까 봐 하라고 하는 데로 한다. 말을 잘 듣는다. 좋은 거 먹으라면 좋은 거 먹고, 좋은 옷 입으라면 좋은 옷 입는다. 사주면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고 받는다. 염치없는 엄마라서가 아니라 혹여 내 감성마저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못 해 드린 것에 대한 회한마저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돌아오는 길의 햇살이 너무 곱다. 고운 우리 엄마 얼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