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서른아홉
신입의 열정은 40% 정도가 적당해,
그러니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마.
첫 출근 전날, 룸메이트인 A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대학교 4년 내내 자취생활만 해왔던 나에게,
2인 1실의 사택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좀처럼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여유를 부리는 나인데 말이다.
소양인으로서 여름엔 에어컨을 달고 살며, 겨울에도 찬 물에 샤워하는 체질인데
혹여 이런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과 한 방을 쓰게 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같은 팀 선배라면
퇴근 후 나의 일상이 업무의 연장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입숙 일주일 전, 기숙사 사감님께 전화가 왔다.
나의 룸메인 그분은 과장급이고, 유부남이며, 나랑은 12살 차이가 난다는 말을 전해주셨다.
보통은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끼리 배정을 해준다고 들었으나
생각보다 나이와 계급차가 많이 나는 분과 함께한다는 말을 듣고 나의 걱정은 더 커졌다.
하지만 커졌던 걱정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퇴근 후의 라이프를 누구보다 아깝지 않게 보내려 하던 그 모습들을 보고
이런 사람이 룸메여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정말 깔끔하게 정리한다라던지,
가족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들은 정말 어른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운동을 너무나 좋아하셔서 매일 자기 관리하던 모습들은 큰 자극으로 다가왔고,
밤 12시까지 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몰두하던 모습들은 괜스레 나 스스로에게 눈치를 보게 하였다.
(눈치만 보였다.)
특히나 감동했었던 일화가 하나 있었다.
입사하고 3주 정도 후였을까. 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그냥 지나가는 말로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는 말을 했다.
항상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보내던 생일을
룸메랑 기숙사에서 보내게 되어 사실은 유감이라는 생각이 조금 있었다.
아직까진 엄청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이로 지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 채팅앱으로 그 룸메에게 메시지가 하나 왔다.
"오늘 저녁 너희 팀 사람들이랑 먹니?"
"아니요, 피곤해서 들어가서 쉬려고요"
기숙사에서 내 생일이니 같이 맛있는 거나 먹자고 하시는데,
그냥 치맥이나 먹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사실 치맥이 됐든, 치쏘가 됐든 은연중에 했던 내 말을 기억해 주고
챙겨주려고 하던 모습은 이미 꽤 감동이었다.
그렇게 서로 먹고 싶은 치킨 메뉴를 양보하면서 투닥거리다가
결국엔 내가 고른 치킨으로 결정했다.
치킨이 도착하자 튀김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난 맛있는 치킨을 영접하기 전, 치킨무의 물을 빼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선배님이 침대 밑에서 바닥과 뽀뽀라도 하는 듯 납작 엎드려계신 것 아닌가?
바퀴벌레라도 있나 했더니
두둥,
케이크를 하나 꺼내시더라.
상상도 못 한 서프라이즈였다.
아직은 그저 그런 사이였고, 12살이나 많은 그분이
나를 위해 케이크에 촛불까지 켜줄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간단하게 치킨과 케이크를 먹으며 말씀하시기를,
"요즘은 나이 든 사람이 먼저 다가가는 것도 용기야"
사실 생각해 보면 나와 띠동갑이긴 해도 정확히 말하면 그분도 MZ이다.
MZ와 기성세대의 경계에 있는 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엄연히 MZ이다.
내년이면 MZ를 벗어나는 그 나이임에도, MZ에게 먼저 다가와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나도 아랫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케이크의 촛불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은 MZ와 기성세대가 가까워질 수 있는 희망의 빛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