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 먹을수록 잃어가는 것이 빛나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잃어가는 것에 미련을 두진 않는다.
애초부터 뭘 가지려 들지 않으면 상실도 절망도 배신도 없다.
난 나가 가진 걸 잃는 것보다 내 자신을 잃는 게 더 두렵다.
너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겠지만.
나이 들수록 절대적인 것들이 없어진다. 원래 없었으니까.
확실성이 대한 믿음이 깨지면 견디기 힘든 고뇌에 직면하게 된다.
다시 한번 삶에 절대적인 확실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저 통과하는 것이다.
쌓거나 쌓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며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생사에 따라 변화에 따라 선호도에 따라
우리 모두가 매여 있는 냉혹한 운명에 따라
인연의 끈은 어쩔 수 없이 이어지고 또 끊어지게 되어 있다.
순탄한 평지를 걸어가던 운명이
어느 날 장벽보다 더 가파른 비탈길을 굴려 떨어지는 것이다.
절망의 깊은 질곡에서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고통은 상처는 언제라도 반복되는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할 수 있지만 인생은 부당한 현실이다.
가진 모든 걸 다 잃을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바이블의 욥기를 떠올린다.
착하디 착하고 선하디 선한 자에게 닥친 불행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신이 욥의 믿음을 시험에 들게 한 거라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이야기는 철저히 비유이자 우화다.
나쁜 짓을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자에게도 불행은 닥친다는 진실.
우연은 말 그대로 이유가 없으며 운명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의미 없음이 바로 의미이자 섭리라는 걸.
나는 네가 욥이길 바란다. 아니 너는 욥이다.
나도 욥이고 우리 모두가 욥이다.
삶 앞에서 우리는 모두 욥이다.
지금 네가 겪는 시련은 아마도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죽음을 넘어서는 불사의 고통.
네 스스로를 한계 안에 가두고,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 무가치한 사람으로 하찮게 여길지라도,
기회가 온들,
그 기회를 변화의 거대한 물결로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을 때
자신에게 아직 남아있는 것은 커다란 위로.
그 커다란 위로는 바로 죽지 않고 내일 살아갈 거라는 그 사실 하나다.
기억해라. 꼭 기억해라.
다 잃은 순간에도 무일푼인 널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 인연을. 사랑을.
잊지 마라. 꼭 잊지 마라.
너는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니 살아라 꼭 살아라.